소소한 나의 학교 생활 이야기들
나는 경찰공무원이다. 그것도 개발학을 공부하는 경찰관이고, 개발학 중에서도. 분쟁과 권력, 평화 정착에 초점을 두고 공부를 하고 있다. 제네바 학교 친구들이나 교수님들 모두 내 직업을 잘 알고 있고, 가장 흥미로운 배경(?)을 가진 친구들 중 한 명으로 회자된다. 더불어 경찰이 왜 개발학을 공부하는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이유는 너네가 같다고 얘기한다. 나도 국제기구에 관심이 있고, 개발학에 관심이 있었으니까 공부하는 거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경찰이라는 조직은 참으로 독특한 조직일 것이다. 태생이 시민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등장한 조직이다. 그러다보니 자유와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탄압의 대상으로 비춰지기도 하고, 국가라는 사회적 계약을 달성하기 위해 개인의 행동과 자유를 어느 정도까지 통제할 수 있는지가 늘 이슈가 된다. 최근 코로나사태로 인해 경찰의 폭력적 법집행이 전세계적 추세가 되었고, 더불어 미국의 BLM, 영국에서 발생한 경찰관의 살해 사건 등 다양한 이슈들에서 늘 욕을 먹는다. 이 주제에 대해서도 참 많은 토론을 했었고, 나는 원치않았지만 토론을 참여하게 되었다. 더불어 개발학이라는 주제에서 경찰이라는 존재는... 음 특이한 존재다. 특히 내가 선택한 세부전공인 권력, 분쟁, 평화 전공에서는 인도주의적 업무를 비중있게 다루는데, 인도주의적 업무와 안보조직은 시시콜콜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안보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인간다운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인도적 단체들과 그 입장은 이해하지만 사소한 위험이라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경찰은 늘 부딪히곤 한다. 당장 유럽의 난민 위기에 대한 기사만 검색해봐도 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찰의 폭력적 법집행 사진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인도주의 업무와 관련된 수업을 듣다 보면 반드시 난민에 대한 이슈, 국경통제에 대한 이슈, 국가권력에 대한 이슈가 등장히는데 이런 내용이 등장하면 교수님은 꼭 나부터 찾아서 질문을 한다.
"K, as a police officer, how do you think about the border management in this paper?"
"K, can you share your idea about the securitisation of borderland?"
"K, how does police violence in Nigeria impact its insecurity in the country?'
이런 다양한 질문들이 나를 특정해서 쏟아지곤 한다. 나름 경찰이라서 주어지는 특권(?)이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덕분에 경찰과 관련된 수업이 코앞에 있을 때는 (어쩔수없이) 관련 논문들을 더 꼼꼼하게 읽고 내 생각을 정리하곤 한다.
위의 질문과 관련된 '비교인도주의인류학'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다음과 같다. 토론은 트럼프 이후 미국의 국경통제 강화에 대한 내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 이후 미국과 멕시코 국경 사이에 만들어진 장벽과 국경 통제 강화가 난민, 이주민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어렵게 했다. 이는 명백한 사실이고, 난민 수용캠프에서 비인간적인 행동들이 보고되기도 했다. 제네바에서 공부하는 많은 미국인 학생들은 아주 소수의 범죄자들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국경을 안보화하고 많은 난민, 이주민에게 위험하다는 프레임을 씌워서 인도적 지원이 어려워지고 있음에도, 경찰은 이를 수수방관한다는 입장을 많이 내비치곤 했다. 반면 나는 이런 내용을 다루는 논문이나 문서들이 그들의 의무를 열심히 하고 있는 경찰관을 휴머니티와 자비가 없는 사람으로 묘사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고, 경찰이란 안보 조직 특성상 일말의 위험 가능성도 배제하고 예방하는 것이 업무인데 왜 경찰에게 항상 안보와 휴머니티 사이에서 타협하도록 강요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된다고 말을 했다. 마지막으로 아무래도 나는 이런 주제에 있어서는 너무 경찰관인 것 같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해줬더니 왜인지 모르게 수업에 참여한 친구들 모두 웃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즐거운 토론이었고, 재미있었다. 나도 경찰로만 계속 일을 했다면 이런 주제에 대해 크게 고민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경찰로서 개발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참으로 독특한 경험이긴 한다. 지난 글에 개발학 공부하는 게 절망스럽다고는 했지만, 어쨌든 나는 개발학이 좋다. 특히나 분쟁과 권력, 평화에 대한 개발학에서 경찰은 늘 핫한 주제이고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많다. 전쟁이 끝난 post-conflict state에서 군인의 역할은 끝이 나고 경찰의 역할이 중시되는데 얼만큼 그들에게 권한을 주어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인권을 보장하는 경찰개혁을 진행해야 하는지, 경찰의 폭력적 법집행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앞서 말한 난민, 이주민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경찰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등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늘 어려운 주제이고 명확하게 정해진 정답이 없다. 하지만 정답이 없다고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대로만 끝나지 않고, 직업적 특수성과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내가 조금 여러 현실들을 절충하고 타협할 수 있는 답안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 개발학을 공부하는 경찰관으로서 경찰의 입장과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내가 가장 만족스러운 제안을 낼 수 있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리딩을 하고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