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9일 저녁, 나는 집에서 강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날 학원에 나갔더니 이태원에서 할로윈 인파로 무슨 사고가 났다며 누군가 ‘어제 거기 가신 건 아니죠?’ 라고 물었다. 그럴리가요, 웃어 넘기고 강의실로 들어갔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야 웃어 넘길 일이 아니란 걸 알았다.
몰라서였다고는 해도 그 많은 죽음에 경솔했던 게 마음에 걸렸다. 월요일 오후 이태원역을 찾았다. 플랫폼에는 '할로윈 관련 모든 행사를 중단한다'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휑하고 스산해 보이는 이 공간을 빠져나가는 데에만 그 날에는 2, 30분 이상 걸렸다고 했다.
사고가 난 골목 바로 옆, 이태원역 1번 출구에는 수많은 국화꽃과 추모 메시지, 음료 따위가 놓여 있었다. 어쩔 줄 모르는 표정들 속에서 그 뒤섞임을 망연히 바라보다 불닭볶음면에 가슴이 콱 막혔다. 그 구체적인 입맛의 주인은 더 이상 매운 맛을 알지 못했다. 누군가는 연도의 목탁을 쳤고, 기자들은 사진을 찍어댔다.
그날 이후, 상황은 점점 이상하게 전개되었다. 대통령과 여당은 참사의 여파를 봉합하려 온갖 무리수를 두었고, 야당은 어떻게든 정권을 흔들 한 방을 별렀다. 그 불똥을 피하기 위하여 더욱 뻔뻔하게 구는 관료들의 모습에 유가족들은 주저앉았다.
유가족을 향한 막말도 들려왔다. 녹사평역 근처에 합동분향소를 세운 날, 뉴스 카메라 앞에 선 유가족 대표 뒤에서 신자유연대라는 이름으로 나선 이들의 훼방은 그대로 생방송을 탔다. 세월호 때의 '시체팔이'도 되살아났다. 창원시의 어떤 의원은 유가족들이 죽은 자식을 팔아 장사한다고 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기온이 뚝 떨어졌다. 봉투에 10만 원을 담아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분향소는 현수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희생자를 기억해 달라는 애도의 문구는 어릴적 ‘삐라’가 연상되는 색상과 굵은 글씨에 덮였다. 본래 삐라는 정치적이다. 하필 거기에서 전 대통령과 야당 대표를 비난하는 까닭은 현수막의 색깔만큼 선명했다.
분향소 건너편에는 전 정권 때 사고로 죽은 이들을 추모한다는 현수막이 시리즈로 걸려 있었다. 현수막의 의도는 뻔했다. 그 죽음들이 단순 사고였다면 '전 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현 정권이 책임 질 일은 아니며, 만약 책임 질 일이었라면 '전 정권부터' 책임을 지라는 비아냥이었다. 망자에 대한 추모가 아니라 모욕으로 보였다.
정권을 지지하고 옹위하는 건 본인의 자유다. 나는 현 정권에 비판적이지만 야권을 옹호할 생각도 없다. 다만 정치가 무엇이기에 슬픔을 나누는 일조차 창과 방패로 동원되어야 하는지, 가뜩이나 고된 삶과 허무한 죽음마저 이토록 비참하게 만드는지 알 수 없었다.
현수막과 막말은 '인지 부조화'의 산물이다. 그들에게도 인간성이 왜 없겠는가. 다만 참사마저 정치적으로 대하려니, 또는 그걸로 채널을 파서 돈을 벌려니 내면의 인간성을 외면하기 위해서라도 더 극성을 떨어야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영혼을 팔아 인지적 조화를 도모하고 슈퍼챗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에 이름을 적고, 자리를 지키고 있던 분들게 꽃값에 써 달라고 봉투를 건넸다. '그날'만 아니었다면 성탄절 추위에도 입김을 뿜으며 깔깔댔을 미소들 앞에 섰다. 묵주를 꺼내 희생자 한 분 한 분께 성모송을 바쳤다. 제대로 애도를 받기도 전에 '158'이니 '159'니 숫자가 되어버린 청년들이었다. 사진 속 얼굴들이 하나같이 환하고 예뻐서 손발이 더 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