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私설] 일년 꼬박 새벽미사를 나가보니
재작년 연말이었다. 가슴이 콱 막히듯 답답한 상황이 2년째 이어지고 있었다. 문득, 새벽미사에 꾸준히 나가보라는 누나의 조언이 계시처럼 들렸다. 그래, 나의 지혜로는 어찌할 수 없지만 신이 뭔가 답을 주시겠지. 마침 해도 바뀌는 참이니 2022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삼았다.
성당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개 새벽미사는 6시에 있다. 나의 교적이 있는 동네 성당은 걸어서 5분 거리라 5시 40분에 일어나도 충분했다.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시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묵주기도 1단을 굴리면 성당 앞에 닿았다. 6시 미사가 없는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다른 성당으로 갔다.
가끔 6시가 지나 눈을 뜨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최후의 수단을 택한다. 명동성당의 첫 미사가 7시다. 이른 아침 서초동에서 명동까지는 20분으로 충분하다. 이런 식으로 코로나 자가격리 일주일, 그리고 형제들이 다 같이 미국에서 모였던 일주일을 제외하고 꼬박 일 년간 새벽길을 오갔다.
새벽미사에는 고정멤버들이 있다. 이들은 앉는 자리도 비슷해 서로의 자리를 존중한다. 나도 맨 뒷줄 끝자리를 ‘지정석’으로 삼았는데, 어쩌다 ‘내 자리’에 누군가가 앉아 있으면 당황스러웠다. 자리를 바꾸기도 한다. 유난히 기도문을 크게 외거나 기묘한 향수냄새를 풍기는 분들이 있어, 그들이 왼쪽이면 나는 오른쪽이다.
드물지만 신부님들도 늦잠으로 미사에 늦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뛰지 않는다. 그 침착한 모습에 한 수 배웠다. 아, 저렇게 당당한 걸 보니 늦을 만한 이유가 있나보다, 이렇게 생각되는 것이다. 그날 이후 나도 학생들 앞에서 뛰지 않는다.
알람 소리에 눈은 떴으나 전날 늦게까지 술을 먹었거나 신부님의 뻔한 강론이 예상되면 딴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꾸역꾸역 옷을 입고 일단 나선다. 졸거나 멍을 때릴지언정 성당에 앉아 있으면 성스러운 기운으로 샤워를 하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영성체는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무슨 변화가 있었을까? 언제나 그렇듯 신은 과묵하시다. 다만 두 가지 정도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사람을 대하는 일이 조금 편해졌다. 이유는 분명치 않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하면 타인을 대할 때도 불편한데, 못난 모습과 잘못은 그대로 인정하고 가급적 죄를 더하지 않으려 나름대로 애썼기 때문일까 짐작해 본다.
또 하나, 주변을 조금 더 둘러보게 되었다. 가톨릭이나 개신교나 궁극적 지향은 ‘예수님 흉내’다. 그런데 그 예수님은 늘 가난한 자, 버림받은 자들과 함께 길 위에 계셨다. 미사가 아니었다면 이태원 분향소에 꽃값을 놓고 올 용기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오랫동안 정치에 관심을 끊고 살았는데 조금씩 분노의 감정이 올라 오는 것도 미사의 은총이라면 은총이다.
처음의 갑갑증은? 글쎄, 시간이 지나다 보니 그냥 유야무야 된 것 같다. 문제를 싹 해결해 주신 건 아닌데 할 수 있는 한 떳떳하게, 그리고 소심한 대로 주위를 둘러보며 살다보니 어느 순간 애초의 답답증도 별로 크게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문제도 해결된 셈인가.
그럼 올해는? 해도 바뀌었으니 일주일에 두세 번만 나갈까 꾀를 부려보다가 '일단은' 그냥 나가기로 했다. 돌아보니 새벽미사는 내 주변을 바꿔주지는 않았어도 나를 바꿔준 듯하다. 내가 달라지면 주위도 영향을 받겠지. 그렇게 새벽의 맑은 기운이 나를 거쳐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다면 새벽잠과 맞바꿀 보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