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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환 Jan 12. 2023

[오늘의 私설] 이태원의 슬픔과 영혼팔이들


 작년 10월 29일 저녁, 나는 집에서 강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날 학원에 나갔더니 이태원에서 할로윈 인파로 무슨 사고가 났다며 누군가 ‘어제 거기 가신 건 아니죠?’ 라고 물었다. 그럴리가요, 웃어 넘기고 강의실로 들어갔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야 웃어 넘길 일이 아니란 걸 알았다.

      

 몰라서였다고는 해도 그 많은 죽음에 경솔했던 게 마음에 걸렸다. 월요일 오후 이태원역을 찾았다. 플랫폼에는 '할로윈 관련 모든 행사를 중단한다'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휑하고 스산해 보이는 이 공간을 빠져나가는 데에만 그 날에는 2, 30분 이상 걸렸다고 했다.     


 사고가 난 골목 바로 옆, 이태원역 1번 출구에는 수많은 국화꽃과 추모 메시지, 음료 따위가 놓여 있었다. 어쩔 줄 모르는 표정들 속에서 그 뒤섞임을 망연히 바라보다 불닭볶음면에 가슴이 콱 막혔다. 그 구체적인 입맛의 주인은 더 이상 매운 맛을 알지 못했다. 누군가는 연도의 목탁을 쳤고, 기자들은 사진을 찍어댔다.


      

 그날 이후, 상황은 점점 이상하게 전개되었다. 대통령과 여당은 참사의 여파를 봉합하려 온갖 무리수를 두었고, 야당은 어떻게든 정권을 흔들 방을 별렀다.  불똥을 피하기 위하여 더욱 뻔뻔하게 구는 관료들의 모습 유가족들은 주저앉았다.


 유가족을 향한 막말도 들려왔다. 녹사평역 근처에 합동분향소를 세운 날, 뉴스 카메라 앞에 선 유가족 대표 뒤에서 신자유연대라는 이름으로 나선 들의 훼방은 그대로 생방송을 탔다. 세월호 때의 '시체팔이'도 되살아났다. 창원시의 어떤 의원은 유가족들이 죽은 자식을 팔아 장사한다고 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기온이 뚝 떨어졌다. 봉투에 10만 원을 담아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분향소는 현수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희생자를 기억해 달라는 애도의 문구는 어릴적 ‘삐라’가 연상되는 색상과 굵은 글씨에 덮였다. 본래 삐라는 정치적이다. 하필 거기에서 전 대통령과 야당 대표를 비난하는 까닭은 현수막의 색깔만큼 선명했다.  


 분향소 건너편에는 전 정권 때 사고로 죽은 이들을 추모한다는 현수막이 시리즈로 걸려 있었다. 현수막의 의도는 뻔했다. 그 죽음들이 단순 사고였다면 '전 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현 정권이 책임 질 일은 아니며, 만약 책임 질 일이었라면 '전 정권부터' 책임을 지라는 비아냥이었다. 망자에 대한 추모가 아니라 모욕으로 보였다.



 정권을 지지하고 옹위하는 건 본인의 자유다. 나는 현 정권에 비판적이지만 야권을 옹호할 생각도 없다. 다만 정치가 무엇이기에 슬픔을 나누는 일조차 창과 방패로 동원되어야 하는지, 가뜩이나 고된 삶과 허무한 죽음마저 이토록 비참하게 만드는지 알 수 없었다.


 현수막과 막말은 '인지 부조화'의 산물이다. 그들에게도 인간성이 왜 없겠는가. 다만 참사마저 정치적으로 대하려니, 또는 그걸로 채널을 파서 돈을 벌려니 내면의 인간성을 외면하기 위해서라도 더 극성을 떨어야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영혼을 팔아 인지적 조화를 도모하고 슈퍼챗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에 이름을 적고, 자리를 지키고 있던 분들게 꽃값에 써 달라고 봉투를 건넸다. '그날'만 아니었다면 성탄절 추위에도 입김을 뿜으며 깔깔댔을 미소들 앞에 섰다. 묵주를 꺼내 희생자 한 분 한 분께 성모송을 바쳤다. 제대로 애도를 받기도 전에 '158'이니 '159'니 숫자가 되어버린 청년들이었다. 사진 속 얼굴들이 하나같이 환하고 예뻐서 손발이 더 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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