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환 Feb 09. 2023

[오늘의 私설] 문과의 미래는 밝다


 우리나라 문이과 학제의 기원은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식민지 엘리트 양성을 위해 세운 경성제국대학(서울대학교의 전신)은 첫 입학생부터 문과 90명 이과 80명을 선발했는데, 이전부터 문이과를 구별해 운영하던 일본의 고등교육 시스템을 그대로 이식한 결과였다.      


 일본이 문이과 체제를 갖춘 이유는 근대화 과정에서 학문의 체계를 정돈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새롭게 받아들인 서양의 과학기술을 ‘이’로 놓고, 문학이나 역사학처럼 과학기술과 직결되지 않는 기존의 분야들을 ‘문’으로 묶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문과는 주로 국가를 운영하는 관료나 법률가 양성에 집중했고, 이과는 의학을 필두로 확장되었다. 이른바 ‘문과는 법대, 이과는 의대’의 역사는 제법 긴 셈이다.


 비록 일본식 학제를 수용하기는 했지만 한국의 문이과 체제는 나름의 특성을 띠었다. 이른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위계가 분명했던 조선 문화의 영향 속에서 이과보다는 문과가 줄곧 우세했다. 이러한 경향이 전환된 계기는 1998년 IMF 금융위기였다. 그때부터 취업에 유리한 이과가, 문과에서도 실용성을 강조하는 경영학의 약진이 나타났다.

     

 그리고 지금은 ‘문송하다’는 말이 나올 만큼 문과의 입지가 약해졌다. 첨단 기술로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인문계의 학과들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끝없이 증명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문과가 이토록 쇠락한 이유는 무엇인가? 표면적으로는 ‘실용성이 낮다’는 점이다. 예컨대 컴퓨터 코딩을 배우면 당장 프로그램이라도 짤 수 있다. 하지만 고려시대 과거제도는 공부의 결과가 명확하지 않다. 비교적 실용성이 강한 사회과학도 마찬가지이다. 정치학이나 경제학은, 그것이 공무원 채용과 연결되지 않는 한 여전히 뜬구름 잡는 얘기같다.      


 좀 더 근본적인 관점에서, 나는 문과의 위기를 ‘문화지체’의 한 양상으로 본다. 문화지체란 현실의 변화 속도에 문화가 따라가지 못할 때 나타나는 불일치를 말한다. 예를 들어 현실은 다문화 사회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지만, 외국인에 대한 차별 의식은 여전하여 이것이 문화 간 갈등과 충돌을 빚는 식이다.     


 문이과의 간극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지금 배우고 있는 인문계의 성과들은 대부분 20세기의 산물이다. 반면 과학기술은 이 순간에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알파고의 충격이 불과 몇 년 전인데, 지난해 연말 출시된 인공지능 ‘챗지티피’는 질문에 대한 대답 능력이 워낙 뛰어나 벌써 대학들이 접속 금지령을 내릴 지경이다. 세상은 이렇게 빨리 돌아가고 있는데, 문과는 20세기에 머물고 있으니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문과의 미래가 밝다고 본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문화지체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다.     


 지금은 이과의 속도에 문과가 따라가는 과도기다. 학문의 속성상 문과는 이과에 비하여 변화가 더딜 수밖에 없다. 세상을 개념으로 치환하고 논리적으로 정돈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의 이과적 현상에 대한 대응으로 문과적 결과물이 그 나타났듯, 앞으로의 이과적 변화에 대해서도 문과적 대응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 이유는 인간사가 구체와 추상의 연합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존에는 구체적인 과학기술과 함께 개체를 사회로 엮는 논리와 언어, 서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통해 인간은 서로 갈등하고 협력하며 사회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 문과의 힘은 이와 같이 인간과 인간을 엮는 추상화 능력에 직결되며, 이것이 곧 문과의 실용성이다.


 이를 자율주행 차량으로 설명해 보자. 기술적으로 자율주행 차량을 만드는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 차량이 실제로 운행될 때, 기술이 답할 수 없는 가치의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자율주행 차량이 사고를 내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인가? 탑승자인가, 차량 제작사인가, 프로그램 제작사인가? 또, 돌발 상황에 대비해 어떤 프로그램을 짜 두어야 할까? 갑자기 아이가 뛰어든다면 중앙선을 침범해서라도 아이를 보호해야 할까, 아이를 들이받고 운전자를 보호해야 할까? 이러한 문제들은 자율주행 차량의 기술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의미와 가치를 고민하고 이를 논리적으로 정돈해 사회에 적용하려는 문과적 노력이 필요한 영역이다.     


 문과의 전문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에 내재한 가치를 탐색하고, 이에 기반한 서사를 만들어 소통을 유도하는 일이다. 자율주행 차량을 만들 수는 없지만, 문과는 자율주행 차량이 운행될 수 있는 의미체계를 제공한다. 자율주행 차량 뿐인가. 생명과학, 인공지능, 미디어 등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기존에 갖고 있던 인식과 판단의 준거는 어떻게든 ‘문과적으로’ 조정될 수밖에 없다.     


 결국 문과의 영역은 이과에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이과가 나아가는 만큼 확대될 것이다. 철학과라면 새로운 도덕 철학을, 법학과라면 좀더 타당한 법의 개정과 적용을, 문학이라면 불안한 인간에게 위안을 제공해야 한다. 첨단을 달리는 과학기술에 비해 현재의 인문학 대응이 늦다보니 상대적으로 입지가 좁아 보이는 것일 뿐, 문과의 장(場)은 오히려 넓어지고 있다.

      

 덧붙여, 이 글을 읽는 문과생들에게 심리학 연구 결과를 하나 소개한다. 연구에 따르면 학생의 95%는 언어 처리 능력과 수리 판단 능력 중 하나의 영역에서만 두각을 드러낸다. 이는 인간의 지적 특성에 사람마다 차이가 있으며, 좀 더 자신에게 적합한 영역에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약점을 보완하기보다는 강점을 강화하는 데에 집중하라고 강조했다. 약점은 아무리 보완해도 그 영역에 강점을 가진 사람을 이길 수 없지만, 자신의 강점을 다듬으면 그 영역에서 최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학을 못해서 문과로 왔다는 우는 소리도 하지 말고, 대학이 제공하는 20세기 이전의 커리큘럼에 안주하지도 말고, 변화하는 현실을 예민하게 추상화하면서 문과로서 떳떳하게 살아가자. 이제 3학년이 되는 나도 문과를 위한 송가(頌歌)를 힘껏 부른다. 문송(文頌)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의 私설] 산재 사망에 대한 학생의 질문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