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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환 May 08. 2024

[오늘의 私설] 고맙다, 살아줘서


 작년 가을이었다. 거실에서 기르던 몬스테라를 베란다로 옮겼다. 햇볕과 통풍에 생기를 얻었는지 몬스테라는 쑥쑥 자랐다. 처음 들여 본 반려식물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초보자도 기르기 쉽다는 말이 뜬소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기온이 곤두박질치던 어느날, 하룻밤 사이에 그 무성하던 잎과 줄기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바로 전날에도 성성했으니 정말 하룻밤 새였다. 아침에 베란다 앞에 굳어 선 채 어쩔 줄 몰랐다. 망자(亡者)의 낯빛이 다른 건 식물도 마찬가지였다. '죽은 초록색'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혹시나 싶어 거실에 옮겨 하루이틀 지켜봤지만 죽은자식 불알만지기였다. 며칠이 지나자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초록빛깔마저 잃고 갈변한 잎새들을 가위로 잘라내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여러 번 뇌었다. 뾰족하게 돌돌 말려 올라오던 잎새들, 그 연한 모습에 기뻐하고 기특해했던 기억들이 스쳐갔다.


 밑둥만 남은 화분은 베란다 구석 세탁기 옆에 두었다. 말이 화분이지 플라스틱 쓰레기통이었다. 언젠가 분갈이를 해 주려고 온라인에서 화분을 샀는데, 부피가 너무 커서 분갈이가 아니라 생매장이 될 판이었다. 일단 집에서 쓰던 플라스틱 쓰레기통의 밑을 뚫어 옮겨 심었다. 좀더 무성해지면 새집으로 옮겨주겠다고 약속했건만, 밑둥만 남겨진 몬스테라의 사체는 정말 쓰레기일 뿐이었다. 번듯한 화분에 심어주지 못한 게 그제야 후회되었다.


 요며칠 계속 비가오다 모처럼 활짝 갠 아침, 베란다 문을 여는데 발치에 문득 낯선 초록색이 눈에 띄었다. 아니, 색채는 익숙했지만 위치가 낯설었다. 거기서 보일 색이 아니었는데, 뭔가 뾰죡하고 돌돌 말린 초록색이 얼핏 눈에 스쳤다.


 아, 생명은 참으로 가상하다. 녀석이 돌아왔다! 지난 겨울, 하룻밤 사이에 세상을 떠났던 몬스테라가, 남은 밑둥만 아쉬운 마음에 처박아두었던 그 쓰레기통에서, 물 한 방울 주지 않고 방치해 둔 베란다 구석에서 손을 뻗어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동그랗게 선 잎새 하나. 손가락 한 마디도 안 될 만큼 작았다. 하지만 아마 그 녀석이 먼저였을 것이다. 메마른 모래에서 간신히 고개를 틔워, 그 작은 입으로 공기와 습기를 빨아들이면서 새 잎을 밀어올렸으리라. 정작 제 몸 하나는 동전 한닢보다 키우지 못했지만, 그 노고의 가치는 금화에 못지 않았다.


 햇볕 잘 드는 곳으로 녀석들을 옮긴다. 몇 달째 물 한 방울 받아 본 적이 없던 모래흙은 한 바가지 물에도 시침을 뚝 떼었다. 부모와 형제를 모두 잃은 채, 주인의 관심도 없이, 말 그대로의 '쓰레기통'에서 새 잎이 돋는다. 나는 그 옆에 가만히 앉아 연한 잎새를 만지며, 어쩐지 울먹울먹해지는 마음으로 잎새들에게 말을 건넨다. 고맙다 얘들아, 고맙다 얘들아. 살아나줘서. 살아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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