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을 시작한 지 두 달하고도 보름이 지난 내게는 사이좋게 마주 보고 있는 이웃 식당이 있다. 남도음식을 메인으로 하는 한정식 집인데 내가 있는 창원에서는 단골손님도 많고 맛집으로 소문난 집이다.
매장 오픈 전 인테리어를 하는 기간에 처음 인사를 드렸을 때부터 사장님은 줄곧 내게 다정하게 대해주셨다. 1층 복도에 아무렇게나 앉아 멍하니 공사 현장을 보고 있으면 바닥이 차다고 얼른 여기 들어와서 좀 앉아 있으라고 하시며 당신이 쉴 수 있는 시간에도 부러 그 시간과 직접 만든 수정과 한잔을 내주시며 자영업 초보인 내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우여곡절 끝에 오픈을 하고도 사장님은 거의 매일 점심 장사 전에 틈을 내서 오셔서는 커피를 사 가시며 장사가 어떤 지부터 해서 장사할 때의 팁이라던지, 개인적인 경험과 일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알고 보니 사장님은 당신의 일뿐만 아니라 길고양이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시는 분이었다. 동물농장 같은 프로그램에서나 만날 법한 인물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사실 나도 개인적으로 4마리의 길고양이를 입양하고 이외에도 다수의 아이들을 구조해서 집 마당에서 케어해주고 있는데 사장님은 정말이지 대단하셨다. 길에서 태어난 고양이들을 위해 어떤 지원도, 바라는 것도 없이 그저 아이들을 우리의 이웃이라고 생각하고 배부르게 해 주시고, 건강까지 살펴주고 계셨다. 식당의 자리를 옮겨오기 전에 봐온 아이들부터 하면 족히 수십 마리가 되는데 그 많은 아이들을 중성화 수술까지 자비로 해주신 분이었다. 식당의 이름이 '고향에 봄'인데 더불어 '고양이 봄'이 아닐까.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어떤 환영도 없이 태어나 누구의 배웅도 없이 떠나는 삶을 사는 길고양이들을 위해 사장님이 하실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생명을 대하는 마음이 이렇게 아름다우신 분이 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고, 그 지경은 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존경을 불러일으켰다.
틈틈이 오가시며 대화를 나눈 덕분에 사장님과 나는 그 점 이외에도 통하는 부분이 꽤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요식업계에 종사하면서 느끼는 생각들과 일에 대한 완벽주의 성향도 그랬고 차별 없는 세상을 바라는 점에서 오는 가치관은 특히 비슷했다. 역시 경험과 연륜은 무시하지 못한다고 내가 사장님께 배울 점이 한 트럭이었다. 실로 사장님의 인생 이야기를 책으로 써도 되겠다고 농반진반으로 말씀드리기도 했다.
항상 밝고 당찬 모습을 하고 계신데 사장님도 힘들 때면 이웃 카페로 달려와 달달한 커피 한잔에 넋두리하시며 "여긴 내 쉼터야." 하고 말씀하실 때는 나를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더없이 감사하기도 했고 한편으론 이야기를 듣는 이상의 무언가를 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딱히 없었다.
그러다 얼마 전, 매장 오픈을 축하하기 위해 멀리서 지인들이 창원에 오게 됐는데 그때 이웃집에서 식사를 했다. 큰 도움이 안 될지언정 그래도 매번 내 커피를 사드신 분께 작게나마 감사를 표하는 의미로. 시그니처 메뉴인 보리굴비를 하나씩, 그리고 곁들임으로 한우육전을 주문했다.
'울엄니손맛'이라는 슬로건다운 남도한상이 쫙 깔리고 메인 메뉴가 차례대로 나오는데 이 정도면 진짜 상다리가 부러지는 게 아닌가 혼잣말을 하고 있는 찰나 사장님이 등장하시더니 제일 큰 접시를 가운데에 놓아주시며 말씀하셨다.
"이건 서비스예요. 이웃의 정이랍니다."
사장님.. 태어나서 이렇게 비싼 서비스를 받아본 적이 없어요..
그렇다. 우리가 주문한 메인메뉴와 한우라는 타이틀이 붙는 사이드메뉴도 이 서비스 접시만큼 단가가 세진 않았다. 사장님이 내주신 이웃의 정은 바로 홍어삼합이었다.
지인들은 내게 이것도 내 복이라며 네 입 모아 말했다. 값을 떠나서 이 한 접시를 위해 사장님이 들이는 고생과 시간 그런 것들을 생각하니 뭉클했다. 요즘같이 이웃 모르고 산다는 세상에 이렇게 따스한 정을 나눌 수 있는 이웃이 있다니 그 사실에 감사했다.
게다가 내 생애 첫 홍어삼합을 경험한 역사적인 날이었다. 주변에서 익히 애주가로 알고 있는 내가 애주가들이 좋아하는 몇몇 안주 중에 도전하지 못 한 대표적인 먹거리가 홍어삼합이었는데, 이웃 식당의 홍어삼합은 홍어의 삭힌 정도나 고기의 삶은 정도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묵은지의 익힘 정도가 핵심이었다. 아이참 사장님! 정도껏 하셔야죠..
이 한 접시에 올리기 위해 정성스럽게 김장을 하고 몇 년 동안을 기다린 묵은지는 때깔부터가 기대하며 고대한 보람이 있어 보였다. 첫 삼합을 싸서 한 입 크게 넣은 순간 입 안에서 각각의 음식이 한데 모여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데 가슴까지 웅장해지는 것이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그냥 내 얼굴이 초롱초롱하고 반짝반짝한 이모티콘 같은 표정을 짓게 되는 맛이라고 할까.
맛도 맛이지만 그중에 제일은 멋이었다. 사장님의 품격은 진짜 어른의 멋 그 자체였다.
나는 이렇게 멋진 어른을 이웃으로 둔 덕분에 인생을 배우고, 홍어삼합도 배운다. 그 옛날 이웃사촌의 정을 단어 그대로 체감하게 해 주시는 사장님은 요즘 카페 사장이 당신의 베프라고 호쾌하게 웃으며 말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