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이 되었다.
가톨릭 학교에 입학한 열일곱 살의 나는 야간자율학습 시간에도 싫어하는 수업 시간에도 자주 빠졌다. 자율학습 시간엔 주로 말하지 않고 빠졌고, 수업시간엔 주로 아프다는 거짓말을 하고 빠졌다. 마음이 아팠으니 완전히 거짓말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이미 그때부터 나는 로댕의 조각상만치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생각이 너무 많은 날에는 견딜 수가 없어서 양호실에 가서 머리가 아프다고 말씀드리고 약을 먹고 한 시간을 내리 잤다. 우리 학교 양호실은 침대가 없고 온돌바닥에 이불을 깔고 눕는 곳이라 따뜻하니 단 시간에 꿀잠을 잘 수 있었다. 그렇게 자고 나면 기분이 좀 괜찮아졌다.
궁극적으로 해결이 되진 않지만 당장에는 괜찮으니까. 잠만큼 좋은 약이 없다는 사실을 진즉 알았다.
여름에는 선배의 강압에 못 이겨 끌려갔던 공연장에서 푹 빠진 한 밴드를 쫓아다녔다. 오프스프링의 노래를 맛깔나게 부르는 보컬오빠에게 반해서 여름방학 수업시간을 빼먹고 밴드의 엠티를 따라갔다. 그때 그 오빠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처음으로 소주를 마셨다. (물론 한 잔 마시고 기절했고 이후 성인이 되기 전까진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수능 앞두고 백일주조차 마시지 않았다면 말 다했지.)
그래도 기본 학업에는 충실했고, 방송부원이라 교내의 일이 있을 때면 항상 불려 다니며 일 처리를 잘해서 선생님들께 좋은 이미지긴 했지만 단순히 마음 상태로만 보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고등학생이었다.
그리고 열여덟. 성인의 나이에 점점 가까워지면서 표현하는 것이 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쁜 마음을 티 내는 때가 많아졌다.
그땐 엄마의 벌이가 좋지 않아 급식비 미납이 종종 있었다. 급식비를 내는 날짜가 다가올수록 설명할 수 없는 압박감을 느꼈고 기어코 급식소 문에 붙여놓는 명단에 포함이 됐다. 급식소 선생님은 쪽팔리기 싫으면 급식비를 내라고 했고 내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고 했다. 내기 싫어서가 아니라 못 내는 거였지만 군말 없이 후자를 택했다. 엄마가 돈이 없대요 하고 말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선생님 말씀대로 못 내고 쪽팔리기 싫어서 피하고 봤다. 지나고 나서야 든 생각이지만 어쩌면 사정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그렇게까지 말했을까...
다른 친구들이 오늘 메뉴는 이거랑 저거더라 하면서 신나게 급식소를 가는데 나는 운동장 한 편의 벤치에 앉아 주머니를 털어 매점에서 사 온 빵만 뜯어먹고 있었다. 우리 집은 왜 급식비도 못 내줄 정도로 가난한 걸까. 서러워서 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가끔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못된 말을 하기도 했다.
"급식비 안 주면 내일부터 학교 안 나올 거다!"
으름장을 놓듯 말해놓고 엄마도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어하며 후회하고 반성하곤 했다.
그런 나를 위해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급식비 명목으로 돈을 쥐여주셨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또 그것을 꿈꾸는 나를 위해 응원의 말을 종종 해주신 분이었다. 나는 선생님께 그 돈을, 그 마음을 꼭 갚으리라 다짐했지만 졸업할 때까지 내가 받은 것들을 다 갚기란 내 상황에서는 힘든 일이었다.
제대로 갚지 못했기에 더더욱 그날의 감사함을 잊지 못한다. 단순하게 돈을 주는 게 아니라 사춘기 소녀인 반 아이를 걱정해서 쓰는 깊은 마음. 그때 담임선생님을 보면서 누군가를 도와줄 능력을 만들고 보람되게 마음을 쓸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고자 마음먹었다.
선생님 덕분에 나의 질풍노도 고딩 기간은 거기서 끝이 났다. 이어 수험생이 된 나는 무난한 학교생활을 했고 수능까지 치른 다음 부정적 기억보다 긍정적 기억이 크게 자리 잡은 십 대의 나와도 안녕했다.
대학생이 되고 첫 방학 때 나는 담임선생님부터 찾아뵈었다.
아직 어린 티를 벗어나지는 못해서 고등학생과 다를 게 없는 모습이었지만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술을 배워서 선생님과 함께 술을 마실 수 있었다는 것.
학교 다닐 때 수학선생님과 막걸리를 자주 마신다는 담임선생님께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 막걸리가 그렇게 맛있어요? 좋지도 않은 술을 뭘 그렇게 자주 드세요?"
"너도 커보면 알게다." 하며 허허 웃으시던 선생님.
스무 살이 된 제자는 선생님이 그렇게 좋아하시던 막걸리 한잔을 나누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그날 나는 막걸리를 마시다 말고 선생님께 고백했다.
"선생님! 저 아직 덜 컸는데도 알겠어요. 어른들이 왜 술을 찾는지. 술맛이 얼마나 좋은지요."
인생과 섞인 술맛을 일찍 알아버린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1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선생님과는 연락을 하며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