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들 전부가 모여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그곳이 어디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강가에 텐트를 칠 수 있고 취사도 가능했던 곳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우리 집과 이모 댁 모두가 함께 했다.
이모와 함께 하는 것은 불편했지만 바람 솔솔 불어오는 좋은 곳에서 맛있는 것도 먹고 술도 한잔 하며 대가족이 오랜만에 단합된 시간을 보냈다. 술이 조금씩 들어가니 이모는 할아버지께 이런 말을 했다.
"아버지. 솔직히 말씀하세요. 아버지는 손주들 중에 누가 제일 좋으세요?"
질문 자체가 어리석었다. 왜 이모는 좋은 시간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걸까 생각하며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입에서 의외의 답변이 나왔다.
"아무래도 그렇지. 내가 제일 많이 봤고, 나를 제일 많이 닮았는데."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원망 섞인 눈빛으로 할아버지를 보던 이모와 그런 이모의 시선을 피하던 할아버지. 이모는 그런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장녀인 이모보다 차녀인 우리 엄마를 더 좋아해서 유일하게 아들을 낳은 당신과 당신의 자식을 나보다 덜 좋아한다는 이상한 논리를. 그래서 어린 나에게 그렇게 눈치를 줬을까. 그런데 그 논리가 진짜일 줄이야.
앉은자리에서 몇 병이나 더 마신 후에야 술자리는 끝이 났고 할아버지는 텐트로 이동 중에 넘어지셨다. 잘 걸으시다가 어디 걸린 것도 아닌데 갑자기 고꾸라지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뛰어가 할아버지를 일으킨 사람은 이모였고 나도 얼른 할아버지 곁으로 달려갔다.
반쯤 일으켜진 할아버지는 이모를 빤히 보며 말했다.
"누구세요?"
이모는 "내가 취했나? 아버지 지금 저 못 알아보시는 거예요?"
취기가 오른 이모는 당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의심했지만 나도 똑똑히 들었다. 누구냐는 물음은 진심이었다.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마구 휘젓더니 다시 정신을 차리신 듯했고 괜찮다고 반복해서 말씀하시며 그 자리를 빠르게 벗어났다. 그날 밤 두려움이 증폭되며 잠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괜찮을 거야, 아닐 거야 하면서 말 못 할 두려움을 억지로 잊어버리기 위해 애썼다. 철딱서니 없는 스무 살 답게 생각보다 빨리 그 일을 잊고 지냈는데 지금에서야 그럴 수 있었던 나의 단순함과 철없음을 후회한다. 그건 분명 죽음의 전조증상이었으니까.
수개월이 지난 후 할아버지는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셨고 병원에 입원한 뒤 하루 만에 코마가 왔다. 코마, 의학적으로 말하자면 깊은 의식불명 상태. 하루 만에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더라. 병원에 입원한 날부터 아끼는 손녀딸도 못 알아보시고 그로부터 몇 달을 내내 주무시다가 세상을 떠난 나의 할아버지. 그곳에서는 평안하실까. 중환자실로 옮겨지기 전 면회를 했을 때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는데 시선을 한 곳에 두지 못하고 정신없이 머리가 아프다 아프다 하시면서도 내 손을 놓지 않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한순간 정신을 잃었던 할아버지를 모시고 미리 병원에 갔더라면 이런 일이 없지 않았을까. 후회는 항상 늦을 뿐이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학교를 다닐 때 우리 집에서 직업을 가지고 있던 유일한 어른이었다. 정수리 쪽이 훤히 벗겨지고 남은 머리는 하얗게 센 어르신은 한 시간 거리의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셨다. 다행히도 주민들은 유난스럽지 않았고 대부분이 정스럽게 할아버지를 잘 챙겨주셨다. 나는 아파트를 향해서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기억한다.
밤샘 근무를 하고 남들은 출근하는 아침 퇴근길, 자리 양보라고는 없는 만원 버스에 타서 손잡이를 잡고 서계시던 할아버지. 내가 그 버스에 탄 것을 모르던 할아버지는 창밖만 멍하니 보고 계셨다. 수선을 하다 하다 못해 밑단이 짧아져 구두 위로 올라가 있던 할아버지의 바지를 보며 눈물을 훔치던 나는 얼른 돈을 벌어서 할아버지께 편한 바지와 편한 신발을 사드려야지 다짐했었다. 그 다짐이 다짐만으로 끝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은 여전히 내 마음을 아프게도 쿡쿡 찌른다.
하루 밤샘, 하루 휴무 격일 근무를 하셨던 당시 할아버지의 월급은 60만 원이었다. 어르신이 얼마 있지도 않은 체력을 끌어 한 달 꼬박 일하고 받은 귀한 돈을 당신의 철없는 아들, 딸은 급할 때마다 빌려갔다. 갚지도 않으면서 빌려간다는 말은 잘하는 사람들.
그게 내가 보던 우리 집 어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