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떠나보낸 엄마의 외동딸 나, 숙모를 떠나보낸 삼촌의 외동딸 동생. 직업 하나 제대로 가지지 못했던 무능력 가정의 우리들은 자라서 각자가 원하는 대학을 갔고 각자가 원했던 일을 시작했다.
가정환경이 어렵다는 이유로 마음껏 돈을 쓰지 못하고 마음껏 투정 부리지 못하고 살았지만 그래도 어른들의 사랑만큼은 많이 받았다. 비싼 음식을 사주지 못해도 매일 정성껏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어주고, 비싼 옷을 사주지 못해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옷만큼은 누구에게 물려받은 옷이 아닌 새 옷을 선물하는 게 우리 가족이었다.
나는 항상 그런 이야길 들었다. "너는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나."
맞는 말이다. 가난은 가난이고 불화도 불화지만 사랑을 많이 받은 것은 분명하다. 나와 동생은 없는 환경이라도 베풀 수 있는 만큼 베풀고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기에 자연스럽게 배려하는 마음을 터득했다. 그래서 늘 주변에 우리를 챙겨주는 사람이 많았다.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나는 사람이라는 게 내 복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지만 사랑은 그게 아니지 않나. 지금까지도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한 번씩 현실 앞에 한도 끝도 없이 무너질 때는 어려서부터 정스러운 어른들 사이에서 자란 것이 치가 떨리게 싫었다. 돈도 없는 주제에 정만 많아서 사람이 독한 마음먹지 못하게 만들어버린 어른들이 싫었다.
누구 아래에서 일하는 걸 싫어하는 성격의 엄마가 아무런 계획도 없이 장사하겠다고 내 명의로 낸 대출금을 단 한 번도 갚지 못해서 휴학하고 학비를 벌기 위해 시작했던 아르바이트의 얼마 안 되는 월급으로 대출금을 다 갚을 때에도, 몰랐던 빚이 눈덩이가 되어 내게 굴러와서 오래 다닌 직장에서 퇴직금을 조기 정산하고 갚을 때에도 나는 독한 사람이 되질 못했다. 가족이라는 조직의 인질이라도 된 것처럼 풀려날 수 없는 최악의 인생으로만 느껴졌다.
그럼에도 나보다 안쓰러운 모든 상황을 지나치질 못했다.
노숙을 하며 소쿠리 하나를 두고 엎드린 사람에게 가지고 있는 현금이라도 털어드렸고, 폐지 줍는 어르신들을 보고 얼마나 힘드실까 생각하며 남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불쌍한 길고양이들을 지나치지 못해 밥을 주곤 했다.
모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도 모질 수만 있다면 가족이라는 족쇄를 끊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루하루 살아가는 힘이 부칠 때면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건 한순간일 뿐이었다. 결국 무능력 가정에서 자란 나는 배운 것이 사랑밖에 없어 사람을, 동물을, 또는 사물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많은 굴곡 속에서도 누구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비록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지는 못했지만 삶에서 가장 큰 가치를 배웠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