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집을 떠나 살게 되었다. 좁은 옛날집에 복작복작 모여 사는 그런 환경을 떠나 살아보고 싶었는데 스무 살의 나이는 자연스럽게 그런 의도를 정당하게 뒷받침해 주었다.
여중, 여고를 다녔던 내가 예대생으로 입학하고 나서의 재미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던 전국 각지의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고, 이성 친구들과도 우정을 쌓으며 나날이 재미있는 학교생활을 했다.
다만 예전부터 일반 전공과 달리 예체능계열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조금은 빡센 학교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내가 입학했던 2005년도 당시만 해도 알게 모르게 선후배 문화가 엄격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입생 누구가 폴더형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또는 인사법 멘트를 똑바로 하지 못해서 등등의 아주 사소한 이유로 큰 강의실이나 운동장 같은 곳에서 일주일에 한두 번쯤 집합이 걸렸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선배들의 쓴소릴 들으며 단체기합을 받았다. 어릴 때부터 운동이라고는 싫어했던 나는 그 시간이면 정말이지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한 시간 넘게 고통이 이어지다 보면 구토가 올라오는 것 같았는데 그마저도 억지로 삼키며 참아야 했다. 버티고 버티다가 그 시간이 끝나면 다리에 힘이 쫙 풀려버렸는데 심할 땐 스스로 걷지 못하고 동기 남자들에게 부축을 받아 기숙사로 돌아가곤 했다.
그런 생활을 반복하는 중에 사건이 하나 터졌다.
엠티를 갔을 때였는데 한참 프로그램대로 움직이고 저녁 시간에 조별로 술자리를 가지다가 갑작스럽게 집합이 걸렸다. 술을 마시다가 집합장소에 얼차려를 받는 일은 그간의 고통 이상이었다. 그걸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몸이 약한 여자 동기들이 하나둘씩 쓰러져 나갔다. 선배들은 그래도 끄떡없었는데 동기 중 한 친구가 어릴 적부터 앓고 있던 천식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 처하고 나서야 모두를 숙소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전체집합 금지라는 교수님의 공지가 내려왔다.
그렇게 금지된 우리 과 전체집합만 없을 뿐 동아리별 집합은 따로 있었다. 학생회 임원이었던 나는 그런 시간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술자리에선 웃으면서 편하게 하라고 하다가도 다음날이면 그 태도를 꼬투리 잡아 혼나곤 했다. 어떻게든 이유는 항상 만들어졌다.
선배들의 말은 곧 법이었기에 시키는 대로 해야 했고, 맞다고 하면 다 맞다고 해야 했다. 선배가 봄을 여름이라고 하면 봄인데도 여름이라고 해야만 했다. 이렇게 부당한데도 왜 불만 한번 가지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였을까.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존중보다 강압을 받는 한국 사회의 부조리는 어느 조직에서든 존재했다. 학교라고 다를 바 없었다.
언젠가 한 번은 남자선배와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내게 어떤 요구를 했는데 가벼운 요구였기에
"네! 선배님은 다 오케이죠!" 하고 말했는데 뜻밖의 말을 들었다.
"그래 나는 다 오케이지? 그럼 네 가슴 한번 만져도 돼?"
명백한 성희롱이자 성폭력이었다. 진짜로 손을 내 가슴 앞쪽에 두고 바로 주무르기라도 할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에 놀랐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정색하는 것뿐이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잠 못 들며 계속 생각했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고. 올바른 위계질서야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고작 한 두 살 차이 나는 우리는 다 같은 학생이었는데 학교에서의 이런 모순은 있어선 안 되는 거였다. 연장자라고 무조건 권위를 갖는 것도 아니고, 권위가 성을 매개로 가하는 언어폭력까지 정당화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다고 그 시절의 내가 나서서 할 수 있는 것 또한 없었다. 후배들을 존중하며 편하게 대해주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며 지냈더니 돌아오는 말은 "착한 척하지 말고 니 성격대로 해."였다.
듣는 내가 다 부끄러웠다. 나 자신이 한 성격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잘못된 위계문화를 선배라는 이름으로 지켜가며 살고 싶진 않았다.
그런 말을 듣거나 말거나 어쨌든 나는 내 식대로 지냈고 달리 문제 되는 일 없이 지내다가 머지않아 학생이라는 신분과 학교를 벗어나 사회로 나아갔다. 그리고 학교는 그저 워밍업일 뿐이었다는 것을 사회인이 돼서야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