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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피 Oct 13. 2024

스무 살 차이 나는 엄마

5학년 가을운동회날 내 기분은 최저였다. 그 옛날 초등학생에게 가을운동회란 소풍 다음으로 설레는 행사였다. 그런데도 운동회 날의 내 사진을 보면 표정이 하나같이 어두웠다.


운동회는 보통 오전에 그간 연습했던 것들을 보여주고 점심 전에 단체로 콩주머니를 던져 박을 터뜨리고 가족들과 여기저기 돗자리를 펴고 앉아 도시락을 까먹고 쉬다가 오후에는 줄다리기나 육상 경기 등을 하고 끝이 났다. 고학년의 여자 아이들은 한복을 입고 부채춤을 추는데 여기서 한복이 첫 번째 문제였다. 5학년인데도 나는 내 한복 한 벌이 없었다.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라서 나는 결국 할머니의 한복을 입게 됐다. 연한 분홍빛에 펄이 약간 들어가서 은은하고 고운 한복이었는데 나는 그 한복이 할머니의 한복이라는 것 자체로 싫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몇 분만에 끝날 부채춤만을 위해 한복을 사달라고 조를 수도 없는 집안사정을 잘 알기도 해서 튀어나오는 입을 억지로 넣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친구들에게도 "우리 집엔 한복이 이거 하나뿐이야. 우리 할머니 한복인데 예쁘지?" 세상 혼자 쿨한 척하며 말하곤 했다. 그래. 거기까진 괜찮았다.


결정적으로 내 기분을 최저로 만든 두 번째 문제는 운동회를 보러 온 엄마였다.


1997년. 12살이었던 내 엄마는 고작 32살이었다.

엄마와 내가 스무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는 사실로 나는 매번 부끄러움을 느꼈다. 교실에 붙이는 가족신문에 없는 아빠가 있는 척하며 쓰는 것보다 엄마 나이를 기록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


청자켓에 검정 데님 반바지와 스타킹 차림에 긴 머리를 높이 반묶음 해서 올려 고정을 위해 스프레이까지 뿌리고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온 엄마.

지금이라면 한참 멋 부릴 나이의 엄마였는데 지금 같으면 "우리 엄마 멋쟁이지?" 하고 자랑하며 말할 수 있을 일이었는데. 다른 엄마들보다 몇 살씩이나 적고 다른 엄마들처럼 짧은 파마머리도 아니고 다른 엄마들같이 보통의 편한 복장도 아닌. 다른 엄마들과 다르기만 한 우리 엄마가 창피했다.


지금의 나는 그 시절의 내 어리석음이 더 창피하고 당시의 사회가 주는 분위기에 씁쓸하기만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없는 나이,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시대였기에 운동회 날 이후로 학교에 부모님을 부르는 크고 작은 행사에 엄마를 부르지 않았다.



내가 그런 불만을 키울 수 있던 만큼 키도 많이 컸다. 지금의 키와 몇 센티 차이가 없을 만큼 훅 자라며 5학년의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던 어느 날, 화장실에 갔다가 충격적인 일을 겪었다.

속옷에 검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나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걸까. 내가 나쁜 마음을 가져서 병이 생긴 걸까. 앉지도 못하고 서서 울고 있는 걸 보고 놀란 할머니가 내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할머니. 나한테 피가 많이 나."


할머니는 내 속옷을 확인하고 잠시 나갔다 오셔서는 봉지 안에 든 무언가를 꺼내어 어떻게 사용하는지 왜 사용하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생리를 시작한 것이다.

그때만 해도 초등학생이 생리를 시작하는 건 드문 일이라 그 부분에 대해 학습된 게 거의 없었다. 반 아이들 중에서도 생리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에선지 쪽팔릴 일도 아니면서 생리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살았다. 남들보다 빠르게 생리를 하는 것도 꼭 남들보다 나를 일찍 낳은 엄마 탓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중요한 학습도 왜 엄마가 아닌 할머니에게 받아야 하는 걸까 하는 의문만을 가진 채 초등학교 생활이 끝나갈 때까지도 나는 엄마에게 생리를 시작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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