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된 엄마는 먹고살기가 바빴다. 그랬기에 하나뿐인 딸은 부모님 곁에 데려다 놓고 신경 쓰지 못했다. 그건 아빠와 이혼 도장을 찍기 전부터 쭉 그래왔지만 말이다.
한 번씩 엄마가 일하는 곳 근처에 가서 함께 밥 한 끼를 먹으려고 하면 엄마는 내게 신신당부했다. 직장 동료를 마주치게 된다면 인사는 하더라도 엄마라고 부르지 말라고. 처음에는 그 말이 너무 황당해서 "그럼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뭐라 불러." 하며 따지듯 물었다. 그러면 엄마는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럴만한 사정이 있으니 이해하고 그냥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했다. 혹시 누가 묻기라도 하면 이모라고 말하랬다.
그 말에는 대답도 하기 싫어서 꿍한 채로 그릇에 얼굴을 파묻을 것처럼 고개를 푹 숙여 밥만 먹곤 했다.
그런 날이 있을까 했지만 어떤 날에 진짜로 엄마의 동료들과 마주친 적이 있다. 엄마는 도둑질을 들키기라도 한 듯 제 발 저리며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나를 조카라고 먼저 소개했다. 나는 그 장단에 맞추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고 고개만 까딱하고 인사했다.
동료분들은 "이모랑 사이가 참 좋네." 이런 말을 하고는 가던 길을 갔다. 나는 그런 상황과 현실이 매우 거북했다.
기분 나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엄마의 휴대폰에 내 번호는 이름 세 글자로 저장되어 있었다. 하트 같은 이모티콘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적어도 다른 엄마들처럼 '딸'이라는 호칭으로 저장할 수도 있었을 텐데. 엄마는 무슨 이유에선지 항상 나를 이름으로만 저장해 두었다. 참말로 정도 없다고 휴대폰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엄마는 내가 쪽팔리나 보다.
그런데 내가 엄마를 닮았는데 나를 조카로 볼 수가 있나. 그 사람들도 정말 바보다.
자꾸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만 들었다.
나의 불만이 쌓여만가고 있던 어느 날.
엄마가 자주 가는 미용실에서 엄마를 기다리면서 어른들의 이야기를 우연찮게 듣게 되었다. 일부러 사장님이 손님이 없을 때 앉아 쉬는 작은 온돌방에 들어가 있으라며 텔레비전도 켜주고 하셨는데 아마 어른들은 내가 TV 소리 때문에 이야기를 못 듣는다고 생각하며 대화를 나눈 것 같았다. 들어보니 내용은 이랬다.
엄마의 직장에서는 자식 딸린 여성이 일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비정규직인 데다가 눈치가 보여 어쩔 수 없이 싱글인 척하며 일을 하고 있다고. 전화가 왔을 때 누가 보기라도 할까 봐 휴대폰에 딸을 딸이라고 저장해두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엄마에게 화났던 마음이 조금은 풀렸다. 그런데 그런 사회가 이해되지 않아서 다시 화가 났다.
조금 더 자라고 나서야 그게 차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옛날이야기 속의 홍길동도 아니고 엄마를 엄마라 부르지 못했던 이유가 '애 딸린 이혼녀'라는 쓸데없는 낙인으로 수많은 엄마들이 힘들게 먹고살기 위한 투쟁 아닌 투쟁을 하며 살 수밖에 없던 사회에 있었다니.
그날의 이야기를 들은 후로부터는 엄마의 상황을 이해하긴 했다.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고 실로 아무렇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엄마를 굳이 이모라고 부른 적은 없다. 그건 거짓말을 못하는 내 성향이기도 했지만 자존심이기도 했다.
그 속은 어땠을까. 세상에 하나뿐인 딸을 조카라고 소개하는 엄마의 마음은.
엄마들의 인내는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난 같은 여성이라도 그렇게 인내하는 대단한 사람이 못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