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이 쉬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다만 이 정도일 줄은, 정확히는 이 정도를 내가 못 견뎌할 줄은 몰랐다. 이렇게나 나를 다른 사람으로 살게 할 줄은 정말이지 몰랐다.
돈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불우한 환경에 어린 나이부터 독립적으로 살아야 했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다 해 본 나라서 돈이 없으면 내 능력껏 뭘 해서든 벌면 된다는 생각으로 돈 자체에 연연하지 않고 지내왔는데 요즘 나는 돈이 제일 무섭다.
따박따박 월급을 받을 때는 몰랐지.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참지 않고 행했는데 자영업을 시작하고서부터는 그 모든 것을 억지로 참게 됐다. 그렇다고 내가 먹고 싶고, 사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이 과하게 비싸거나 지나친 일도 아닌데. 월급쟁이 때는 열 번 원할 때마다 열 번 다 충족시켰다면 지금은 열 번 중 세네 번 정도만 하고 지낸다. 그 세네 번도 아끼고 아껴서 말이다.
월급 받고 살 때는 월급날을 굳이 기다리지도 않았다. 보통은 항상 잔고가 있었고 잔고가 없으면 신용카드라도 있었기 때문에 월급날이 언제든 늘 같은 하루였고 원하는 게 있을 때 고민을 길게 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월급은 매달 그 날짜에 내 통장으로 꽂히니까 뭐 하나 살 때 딱히 가격을 확인하지도 않았었는데 지금은 마트나 편의점에 붙어있는 가격표부터 살펴보고 흠칫 놀라는 때가 많아졌다. 그런 탓인지 혼잣말이 늘었다.
예를 들어 "미쳤다! 바나나우유가 언제 1,700원이 됐지?"
가격이 200원 오른 것에도 망설이는 발언, 내 입으로 나온 건데 내가 듣기에도 민망한 이런 말들을 자주 한다. 물가 상승과 함께 물가 체감도 역시 상승하는 자영업자는 진짜로 단 몇 백 원에도 예민해진다.
무서운 것은 돈뿐만이 아니다.
월세, 관리비, 재료비, 대출이자와 세금까지. 온전히 내 돈으로 시작한 장사가 아니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이 버겁더라도 경제적 여유가 없으면 덜 쓰고 아끼며 나 혼자 빠듯하게 살면 그만이다. 그런데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은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주변을 살피지 못해서 누군가를 서운하게 하거나 오해를 사는 일도 있었는데 그 사실을 알거나 깨달을 때마다 자책했다. 그렇게 나를 갉아먹다 보니 어떤 모임에 낀다는 것 자체로 민폐 같았고 자연스럽게 장사를 핑계로 어디에서든 빠지는 사람이 되었다.
혼자서도 다 잘하고 그만큼 외로움을 타지 않던 사람이었던 나는 자영업자가 된 후로 그렇게 점점 고독한 사람으로 변해갔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우울감이 따랐고 상담이 필요할 지경에 이르렀다.
고독한 시간 동안 냉정한 사실도 깨달았다. 관계란 기브 앤 테이크, 받는 게 있어야 준다는 것. 그것이 물질이든 마음이든 연락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말이다. 이런 생각이 지배적이다 보니 일도 관계도 나를 쓸쓸하게만 만들었다. 하지만 내 선택이고 내 현실이고 내 몫인 걸 알기에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묵묵히 견디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마음을 다해 내게 힘을 불어넣어 주는 사람들이 있어 입 꽉 다물고 버틸 수 있었다. 내가 이전과 다른 삶을 살고 있어 소홀해졌어도 나의 안부를 먼저 묻고, 찾아주던 사람들. 그들 덕분에 이제 와서야 그저 그랬던 것을 알게 된 관계에 대해 '그럴 수도 있지, 그런 사람도 있지.' 하며 쿨하게 넘길 수 있었고 나의 가치를 그 사람들에게서 찾게 되는 다소 이상하고 재밌는 경험(?)을 하며 지내는 중이다. 이 모든 게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매일 되새긴다.
며칠 전, 항상 문밖에서 테이크아웃만 해가던 단골손님께서 안으로 들어와 매장을 둘러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매번 밖에서 커피만 받아갔는데 안에 들어오니 너무 좋네요. 분위기가 딱 사장님 가게 같아요. 평소에 사장님한테서 오는 그 느낌 그대로예요. 이 자리에 카페가 두 번쯤 바뀐 걸로 아는데 사장님이 제일 꾸준히 잘하고 계신 것 같아요."
잘하고 있다는 말, 내 공간이 나답다는 말은 내가 이곳에서 보낸 일 년의 시간이 허투루 쓰이지 않았다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그래. 사업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최선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지. 여러모로 부족한 내가 그나마 제일 잘하는 건 좋아하는 것에 대한 한결같은 마음이니까. 진심 하나로 오늘도 이겨내 본다.
그리고 바란다.
모두가 괜찮기를, 미끄러지고 쓰러질 것 같아도 꽉 잡고 버틸 수 있는 힘을 찾기를. '아프니까 사장이다' 말고 '바쁘니까 사장이다' 하게 해 주는 경제호황 시대가 오기를.
이틀 후면 자영업을 시작한 지 딱 일 년이 된다.
벌써 일 년은 노래로만 들을 줄 알았는데 내게도 그 일 년이 왔네? 아무튼 초보 김사장 메리 자영업 1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