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유럽의 한 카페에서 손님의 주문 태도에 따라 음료 가격을 다르게 지불하게 하는 결제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실제로 그 카페 메뉴판 사진을 보니 똑같은 커피라도 주문하는 사람이 무례한 태도를 보이면 비싼 가격으로, 매너 있는 태도로 주문하면 저렴한 가격으로 책정되어 쓰여있었다.
예를 들어 카푸치노 한잔을 주문할 때
"카푸치노." "카푸치노 하나." 이렇게 주문하면 8천 원
"안녕하세요. 카푸치노 한 잔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주문하면 5천 원
이보다도 공손하고 매너 있는 손님에게는 특별히 더욱 저렴하게 2천 원
이런 결제 방식인데 매너를 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들이 매너에 대해 상기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과 서로 기분 상할 일 없이 좋은 분위기의 카페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주인장이 만든 방침이었다.
그 글을 읽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그리고 어떻게 그 생각을 실천할 수가 있지? 하며 거의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손님이 왕이라는 마인드를 가진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했다가는 주제 모르고 배가 불렀다며 가게가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안 그래도 경쟁하는 시대에 내 커피만 특별히 금가루를 뿌린 커피도 아니고 갈 수 있는 카페는 널리고 널렸으니 여유가 넘쳐서 취미로 하는 자영업이 아닌 이상은 고객의 입맛에 맞춰야 그나마 살아갈 수 있다.
우리를 살게 하고, 보람차게 하는 의미에서 손님은 왕을 비유할 정도의 귀한 분일 수는 있지만 말 그대로 손님이 왕일 수는 없다.
나 역시 앞서 말한 카페의 주인장처럼 가격 차이를 둘 수는 없어도 매너 있는 사람들에게는 입가심용 사탕 하나라도 쥐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요즘은 이상하게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사에 대답조차 하지 않는다. 그래도 필요한 주문사항 이외의 대답을 하지 않는 그런 손님이 차라리 낫다. 이렇게 말할 정도로 커피 한잔 주문을 받으면서도 온갖 일을 겪는다.
내가 생각하는 기본적인 주문 태도는 이렇다.
"안녕하세요. 아메리카노 아이스로 한 잔만 테이크아웃으로 주세요."
뭐 인사는 생략하더라도 원하는 바를 문장화해서 말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점점
"아메리카노 하나." "커피 하나." "나는 라떼." 이런 식으로 짧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만약에 그렇게 말을 했다면 확인을 위한 질문에는 대답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따뜻한 걸 원하는지 시원한 걸 원하는지, 어떤 커피인지 나로서는 반드시 물어야 하는 것인데도 대답하기 귀찮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짜증스럽게 고갯짓 하는 손님을 보면 나도 덩달아 미간이 찌푸려진다. 카페 사장이 독심술사도 아니고.
그것뿐만이 아니다. 결제가 끝나고 카드를 돌려드릴 때 한 손의 검지와 중지만 펼쳐 집게 질 하듯 받는 사람도 있고 카드나 현금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 심한 경우에는 카드가 주문대를 넘어 바닥까지 던져진 적도 있다. 설마 그렇게까지?라고 하겠지만 생각보다 꽤 많다. 그런 태도는 완벽한 무시라고 밖에 읽히지 않는다.
그래. 거기까지도 양반이라 치자. 어떤 사람은 아예 "야"라고 부르면서 대놓고 반말하며 하대한다. 극히 드물긴 하지만 욕설을 쓰는 사람도 있다. 서비스업에서 베테랑인 나도 그럴 때면 너무 화가 나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기도 한다. 직업을 떠나서 나도 사람이지 않나. 어디까지 참아줘야 그걸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우리가 무례함을 참아야 한다면 그들도 무례한 태도를 참아야 하는 게 아닌가. 대한민국은 뭐든 '못 참지' 한다면서 서비스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왜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계속 참아야 하는 것인가.
우리나라에는 대략 740만 명의 감정노동자가 있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감정노동자 보호법 같은 것보다는 유럽 카페의 주인장처럼 현실로 와닿게 하는 방침이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응대가 더 효율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반말에는 반말로, 무시에는 무시로 되돌려 받으면 그 기분을 조금이라도 이해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이해라도 하면 다행일 텐데'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현실이 참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