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기 Jul 14. 2019

버스 하차장과 병원의 닮은 점

아빠와 함께 병원에

밤새 홍역에 시달리는 꿈을 꾸고는, 조금 늦게 눈을 떴다. 어젯밤 러닝 후 제대로 풀어주지 않은 두 종아리가 딱딱했다. 평일의 늦잠은 몸도 마음도 무거워져서 싫다. 이로써 내일은 더 부지런해질 수 있겠지. 아침의 나는 너무 예민해서 혼자 있는 편이 좋다.


출근길은 천천히 걸어서 30분 거리. 햇빛, 바람, 새, 그리고 사람들과 자동차를 만난다. 유모차를 밀며 지나치는 젊은 엄마는 나를 보고, 나는 고개를 돌린 아기를 본다. 아기를 힘껏 몸을 젖혀 작은 비둘기를 보는데, 비둘기는 뭘 보는지 모르겠다. 빨래를 다정하게 말려줄 것 같은 햇빛과 아직은 쌀쌀한 바람, 그리고 늘 생각 없이 지나치던 호두과자 전문점이, 어제 아빠와 함께 병원에 다녀온 일을 떠올리게 했다.


터미널 하차장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처음이었다. 편의점에서 사 온 시원한 음료를 만지작 거리며, 오고 나가는 버스들을 구경했다. 거대한 고속버스들이 당당한 기세로 들어와 멈춰 선다. 한 숨 자고 일어난 듯한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 기지개를 켜고 나면, 버스는 재빨리 후진해 가버린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주차 선과 좁은 길을 두고, 어쩜 저렇게 커다란 차를 시원하게 조종할 수 있을까.


아빠가 타고 온 버스는 10분 정도 늦었다. “아이고, 허리야.” 아빠는 나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나서 차가운 결명자 음료를 마셨다.



병원은 버스 하차장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큰 건물은 질환 별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각 구역마다 환자와 보호자들이 가득했다. 이비인후과 진료실 앞의 좁은 복도. 서너 개의 진료실 미닫이 문이 수시로 열리고 닫히며, 간호사들이 환자의 이름을 불렀다. 의자에 앉거나 벽에 바짝 붙어 서서 대기하는 사람들 사이로, 휠체어를 탄 환자들이 간신히 지나갔다. 어떤 중년 남성들은 기다림에 지쳤는지, 통화하는 상대에게 짜증을 부리기도 하고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 재촉을 하기도 했다. 아빠가 지루할까봐 지난 얘기를 꺼내며 웃었다.


아빠가 진료를 받을 곳인 1번 방. 문이 열고 닫힐 때마다 슬쩍 안을 들여다보았다. 하얀 가운을 입은 세 사람이 보였다. 젊은 두 사람은 한쪽 벽에 붙은 다섯 대 정도의 모니터를 보고 있었고, 나이 지긋한 남성은 테이블에 걸터앉아 진료를 보고 있었다. 곧 아빠의 이름이 불렸고, 진료는 간단히 끝났다. 다음 진료 예약을 잡고, 수납을 하고, 처방전을 받아 병원 밖으로 나왔다. 해는 여전히 밝았고, 상쾌한 바람에 소독약 냄새가 날아갔다.


아빠는 진료에 만족했고, 나는 병원의 촘촘한 시스템에 감탄했다. 저렇게 많은 환자들이 제시간에 진료를 받을 수 있다니. 환자들의 이름을 분명한 목소리로 불러 다음 사항을 정확히 안내해주는 간호사들처럼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엄마와 먹겠다며 간식용 호두과자 한 봉지를 샀다. 그것마저 내 지갑을 열지 못하게 했다. 갓 만든 호두과자는 달고 따뜻했다.

작가의 이전글 여행자의 서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