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아침마다 작업실까지 힘껏 달린 일로 기억될 것 같다. 출근 시간을 정해두고 지각할 때마다 그에게 만원씩 송금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30분 거리를 재빨리 걸어 작업실에 도착하면, 아이패드를 작업대 위에 올려놓고 날짜와 시간이 보이도록 사진을 찍어 보낸다. 줄줄 흐르는 땀을 닦고, 인스턴트 커피를 뜨겁게 한 잔 타서 하루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지난주에 한 번 지각을 했고, 그는 매우 즐거워하며 9시 1분이 되자마자 친절히 어떤 송금 방법이 편할지 물어왔다.
어떤 일을 직업으로 삼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우선순위와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여러모로 어설펐던 나는, 생계라는 우선순위를 놓아주고 편안한 기법을 찾아 흉내 내는 데에만 3년이 걸렸다. 이것을 쉽게 해내버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을 소중히 대하고 오랫동안 잘 쌓아온 이들로, 나는 늘 이들을 동경한다.
마음속에 어른거리는 것들을 잘 팔릴 만한 것에 담기 위해 애쓰는 일과를 보낸다. 가방이 마음에 들면 강아지처럼 꼭 끌어안고 예뻐해주기도 하고, 불안한 마음이 불쑥 들 때면 작업을 많이 한다고 자랑하는 어린 래퍼들의 자신만만한 노래를 듣기도 한다. 주홍빛 구름을 힐끔힐끔 보며 퇴근해서 냉장고에서 아무거나 꺼내 배불리 먹는다. 무겁게 피곤한 날이면 회사를 다닐 때가 생각나, 제대로 일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한다.
하루를 게으름 없이 잘 보냈는데도 어쩐지 헛헛한 마음이 드는 밤이 있다. 그럴 때면 잠이 올 때까지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그것마저 영 재미가 없으면 운동화를 신고 풀냄새를 맡으러 나간다.
11시 반. 늦은 시간이지만 나는 강을 믿는다. 구름이 가득해 희뿌연 밤하늘은 나무들을 그림처럼 보이게 한다. 이렇게 짙은 풀냄새를 힘껏 들이킬 때면,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너무나 천연하게 아름답고, 사람들도 대부분 말없이 자기 갈 길만 가기 때문에, 강에서는 나쁜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무가 무성한 좁은 길을 지나 넓은 아스팔트 길이 보이기 시작하면, 귀뚜라미 소리는 잦아들고 곳곳에서 즐거운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너한테만 하는 얘기야. 진짜 처음 하는 얘기야.” 비밀 이야기를 너무 크게 말하는 청년. “플랭카드라도 준비할걸 그랬어. 하하하하.” 함께 큰 웃음을 지으며 단체 사진을 찍는 동호회 사람들. “앞에 사람 있어!” 따릉이 자전거를 타고 휘청거리는 귀여운 연인들. 이 날 나는 자전거에 두 번 부딪힐 뻔했다. 그리고 열두 시에도 버스킹을 하는 청년들. 역시 강은 믿을만하다.
돌아오는 길엔 내가 대체로 혼자인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렇게 종종 허전함을 느끼는 이유가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 때문이라는 것을 느꼈다. 곧 시원한 소독약 냄새가 났고, 흐르는 물 사이로 인어 동상이 보였다.
힘없는 어깨를 하고 바위 위에 가련히 앉아 있는 인어 동상. 그녀는 늘 강을 등지고 저 먼 곳을 조용히 내다보고 있다. 불이 환하게 켜진 빌딩들 때문에 눈이 부셔 고개를 돌렸니. 물에 발을 담그고 꿈을 말하는 저 네 명의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니. 아니면 저기 저 아파트에 살고 싶니.
내가 딛고 있는 이 땅도 어찌 보면 무덤인데, 나는 무엇을 더 원하기에 마음이 이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