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는 것은 내가 된다
신해경의 노래를 들으면 담배 냄새가 난다. 곧 우는 눈을 하게 된다. 이이언의 목소리를 들으면 짙은 위스키 향이 올라와 속이 울렁한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아찔한 무력함에 창을 닫게 되고, 그를 생각하면 안기고 싶은 몸이 된다.
한 사설에서 ‘고기 몸’이라는 말을 읽었다. 끝없이 욕망하는 ‘고기 몸’에서 벗어나, 굴레를 벗어난 ‘빛의 몸’을 갖추어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고기 몸.
‘고기 몸’하고 속으로 되뇌면 상은 저 멀리, 덩그러니 놓인다. 마른 혀의 모양과 뱃속 공간이 차례로 느껴지고, 비위가 싹 가신다.
내 몸 말고 고기 몸.
성장 아닌 생장.
애도를 뺀 천도.
이런 무정한 단어를 접하면, 어쩔 줄 모르게 집착하던 것들이 똑 하고 떨어져서 사방이 트이는 기분이 든다.
‘이 몸은 쾌와 고를 느끼는 감각기관 덩어리다.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생장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망이 있고, 그것은 각자의 선택과 운이다.’
빛의 몸까지는 모르겠다. 익숙한 것을 반복한 모양대로 굴러가게 된다면, 몇 가지 두고 가고 싶은 게 있어 애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