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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엽 Oct 21. 2021

라이트 형제와 항공산업의 시작

기술과 산업의 발달 9

"대단한 겸손과 지치지 않는 노력, 조용한 태도와 굉장한 자신감으로 옳은 것을 바로 볼 줄 알았고 끊임없이 가치를 추구했다. 그는 이런 인생을 살다가 죽었다."


라이트 형제(Wright brothers) 중 한 명인 윌버가 45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을 때, 그의 아버지가 일기장에 남긴 글이다.



라이트 형제의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한 라이트 형제


라이트 형제는 1903년 12월 세계 최초로 동력을 이용한 비행에 성공했다.


미국 인디애나주와 오하이오 주에서 태어난 이들 형제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키티호크(Kitty Hawk) 근처의 킬 데빌 언덕(Kill Devil Hills)에서 동력 비행기 라이트 플라이어 1호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약 12초 동안의 짧은 비행에 성공하면서 세계 최초의 동력 비행 성공 기록을 남겼다.



최초로 동력 비행에 성공한 라이트 플라이어의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인류의 꿈이었던 하늘을 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문명은 빠르게 진화했다.


인류 문명의 급속한 발전


이후 1908년 유럽의 프랑스에서 최초의 비행학교가 윌버 라이트에 의해 시작되었고 1년 뒤에 최초의 군용기가 미 육군에 납품되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항공 산업은 글렌 하몬드 커티스(Glenn Hammond Curtiss)에 의해 세워진 ‘커티스 비행기 및 자동차(Curtiss Aeroplane and Motor Company)’사로부터 시작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훈련 비행 중인 커티스 사의 JN-4  <출처 : 위키피디아>



이후 라이트 형제와 커티스 사이의 특허권 분쟁이 발생되기 시작했다. 둘의 다툼으로 미국의 기술 발전이 잠시 주춤한 사이, 유럽이 잽싸게 항공 산업의 주도권을 챙겨갔다.


유럽에서의 비행 산업 투자


영국과 프랑스는 왕족과 귀족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수많은 항공대회를 개최, 잠재적인 인력 양성은 물론 항공 산업의 발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비행기가 전쟁에 사용되면서 유럽의 항공 산업이 미국을 앞지르는 현상이 발생했다.



1910년 만들어진 라이트 형제의 17번 엔진 <출처 : 위키피디아>



한번 벌어진 기술 격차는 제1차 세계대전 때까지 이어졌다.


전쟁을 통해 급격히 성장한 기술은 튼튼해진 기체와 효율성 높은 엔진을 만들어 냈다. 이런 우수한 기술이 비행기 개발에 적용되면서 안전하고 효율성 높은 운송 수단으로 태어났다.


수많은 화물을 운반할 수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상업적 항공 산업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유럽에는 군에서 쏟아져 나온 조종사들로 민간 항공 산업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었고 미국은 이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투기 <출처 : 위키피디아>



미국 항공 산업의 시작과 우편 항공법


보다 못한 미국은 1915년 윌슨 대통령 시대에 '미국 국립항공자문위원회(NACA, National Advisory Committee for Aeronautics, 현 NASA의 전신)'를 창설해 항공 산업에 본격 투자하기 시작했다.


전쟁으로 도로가 파괴된 유럽은 항공 운송이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떠올랐으나 촘촘한 철도망과 도로가 깔려 있는 미국은 불편한 좌석과 낯선 이동 환경의 변화 등으로 사람들의 외면을 받았다.


결국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연방정부가 직접 나섰다.


민간업자의 '항공 우편물 취급에 대한 법(Air Mail Act of 1925, 1925년 우편 항공법)'이 통과되면서 항공 운송 시장이 순식간에 확대되었다.



더글라스(Douglas)가 첫 개발한 우편 수송용 비행기 <출처 : 위키피디아>



민간 항공사들이 이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극한 경쟁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투자가 늘어났다.


이는 미국 내 초기 항공 산업을 강화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후 1926년 상업 항공법(Air Commerce Act of 1926)이 제정되면서 민간 여객 운송에 대한 안전 기준을 개선하고 유지하기 위한 제도와 규칙을 만들었다.


항공 기술의 발전과 사업적 성공


1차 대전 후 러시아 혁명으로 공산주의를 피해 수많은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비약적인 항공 기술 발전이 진행되었다.


1935년에 만들어진 맥도넬 더글러스사의 DC-3기는 쌍발 프로펠러 여객기로 '하늘을 나는 기차'라는 별명을 가진 항공기였다.

 


스웨덴 상공을 운행 중인 스칸디나비아 항공의 더글러스 DC-3  <출처 : 위키피디아>



이 기체는 정부의 보조금 없이, 순수하게 고객의 운송만으로 이익이 발생하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서 본격적인 항공 운송의 새 장을 열었다.


기체도 16,100대(군용 포함)가 판매될 정도로 대박을 맞았다. 당연히 성능도 좋았다.  


이 뒤를 이어 진정한 항공 여행의 시대를 연 것은 1969년에 도입된 보잉 747(Boeing 747)기 였다.


항공 여행의 시대


세계 최대 여객기 시대를 연 이 기체는 점보 제트(Jumbo Jet)라고도 불리며 ‘하늘의 여왕(Queen of the Skies)'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대성공을 거둔 보잉 747기  <출처 : 위키피디아>


최고 정원은 524명이며 수많은 연관 파생 비행기를 만들어 내 미국 내 핵심 수출품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이 기체의 등장으로 국내 항공의 지역적 한계를 넘어 전 세계를 주름잡는 국제 항공 여행의 대중화에 성공했다.


아울러 대규모 항공 운송이 진행되면서 세계 경제의 성장에 한몫을 담당한 기체로 경제사에 한 획을 그은 비행기이다.



최고의 미 전투기 F22 랩터의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항공 우주 산업을 주도하는 미국


이 외에도 군용 항공기 분야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활약한 전략폭격기 B-29를 선두로 스텔스, 무인항공기, 드론을 비롯하여 신형 항공기용 엔진 개발 등 지금도 미국은 군용기 분야에서 세계 정상을 고수하고 있다.


약 100여 년간 축적된 노하우와 기술력으로 미국의 주력 수출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지금은 항공 우주산업으로 확대시켜 그 규모를 더 키워나가고 있다.


미국의 기술력은 자국의 무역 규모를 늘리는 것은 물론 인류에게 생활적 편리함과 혜택을 가져다준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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