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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엽 May 15. 2020

'정화(正貨)유통령‘과
1837년 금융공황

미국 경제 역사 이야기 23

1834년에서 36년까지 미국 경제는 호황기였다.


남부의 면화 가격이 오르고 북부의 제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운송의 효율성이 증가하자 유럽으로의 무역도 상승했다. 이 효과로 많은 양의 금과 은이 미국으로 몰려들었고, 은행의 숫자가 증가하면서 유통되는 은행권의 발급 규모도 커졌다. 


호황기에는 언제나 투자가 늘어났고 돈을 더 벌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심도 같이 커 나갔다.


1834년 경제적 호황과 땅 투기 


서부에서는 주식보다 땅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제퍼슨이 나폴레옹으로부터 루이지애나를 매입한 이후 연방정부는 그 땅을 민간에게 판매하면서 땅 투기 열풍이 불어온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돈을 한 번에 구하기 힘든 사람들이 은행으로부터 담보를 잡고 대출을 받아 그 대출금으로 토지대금을 냈다. 토지 가격이 상승하자 그 비율은 점차 증가했다. 자연스레 땅이 돈을 부르고, 그 돈으로 다시 땅을 사는 순환 체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1837년 공황 당시 실업자의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특히 막 이곳으로 건너온 이주민들은 급히 돈이 필요한 경우, 땅문서를 중개인에게 헐값에 넘겼다. 그 문서를 사들인 중개인은 다시 그 땅으로 대출을 받은 뒤, 대출금으로 이주민들의 땅문서를 다시 헐값에 사들였다. 국가의 귀한 땅이 중개인들의 이익만 늘려주는 상황이 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은행권의 발급과 유통은 당연히 증가했고 이를 지켜보는 잭슨 대통령은 대경실색했다.


원래 은행권을 불신했던 그는 엄청나게 유통되는 은행권을 바라보면서, 투기가 투기를 부르는 이 상황을 정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특별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잭슨 대통령은 의회에 강력한 제재 정책을 요구했다. 하지만 수많은 정치인이 땅 투기에 연관되어 있어, 반대가 심해 쉽사리 제재 안건의 통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1836년 '정화(正貨)유통령' 선포


잭슨 대통령은 의회가 휴회에 들어간 시기에 맞춰 1836년 ‘정화(正貨)유통령(Specie Circular)’을 기습적으로 선포했다. 이는 국가의 토지를 매입하고 그 대금을 지급할 때는 무조건 금화나 은화로 내도록 한 것이다. 


한순간에 땅 투기는 잠잠해졌다. 하지만 서부에서의 금과 은의 요구나 높아지면서 동부의 금과 은이 빠르게 유출되기 시작했다. 은행권을 소유한 이들은 은행으로 몰려가 대거 금태환을 요구했다.

 

금과 은의 수요 폭발로 한꺼번에 지급 요구에 내몰린 은행들이 자금을 마련하고자 결사적으로 단기 차입에 달려들면서 일순간에 금리가 상승했다.


전국적으로 사람들의 금 사재기 열풍이 불면서 금화를 구하지 못한 토지 매입자들은 결국 포기하게 됐고 신용경색을 우려한 은행들은 기존 대출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1837년 공황 당시 잭슨과 밴 뷰런을 풍자하는 삽화  <출처 : 위키피디아>


더구나 주 정부를 도와주고자 주법은행에 예치된 정부 예금을 연방정부가 찾기 시작(연방정부는 남아있는 예산 자금을 각 주 정부에 골고루 나눠주려고 하였다)했다. 


은행권 유통이 축소되고 금태환을 해주기 위해 고금리의 급전을 마련하던 은행들이 마침내 비명을 질렀다.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한 사람이 먼저 파산했고, 뒤를 이어 은행도 줄줄이 무너졌다. 마지막으로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회사가 쓰러졌고 주가도 하락했다. 서부에서 시작된 은행 파산은 동부로까지 번졌다.


이 시기 유럽에서의 경제 상황도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바다 건너 영국은 자국의 금과 은의 유출을 막고자 금리를 인상했는데, 이 효과로 영국 경제가 위축되었다.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던 목화도 주문량이 감소하여 가격이 절반으로 폭락했다.


더구나 영국 투자자들이 미국 주식을 팔고 영국으로 자금을 이전하면서 하락하던 주가가 폭락으로 이어졌다. 토지 매매를 통한 호황기에서 경제공황으로 일순간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1837년 금융공황


1837년에 연방정부의 세수 수입이 절반으로 줄어들면서 극심한 불황이 시작됐다. 


잭슨은 1837년 대통령 임기를 끝내고 이 모든 어려움을 후임 대통령 마틴 밴 뷰런(Martin Van Buren, 1782~1862, 미국 제8대 대통령)에게 넘겼다. 이 불황은 1843년까지 이어졌다. 


밴 뷰런 대통령은 불경기를 이어받아 극복에 애를 썼으나 결국 실패하고 재선에서도 떨어졌다.



마틴 밴 뷰런(Martin Van Buren)  <출처 : 위키피디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시기의 산업구조가 농촌 중심의 자급자족 형태였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급속한 산업 경제의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농촌은 버티면서 근근이 견디어 냈으나, 도시의 상공인이나 근로자에게는 매우 힘든 고통의 시기였다.


'정화(正貨)유통령'은 1838년 5월 의회의 결의에 따라 결국 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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