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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엽 May 14. 2020

'은행 전쟁'과 '제2 미국은행'의 종료

미국 경제 역사 이야기 22

'1819년 공황'은 지폐의 발급 증가가 하나의 원인 이었다.


1819년 공황의 결과


그 중심에는 '제2 미국은행'이 있었다. 물가의 폭등과 토지의 투기 증가 등으로 시중의 유동성(돈)을 회수해야 함에도 오히려 은행권(지폐) 발급을 늘리는 상황을 발생시켰다.


경기의 과열은 더 심화하였고, 초대 은행장 윌리엄 존스의 경제적 지식과 경험 부족으로 혼란은 더 가중되었다.


뒤를 이은 은행장 랭던 취비스는 반대로 과도한 대출을 회수해 나갔다. 급히 신용을 줄이자 유동성이 축소되며, 경제가 하락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아울러 나폴레옹 전쟁의 종결로 유럽으로의 농산물 수출이 줄어들고 있었다. 미국 농민들의 삶이 더 힘들어지는 시점이었는데, 공황으로 더 궁핍해졌다.


대출의 회수와 자본의 급격한 공급 감소는 필연적으로 자산 가격 하락을 불러오게 되고, 토지 가격이 빠르게 하락했다.


자산가치(토지)의 하락과 수입의 감소로 대출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개인의 파산이 속출했다. 담보를 헐값에 내다 팔기 시작한 은행들이 자산 건전성을 맞추지 못해 무너졌다.


실업률이 상승하고 실업자들이 거리로 쏟아지면서 부의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주법은행들은 무너졌지만, '제2 미국은행'은 살아남았다. 오히려 연방정부의 수입을 운용하다 보니, 여유 자금으로 주법은행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했다.



대통령 시절의 잭슨  <출처 : 위키피디아>


 삶이 팍팍해지고 경제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서민들의 불만은 은행과 금융에 집중되었다.


이 시기에 앤드루 잭슨이 대통령 당선이 되었다. 시대적 배경과 경제적 상황으로 잭슨은 '제2 미국은행'이 특혜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했다.


'제2 미국은행'의 기간 종료


‘제2 미국은행’의 면허 기간 연장은 만기 이전부터 정치적 논쟁이 이어졌다. 대통령 선거 때 주요 공약의 하나로 거론될 정도였다.


잭슨은 '제2 미국은행'의 기득권에 강한 어조로 비판했고, 화폐 발행권에 대한 권한을 의회가 가져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런 잭슨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제2 미국은행'의 기간 연장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할 정도였다. 은행장인 비들은 갈 길이 바빠졌다. 잭슨 대통령을 설득하기도 하고 생각을 바꾸려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오히려 감정적 갈등만 깊어졌다.


조바심이 난 비들은 '제2 미국은행'의 기간이 만료되기 4년 전인 1832년에 면허 연장을 의회 의원들에게 요구했다.


헨리 클레이(Henry Clay. 1777~1852) 상원의원 주도하에 의회에서 갑론을박 토론을 거친 후, 표결 결과 연장 승인이 났다. 하지만 이 안건은 그 해 7월 잭슨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여 면허 연장 안은 실패했다.



 은행전쟁(Bank War)  <출처 : 위키피디아>


은행 전쟁(Bank War)


잭슨은 '제2 미국은행'의 연방정부 자금을 모두 주법은행으로 이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엄청난 자금이 빠져나가 주법은행 쪽으로 이동하자, '제2 미국은행'은 이를 관리 감독할 힘을 급속히 상실했다.


이 당시 정부 자금을 받은 은행들을 일명 ’애완 은행(pet banks)’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잭슨 대통령에게 고분고분 순종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뜻이었다.


애완은행들은 차고 넘치는 자금을 다시 하위 은행에 재투자(쉽게 표현해 투기)하게 되는데, 많은 수가 ’ 살쾡이 은행(Wildcat banking)'이었다.


 '살쾡이 은행(와일드캣 은행)'은 소유한 자본금 대비 은행권을 초과 남발한 소규모 은행을 말한다.  은행의 위치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외진 시골이나 거의 찾을 수 없는 곳에 등록이 되어 있어, 금이나 은으로 태환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러한 은행에 투자한 주법은행들은 결국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게 되어 '1837년 공황'이 발행하게 된 주요 원인이 되었다.


'제2 미국은행'은 결국 기간이 종료되어 문을 닫게 되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은행 전쟁(Bank War)’이라고 부른다.



잭슨과 은행의 싸움을 풍자한 삽화  <출처 : 위키피디아>


중앙은행을 중지시킨 잭슨은 필사적인 노력으로 1834년에 연방정부가 가진 모든 채무를 상환했다.


이때가 미국 건국 이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채가 없는 시대였다. 하지만 이를 위해 급격한 재정 축소를 진행하여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의 부족을 가져왔다.


더구나 부채 청산을 위해 세금을 올리기 위한 관세 인상 정책과 국가 인프라 건설을 축소하여 예산을 절감하는 방식을 동시에 진행하게 되면서 급격한 경제 위축이 진행되었다.


그가 국가의 부채를 모두 청산하려는 목적은 단순했다. 빚이란 그 자체로 나쁜 것이며, 국가의 채권 발행을 억제하여 지폐를 모두 없애고 오로지 금화나 은화만으로 유통 체계를 만들려고 했다.


그는 지폐를 극도로 싫어했다. 아울러 국채 발행을 통해 은행가들이 은행권을 발급해 얻게 되는 이익 또한 혐오했다.



헌법 위의 잭슨  <출처 : 위키피디아>


그는 1845년에 사망했는데, 그의 별명은 ’ 올드 히커리(Old Hickory)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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