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대부조합 08
과거 저축대부조합이 가진 이미지는 따뜻했다.
일반 가정에게 집을 구입할 수 있게끔 저렴한 이자율로 대출해 주어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갖게 해 준 다음, 집을 구입한 가정이 근검절약하며 대출금을 갚아나가는데 도움을 준다는 성격을 가진, 지극히 서민적인 모습이었다.
이런 아름다운 금융기관의 운영 방침이 무참히 깨진 것은 인플레이션에 의한 이자율 상승이 주요 원인이었다.
급격히 상승한 예금이자로 발생된 예대마진의 손실은 급격한 손실 확대에 따른 자금 압박을 불러왔다.
이는 저축대부조합의 근간을 뒤흔들어 놓았다.
결국 이를 보다 못한 레이건 정부에 의해 그동안 강력하게 묶여있던 금융규제가 술술 풀리게 되면서 사실상 일반 시중은행과 유사한 형태로 변해버렸다.
시중 은행의 투자 방식을 똑같이 사용해도 전혀 꺼릴 것이 없을 정도였는데, 기준이 된 것은 1982년에 제정된 ‘저축대부조합 구조 조정법(Garn–St Germain Depository Institutions Act of 1982)’이었다.
이 법이 의회의 승인을 받자 저축대부조합도 상업은행처럼 기업 대상의 부동산 투자와 담보 대출이 가능해진 것은 물론 위험성 높은 정크 본드(junk bond, 고위험 고수익 채권)까지 매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게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보수적 운영과 안정적 사업을 영위해 가던 저축대부조합 내에서 투기적인 낙관론이 자연스레 생겨났다. 돈이 된다면 뛰어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것이다.
아울러 회계 기준도 변경해 주었다. 기존에는 예상되는 비용을 사전에 미리 비용으로 쌓아놓는 대손충당금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 안전하다는 금융기관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대손충당금 규정에 대해 상당 부분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 주면서 이를 적립하지 않아도 위험성 높은 채권을 사고팔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더구나 가격의 변동성이 높은 부동산 투자 시에도 예상 수익을 장부에 이익으로 올려놓을 수 있게 되었고, 기업의 부동산 담보대출 시에도 100%까지 대출금 지급이 가능했다(기존에는 약 50% 였다).
예금을 맡긴 고객들이 보기에 이런 위험성 높은 금융기관에 자신의 귀중한 돈을 맡길 수 없다는 판단을 사전에 인식하듯, 예금보호 기준도 10만 달러로 대폭 상향시켜 사실상 정부 보증의 안전장치를 무상 제공해 준 셈이 되었다.
온몸을 둘러싼 쇠사슬이 끊어지자 저축대부조합은 훨훨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적은 수수료 수입에 만족하지 못한 조합의 영업자들이 대박의 꿈을 이루려 무리한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성실한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투기꾼으로 변모한 것이다.
많은 수의 저축대부조합들이 이익을 좇아 무리하게 투자한 것은 정크본드(Junk Bond)였다.
이것은 이자율이 높게 설정되어 있지만 신용 등급이 낮은 회사들이 발행한 채권이기 때문에 손실을 볼 확률이 매우 높았다.
이런 정크 본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있는데, 하나는 원래 우량한 회사가 일시적으로 신용도가 떨어져 부득이하게 낮은 등급으로 발행된 채권이 있고 다른 하나는 태생 자체가 신용 등급이 낮아서 발행한 회사의 채권이 있다.
앞의 회사가 발행한 것을 '추락천사 채권(Fallen Angel Bond)'라고 부르며, 뒤의 것을 '협의의 정크본드'라고 불렀다.
초창기 정크 본드 시장은 이 추락천사 채권을 집중적으로 매입하여 어마어마한 수익을 본 것을 뜻했는데, 투자자들의 불안한 심리적 영향을 이용한 것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부를 거머쥔 대표적 인물이 1970년대와 80년대를 주름잡았던 정크본드의 제왕 마이클 밀켄(Michael Milken)이었다.
그가 속한 회사는 드렉셀 번햄 램버트(Drexel Burnham Lambert, DBL)였는데, 이 회사 또한 당대의 금융회사로 거듭날 정도로 막대한 이익을 거둬들였다.
이러한 마이클 밀켄의 정크 본드를 대대적으로 매입하여 크게 사업을 벌인 대표적 금융기관이 바로 저축대부조합이었다.
위험성을 안고 있던 만큼,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타는 유조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