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소프트뱅크 제국의 창립자 10
비전펀드 2는 2019년 소프트뱅크 그룹의 손정의 회장이 주도한 대규모 투자펀드로, 21세기 초 기술투자 열풍의 절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이 펀드는 단순한 투자 도구를 넘어서 당시 기술 혁신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는 역사적 상징이 되었다. 비전펀드 2의 사례는 기술투자의 명암, 글로벌 자본의 움직임, 그리고 혁신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학습할 수 있는 핵심적인 연구 주제다.
2019년은 전 세계적으로 기술 혁신에 대한 낙관론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었고,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의 기술이 인류 문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손정의는 첫 번째 비전펀드의 성과에 고무되어 더욱 큰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게 되었다.
손정의는 2019년 7월 비전펀드 2 설립을 공식 발표하면서 108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 조달 목표를 제시했다. 이는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투자펀드를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펀드의 핵심 투자 분야는 인공지능 관련 기술에 집중되었으며, 소프트뱅크 자체에서 380억 달러를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대규모 자기자본 투입은 손정의 개인의 강한 신념을 보여주는 동시에, 외부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다.
비전펀드 2의 투자 철학은 '인공지능 혁명'에 대한 절대적 믿음에 기반하고 있었다. 손정의는 다양한 공개 석상에서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1만 배 똑똑해질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러한 기술 변화가 모든 산업 분야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트렌드 분석을 넘어서는 미래에 대한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확신이었다. 이러한 철학은 펀드의 모든 투자 결정에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비전펀드 2에는 다양한 글로벌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참여했다. 주요 투자자로는 마이크로소프트, 대만의 폭스콘, 영국의 스탠더드차타드은행, 일본의 미즈호은행, 미쓰이스미토모은행, 미쓰비시UFJ은행 등이 있었다. 특히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국부펀드까지 참여한 것은 이 펀드의 글로벌한 성격을 보여준다. 각 투자자들의 참여는 손정의의 비전에 대한 국제적 신뢰를 의미했지만, 동시에 각기 다른 이해관계와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첫 번째 비전펀드에서 핵심 투자자였던 사우디아라비아 공공투자기금이 비전펀드 2에는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데, 첫 번째 펀드의 성과에 대한 회의론이나 정치적 고려사항 등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변화는 비전펀드 2가 첫 번째 펀드와는 다른 투자자 구성을 가지게 되었음을 의미하며, 이후 펀드 운영에도 영향을 미쳤다.
2020년 1월부터 비전펀드의 투자 기업들이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서기 시작했다. 여러 유니콘 기업들이 직원 해고를 단행했고, 화려했던 성장 스토리들이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서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2019년까지 지속되었던 기술 기업들에 대한 낙관론이 급격히 냉각되는 신호였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많은 스타트업들이 비즈니스 모델의 근본적 재검토를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2020년에는 액티비스트 투자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소프트뱅크에 대해 투명성 제고를 요구하며 압박을 가했다. 이들은 비전펀드의 거버넌스 구조와 투자 결정 과정에 대한 더 많은 정보 공개를 요구했다. 이는 손정의의 개인적 직관에 의존하던 기존 투자 방식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었다. 전통적으로 복잡한 재무 분석보다는 기업가의 비전과 기술의 잠재력을 중시하던 손정의에게 이러한 외부의 간섭은 큰 부담이 되었다.
비전펀드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는 위워크의 IPO 무산 사태였다. 손정의는 위워크의 창업자 애덤 뉴만을 깊이 신뢰했고, 공유오피스라는 혁신적 개념이 전통적인 사무공간 임대업을 완전히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IPO 준비 과정에서 위워크의 과장된 성장 스토리와 심각한 거버넌스 문제들이 드러나면서 기업 가치가 급락했다. 이 사건은 손정의 개인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투자 철학 자체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당초 1080억 달러 조달 목표였던 비전펀드 2는 결국 560억 달러만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이는 목표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결과였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중 534억 달러가 소프트뱅크 자체 자금이었고, 외부 투자자들의 출자는 고작 26억 달러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수치는 시장이 손정의의 비전에 대해 얼마나 회의적이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외부 투자자들의 미미한 참여는 여러 요인에 기인했다. 첫째, 첫 번째 비전펀드의 일부 투자에서 나타난 부정적 결과들이 투자자들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둘째, 위워크 사태와 같은 대형 실패 사례들이 손정의의 투자 능력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셋째, 2020년 이후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증가하면서 리스크가 높은 투자에 대한 기관투자자들의 선호도가 낮아졌다. 이러한 복합적 요인들이 결합되어 자금 조달 실패로 이어졌다.
2021년 비전펀드 2는 스웨덴의 핀테크 기업 클라나에 대한 투자를 단행했다. 당시 클라나는 456억 달러의 기업가치로 평가받으며 '지금 사고 나중에 지불하는(BNPL)' 혁신적 결제 서비스로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손정의는 클라나가 전통적인 신용카드 산업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고 판단했다. 이는 그의 일관된 투자 철학인 '파괴적 혁신'에 부합하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2022년 클라나의 기업가치는 67억 달러까지 급락했다. 이는 1년 만에 80% 이상의 가치 손실을 의미하는 참혹한 결과였다. 이러한 급격한 하락의 주요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글로벌 금리 인상으로 인한 핀테크 기업들에 대한 시장 평가 하락, 둘째, 경기 침체 우려로 인한 소비자 신용 리스크 증가, 셋째, BNPL 서비스에 대한 규제 강화 우려 등이었다. 이 사례는 시장 환경 변화가 얼마나 빠르고 예측하기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클라나 투자 실패는 여러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첫째, 아무리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이라도 거시경제 환경 변화에는 취약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 기업가치 평가에서 단기적 성장보다는 지속가능한 수익성을 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점이다. 셋째, 특정 기술이나 트렌드에 대한 과도한 낙관론은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교훈들은 향후 기술투자 분야에서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고 있다.
비전펀드 2의 가장 큰 구조적 문제 중 하나는 지나치게 손정의 개인의 직관에 의존하는 의사결정 구조였다. 전통적인 투자펀드와 달리 체계적인 듀딜리전스나 리스크 관리 체계보다는 창업자와의 개인적 만남이나 기술에 대한 직관적 판단이 투자 결정의 주요 기준이 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혁신적인 투자 기회를 빠르게 포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동시에 체계적인 리스크 관리의 부재라는 문제를 야기했다.
560억 달러라는 거대한 자금을 관리하면서 동시에 수십 개의 포트폴리오 기업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였다. 각 투자 기업들에 대한 사후 관리와 가치 제고를 위한 전략적 지원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특히 투자 규모가 커질수록 개별 기업에 대한 세밀한 관심과 지원을 제공하기가 어려워지는 딜레마가 발생했다.
비전펀드 2는 2032년 10월 청산 예정으로 발표되었으며, 소프트뱅크는 필요시 2년 연장할 수 있는 옵션을 보유하고 있다. 이 청산 일정은 단순한 기술적 사항을 넘어서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약 13년이라는 기간 동안 펀드의 최종적인 성과가 결정될 것이며, 이는 손정의의 투자 철학과 비전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기준점이 될 것이다.
현재까지 비전펀드 2는 mixed results를 보이고 있다. 일부 투자는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었지만, 클라나와 같은 대규모 손실 사례들도 있어 전체적인 수익률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향후 남은 기간 동안 포트폴리오 기업들의 회복과 성장이 펀드의 최종 성과를 결정할 것이다. 특히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상용화 속도가 펀드 성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비전펀드 2의 사례는 21세기 초 기술투자 열풍의 명암을 모두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기록이다. 이 사례는 혁신적 기술에 대한 과도한 낙관론의 위험성과 동시에 장기적 관점에서의 기술투자의 필요성을 동시에 제시한다.
이 사례를 통해 배울 수 있는 핵심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술 혁신에 대한 믿음과 현실적 리스크 관리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둘째, 개인의 직관과 체계적 분석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셋째, 시장 환경 변화에 대한 유연한 대응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교훈들은 현재진행형인 디지털 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지혜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