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펀드 1호, 혁신과 도전의 12년 여정

손정의, 소프트뱅크 제국의 창립자 9

by 한정엽

비전펀드 1호는 2017년 출범한 세계 최대 규모의 벤처 캐피털 펀드로, 현대 기술 투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펀드의 등장은 단순한 자본의 집중을 넘어서, 21세기 기술 혁명의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 야심 찬 시도였다. 특히 인공지능이 모든 산업을 재정의할 것이라는 미래 비전을 바탕으로, 전통적인 벤처 투자의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실험이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가치를 찾을 수 있다.


펀드의 탄생과 초기 구조 (2017년)


2017년 5월, 손정의가 이끄는 소프트뱅크 그룹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와 협력하여 총 986억 달러 규모의 비전펀드 1호를 설립했다. 이는 당시까지 벤처 캐피털 역사상 전례 없는 규모였으며, 그 자체로 금융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펀드의 출자 구조를 살펴보면, 소프트뱅크 그룹이 331억 달러, 사우디 국부펀드가 450억 달러를 출자했고, 아랍에미리트의 무바달라 투자회사가 150억 달러, 애플을 포함한 기타 투자자들이 나머지를 출자했다. 이러한 다국적 자본의 결합은 글로벌 기술 투자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손정의는 이 펀드를 통해 "2040년까지 5천 개 계열사 집단"이라는 장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이는 단순한 투자 수익 추구를 넘어서, 전 세계 기술 생태계를 재편하겠다는 철학적 의지의 표현이었다. 소프트뱅크의 이념인 '정보혁명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명제와 '모든 산업을 AI가 재정의한다'는 비전이 이 펀드의 투자 철학적 토대가 되었다.


투자 전략과 차별화된 접근법


비전펀드 1호의 투자 전략은 기존 벤처 캐피털과 근본적인 차이를 보였다. 일반적인 벤처 캐피털이 엔젤 투자나 초창기 시리즈 투자에 집중하는 반면, 비전펀드는 이미 어느 정도 입지를 구축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이는 손정의만의 독특한 투자 철학을 반영한 것으로, 작은 씨앗에 물을 주며 천천히 기다리기보다는 이미 성장 가능성을 입증한 기업들에 폭발적 성장을 위한 자본을 집중 투입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접근법은 투자 위험을 줄이면서도 빠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지만, 동시에 후기 단계 투자의 특성상 높은 밸류에이션으로 인한 수익률 한계라는 구조적 문제도 내포하고 있었다. 펀드는 주로 인공지능, 핀테크, 교통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들에 집중 투자하며, 손정의가 그리는 미래 기술 생태계의 구축을 목표로 했다.


황금기: 성공 사례들 (2018-2021년)


비전펀드의 초기 몇 년간은 손정의의 투자 철학이 빛을 발하는 시기였다. 가장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한국의 이커머스 기업 쿠팡에 대한 투자였다. 2021년 3월 11일 쿠팡이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면서 기업 가치가 886억 5,000만 달러로 폭등했고, 소프트뱅크 그룹이 보유한 38% 지분의 가치는 336억 8,700만 달러에 달했다. 이는 투자 수익률 10배를 넘어서는 놀라운 성과였다. 같은 해 9월에는 쿠팡 주식 5,700만 주를 매각하며 상당한 수익을 실현했다.


우버에 대한 투자도 성공적이었다. 2018년부터 시작된 우버 투자는 2022년 8월 전량 매도로 마무리되었는데, 평균 매입 단가 34.50달러로 76억 6,600만 달러를 투자해 15억 4,900만 달러의 최종 투자 차익을 남겼다. 이는 비전펀드의 투자가 단순한 투기가 아닌, 치밀한 분석과 장기적 안목에 기반한 것임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자율주행 기술 분야에서는 2018년 5월 크루즈에 22억 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비록 2022년 3월 21억 달러로 매각하며 약간의 손실을 입었지만, 이는 새로운 기술 영역에 대한 선구적 도전 정신을 보여주는 투자였다. 2023년까지 비전펀드 1호는 총 438개 기업의 지분을 보유하게 되면서, 손정의가 구상한 미래 기술 생태계의 윤곽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위기와 시련: 위워크 사태 (2019-2022년)


하지만 투자의 세계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었다. 비전펀드가 맞닥뜨린 최대의 시련은 바로 위워크 사태였다. 한때 500억 달러의 기업 가치를 자랑하던 공유 오피스 기업 위워크는 2023년 6월 기준 4억 달러까지 급락했다. 이는 99% 이상의 가치 하락을 의미하는 것으로, 현대 벤처 투자 역사상 최악의 실패 사례 중 하나가 되었다.


소프트뱅크는 비전펀드를 통해 위워크의 지분 확보와 채권 조달을 위해 총 65억 달러를 투자했으나, 약 60억 달러 수준의 손실을 기록하며 손실률이 90%에 육박했다. 이는 비전펀드 역사상 최악의 손실률이었으며, 펀드의 전체 성과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위워크 사태의 여파는 다른 투자에도 영향을 미쳤다. 우버, 슬랙, 플립카트 등의 기업들도 부진을 보였고, 중국의 디디추싱은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이러한 연속적인 투자 실패는 비전펀드의 투자 철학과 운영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운영상의 문제도 드러났다. 2022년 7월 CEO인 라지브 미스라가 퇴임했고, 투자 손실과 임원 유출로 조직이 흔들렸다. 특히 인재 유지를 위한 보상 시스템의 미비와 내부 의사결정이 손정의에게 지나치게 집중된 구조적 문제가 지적되었다. 이는 비전펀드의 운영에 있어 조직적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 것이었다.


반성과 전략 수정 (2023-2025년)


위기 속에서도 손정의는 좌절하지 않았다. 2025년 2월, 그는 비전펀드의 스타트업 투자 실패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AI와 반도체 중심의 대규모 투자로 전환할 것을 선언했다. 이는 그의 솔직함과 동시에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실제로 2023년 8월부터 희망의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분기에 1,598억 엔의 투자 이익을 기록하며 무려 여섯 개 분기 만에 흑자 전환을 이뤘다. 2023 회계연도에는 비전펀드에서 72억 4천만 엔의 평가이익이 발생했으며, 2021 회계연도 이후 매년 지속되던 상당한 수준의 평가손실에서 3년 만에 이익으로 전환했다.


2023년 8월에는 중대한 전략적 결정이 내려졌다. 9월 14일 나스닥에 상장한 반도체 설계 기업 Arm의 지분 전량인 25%를 161억 달러에 모기업 소프트뱅크 그룹에 다시 매각하며 펀드 내 투자를 엑싯했다. 이는 비전펀드 1호의 체계적인 청산 작업의 일환으로 해석되었다.


역사적 평가와 교훈


2029년 11월 청산 예정인 비전펀드 1호의 여정을 돌아보면, 이는 단순한 투자 성공담이나 실패담을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한 기업가가 품은 거대한 꿈과 차가운 현실 사이에서 벌어진 역사적 드라마였다.


손정의는 개별 기업의 특이점 돌파보다는 '업계 최고들의 연합' 전략만이 진정한 변화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철학은 비전펀드를 통해 구현되었고, 438개 기업에 대한 투자는 그가 그려온 미래에 대한 믿음의 증거였다. 동시에 그 믿음이 현실과 부딪히며 겪어야 했던 시행착오의 기록이기도 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손정의의 개인적 경험이 이 거대한 실험의 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20년 전 3천만 달러 부족으로 아마존닷컴 투자가 불발된 아쉬움이 비전펀드라는 형태로 승화되었고, 이는 개인의 한계가 어떻게 세계적 변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미래에 대한 전망


비전펀드 1호의 경험은 현대 벤처 캐피털 산업에 여러 교훈을 남겼다. 첫째, 규모의 경제만으로는 투자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둘째, 기술 투자에서 타이밍과 밸류에이션의 중요성이다. 셋째, 조직 운영과 거버넌스의 중요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전펀드 1호가 보여준 성공과 실패의 모든 경험들은 인공지능 시대를 향한 인류의 발걸음에 소중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펀드의 청산을 앞둔 현재, 손정의의 꿈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 모든 경험들이 더욱 정교하고 현실적인 미래 투자 전략의 토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비전펀드 1호의 역사는 결국 인간의 야심과 현실의 제약, 그리고 그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혁신의 이야기였다. 이는 앞으로도 기술 혁신과 투자 분야에서 중요한 참고 사례로 연구되고 분석될 것이며, 차세대 기업가들과 투자자들에게 값진 교훈을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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