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소프트뱅크 제국의 창립자 8
손정의와 김범석의 만남은 단순한 투자자와 기업가의 만남을 넘어섰다. 김범석은 학창 시절부터 손정의 회장의 어록인 "내가 가진 것은 꿈과 근거 없는 자신감뿐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는 말을 품에 지니고 다니며 세계적 창업가의 꿈을 키웠다.
김범석은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나 대기업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냈다. 중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명문 사립학교인 디어필드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하버드대 정치학과와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에서 MBA를 취득했다. 하버드대 재학 시절 잡지 '커런트'를 만들어 뉴스위크에 매각하는 등 이미 기업가적 재능을 보였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근무한 후 다시 명문대 출신들을 겨냥한 월간지 '빈티지미디어컴퍼니'를 설립해 매각하는 등 연속 창업가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꿈은 IT를 통해 세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고객의 삶을 바꾸는 것이었다.
2010년 쿠팡을 창업한 김범석은 초기 소셜커머스 모델로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비전은 훨씬 컸다. 그는 한국의 전자상거래 생태계를 완전히 바꾸고 싶어 했다.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가장 빠르고 편리하게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손정의는 김범석의 이런 비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손 회장은 IT를 통해 세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고객의 삶을 바꾸겠다는 김범석의 비전에 감동해 투자를 결정했다고 알려졌다. 이는 단순한 수익성 투자가 아닌, 철학과 비전이 맞아떨어진 전략적 파트너십의 시작이었다.
2015년 6월, 손정의는 쿠팡에 10억 달러(약 1조 1천억 원)를 투자했다. 이는 당시 한국 인터넷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였다. 손정의는 이 투자를 발표하며 "우리는 쿠팡이 e커머스를 더욱 혁신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쿠팡은 여전히 소셜커머스 회사였다. 그러나 손정의는 김범석의 장기적 비전을 믿었다. 단순히 할인 쿠폰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아마존과 같은 종합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 성장할 잠재력을 보았던 것이다.
이 투자 결정은 한국 e커머스 업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당시 쿠팡의 매출 규모를 고려하면 파격적인 투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정의는 쿠팡이 가진 기술력과 김범석의 실행력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쿠팡이 구축하고 있던 물류 시스템과 데이터 분석 능력에 주목했다.
투자 후 쿠팡은 본격적인 변화를 시작했다. 소셜커머스에서 종합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했고, 로켓배송으로 대표되는 혁신적인 물류 서비스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2017년 쿠팡은 공식적으로 e커머스 회사로 비즈니스 모델을 전환했다.
2018년 11월, 손정의는 쿠팡에 추가로 20억 달러(약 2조 2천억 원)를 투자했다. 이는 첫 번째 투자의 두 배 규모였으며, 국내 인터넷 기업 가운데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금이었다. 이로써 쿠팡은 자신의 기록을 다시 한번 경신했다.
이 두 번째 투자는 특히 의미가 깊었다. 2018년 당시 쿠팡은 여전히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매출은 급성장하고 있었지만, 공격적인 투자로 인한 손실도 함께 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정의가 더 큰 규모의 투자를 결정한 것은 쿠팡의 장기적 잠재력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다.
소프트뱅크가 비전펀드에 매입가 70%로 쿠팡 지분을 넘긴 것은 추가 투자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음이 드러났다. 소프트뱅크와 손정의 회장은 쿠팡을 여전히 가능성 높은 회사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기 쿠팡은 물류 인프라 확충에 집중하고 있었다. 쿠팡은 지난해 전국 물류센터를 기존 12개에서 24개로 늘렸다. 로켓배송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고 배송 지역을 확대하기 위한 투자였다. 또한 쿠팡맨으로 불리는 자체 배송 시스템을 구축하고, 새벽 배송 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혁신적인 서비스를 연달아 출시했다.
쿠팡이 2018년 1조 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는 '계획된 적자' 전략의 결과였다. 아마존이 초기에 택했던 것과 동일한 전략이었다. 단기 수익성보다는 시장 점유율 확대와 인프라 구축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손정의는 이런 전략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 자신도 야후 재팬과 알리바바 투자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초기 적자는 장기적 성공을 위한 필수 과정이라고 봤다.
쿠팡의 성장 비결은 공격적인 투자였다. 물류센터 확충, 배송 인력 증원, 기술 개발 등 모든 분야에서 선제적 투자를 했다. 이는 고객 경험을 향상하고 경쟁업체들이 따라올 수 없는 진입장벽을 구축하는 전략이었다.
김범석은 이런 전략에 대해 "매출이 늘어나면서 적자도 같이 늘어나는 이른바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쿠팡의 구조에 대해 '계획된 적자'"라고 설명했다. 이는 단순한 손실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의미였다.
2010년 설립 이후 10년도 안 돼 쿠팡은 웬만한 대기업 수준으로 덩치가 커졌다. 이는 지속적인 혁신과 투자의 결과였다.
쿠팡의 혁신은 여러 분야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첫째, 물류 혁신이었다. 로켓배송으로 대표되는 당일 배송, 새벽 배송 서비스는 한국 전자상거래의 표준을 바꿔놓았다. 고객들은 이제 다음 날 아침에 주문한 상품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둘째, 기술 혁신이었다. 쿠팡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해 고객의 구매 패턴을 분석하고 맞춤형 상품을 추천하는 시스템을 고도화했다. 또한 재고 관리와 배송 최적화를 위한 알고리즘을 지속적으로 개선했다.
셋째, 서비스 혁신이었다. 쿠팡은 단순한 상품 판매를 넘어 쿠팡페이, 쿠팡이츠 등 다양한 서비스를 출시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쿠팡이츠는 폭발적인 성장을 보였다.
이런 혁신들은 모두 막대한 투자를 필요로 했다. 손정의의 30억 달러 투자는 이런 혁신을 가능하게 한 자금줄 역할을 했다. 김범석은 이 자금을 활용해 과감한 투자를 지속할 수 있었다.
2021년 3월 11일(현지시각) 쿠팡은 미국 뉴욕증시(NYSE) 상장 첫날 시가총액 100조 원을 넘기며 아시아계 기업으론 초유의 잭팟을 터뜨렸다. 이는 손정의의 투자 전략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2010년 30억 원으로 시작한 쿠팡은 10년 만에 기업가치가 초기 자본금의 3만 배가 넘는 대형 상장사로 성장했다. 이는 한국 기업 역사상 유례없는 성공 사례였다.
상장 당시 쿠팡의 기업가치는 약 60조 원으로 평가됐다. 이는 한국의 웬만한 대기업들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특히 국내 1위 IT 기업인 네이버의 시가총액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손 회장의 소프트뱅크비전펀드는 2015년과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쿠팡에 총 3조 원(27억 달러) 가량을 투자했다. 현재 비전펀드의 쿠팡 지분은 약 37%로 알려졌다.
상장 성공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첫째, 코로나19로 인한 전자상거래 호황이었다. 팬데믹 상황에서 비대면 쇼핑이 급증하면서 쿠팡의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둘째, 쿠팡이 구축한 독보적인 물류 시스템과 로켓배송 서비스가 투자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셋째, 김범석의 리더십과 실행력이 신뢰를 얻었다.
쿠팡의 뉴욕증시 상장 성공이 주요 투자자인 일본 소프트뱅크에 330억 달러의 수익을 남겼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투자 수익률은 10배를 넘어섰다.
손정의가 2015년과 2018년에 투자한 총 30억 달러는 상장 시점에서 약 300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갖게 되었다. 이는 연평균 수익률로 계산하면 40% 이상의 놀라운 성과였다.
하지만 손정의는 상장 후 점진적으로 지분을 매각하기 시작했다. 2021년 9월 소프트뱅크그룹의 비전펀드가 보유 중이던 쿠팡 주식 16억 9천만 달러(약 1조 9천886억 원) 어치를 매각했다. 2022년 3월에도 비전펀드는 쿠팡 지분 10억 달러어치를 추가로 매각했다.
이런 매각 결정은 여러 이유가 있었다. 첫째, 상장 후 쿠팡 주가가 하락세를 보인 것이었다. 상장 초기 고평가된 주가가 조정을 받으면서 추가 하락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소프트뱅크의 포트폴리오 다각화 전략이었다. 한 종목에 집중된 위험을 분산시키려는 의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정의의 쿠팡 투자는 역사적으로 성공적인 투자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초기 투자금 대비 5-6배 이상의 수익을 실현했기 때문이다.
손정의의 쿠팡 투자는 단순한 금융 투자를 넘어 한국 IT 생태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첫째,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성장을 견인했다. 쿠팡의 성공은 다른 스타트업들에게 큰 자극제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글로벌 수준의 유니콘 기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둘째, 전자상거래 시장의 혁신을 가속화했다. 쿠팡의 로켓배송 서비스는 업계 전반의 배송 서비스 수준을 끌어올렸다. 경쟁사들도 당일 배송, 새벽 배송 등의 서비스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셋째, 물류 인프라의 발전을 이끌었다. 쿠팡이 구축한 전국 단위 물류 네트워크는 한국 물류 시스템의 효율성을 크게 향상했다. 이는 다른 기업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인프라였다.
넷째, 고용 창출 효과도 컸다. 쿠팡은 수만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특히 물류센터 근무자와 배송 기사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했다. 쿠팡은 상장 기념으로 쿠팡맨들에게 자사주 1000억 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쿠팡의 성장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지속적인 적자 구조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상장 후에도 쿠팡은 수익성 개선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노동 환경과 관련된 논란도 있었다. 배송 기사들의 근무 조건과 물류센터 직원들의 작업 환경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는 쿠팡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경쟁 심화도 큰 도전이었다. 네이버, 카카오 등 기존 IT 대기업들이 전자상거래 시장에 본격 진출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특히 네이버쇼핑, 11번가 등의 공세가 거세졌다.
쿠팡은 2025년 매출 302억 6800만 달러(약 41조 2901억 원)를 기록하며 '40조 원'의 벽을 넘어섰다. 이는 쿠팡이 여전히 성장 궤도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범석은 쿠팡의 성장이 아직 초기 단계라고 강조하고 있다. 2027년 한국 시장이 746조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쿠팡은 이 막대한 잠재력을 지속적으로 포착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쿠팡의 미래 전략은 여러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첫째, 해외 진출 확대이다. 쿠팡은 이미 일본, 싱가포르, 대만 등 아시아 주요 시장에 진출했다. 향후 동남아시아와 중국 시장으로의 확장도 검토하고 있다.
둘째, 서비스 다각화이다. 쿠팡은 전자상거래를 넘어 핀테크, 엔터테인먼트, 클라우드 서비스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쿠팡페이의 성장과 쿠팡플레이의 출시 등이 그 예이다.
셋째, 기술 혁신 지속이다. 인공지능, 로봇 기술, 자율주행 등 첨단 기술을 물류와 배송에 적용하여 효율성을 더욱 높여나갈 계획이다.
손정의 역시 쿠팡의 장기적 가능성을 여전히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일부 지분을 매각했지만, 여전히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쿠팡의 글로벌 확장을 지원하고 있다.
손정의의 쿠팡 투자는 단순한 투자 성공 사례를 넘어 혁신과 신뢰로 만들어진 성공 신화였다. 김범석의 원대한 비전과 실행력, 그리고 손정의의 과감한 투자와 장기적 관점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결과였다.
이 투자는 한국 IT 산업의 가능성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쿠팡의 성공은 한국이 더 이상 추격자가 아닌 선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는 글로벌 투자자와 한국 기업가 간의 성공적인 파트너십 모델을 제시했다. 서로 다른 배경과 경험을 가진 두 사람이 공통의 비전을 바탕으로 신뢰를 쌓고 함께 성공을 이뤄낸 사례였다.
앞으로도 쿠팡의 성장 스토리는 계속될 것이다.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아마존과 경쟁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손정의와 김범석이 함께 그려온 이 혁신의 여정이 어떤 새로운 장을 열어갈지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