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 홀딩스 투자, 320억 달러 베팅에서 재상장까지

손정의, 소프트뱅크 제국의 창립자 7

by 한정엽

초기 투자 결정: 미래를 향한 320억 달러 베팅


손정의 회장의 ARM 홀딩스 투자는 2016년 7월, 그의 투자 철학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당시 소프트뱅크는 320억 달러(약 39조 4천억 원)라는 거액을 지불하며 영국의 반도체 설계 회사 ARM 홀딩스를 인수했다. 이는 일본 기업이 해외에서 실행한 가장 큰 규모의 인수합병 중 하나였으며, 손정의 회장의 "정보 혁명"에 대한 신념을 구현한 투자였다.


ARM 홀딩스는 1990년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설립된 팹리스 반도체 기업으로, 마이크로프로세서와 GPU, NPU 등의 설계 기술을 보유한 회사였다. 특히 모바일 프로세서 시장에서 9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핵심 지적재산권을 보유하고 있어, 스마트폰 시대의 핵심 인프라로 인식되었다. 애플의 아이폰부터 안드로이드 스마트폰까지, 거의 모든 모바일 기기가 ARM의 설계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손정의 회장은 이 투자를 통해 사물인터넷(IoT) 시대의 도래를 예견했다. 그는 ARM의 기술이 스마트폰을 넘어 자동차, 가전제품, 산업용 장비까지 모든 연결된 기기의 뇌 역할을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실제로 ARM의 칩 설계는 전력 효율성이 뛰어나 배터리로 구동되는 모든 기기에 최적화되어 있어, IoT 확산의 핵심 동력이 될 수 있는 기술이었다.


인수 당시 ARM은 런던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상태였으나, 소프트뱅크는 이를 완전히 인수하여 비상장 회사로 전환했다. 손정의 회장은 상장 기업으로서의 단기 실적 압박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연구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했다. 그는 ARM의 엔지니어 채용을 두 배로 늘리고, 연구개발 투자를 대폭 확대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 투자 결정의 배경에는 손정의 회장의 독특한 투자 철학이 있었다. 그는 "300년 비전"을 내세우며 단기적 손익보다는 인류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기술에 투자하는 것을 선호했다. ARM의 경우, 인공지능과 IoT가 결합된 미래 사회에서 모든 스마트 기기의 핵심이 될 기술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AI 칩의 수요 증가와 에지 컴퓨팅의 확산을 예상하며, ARM의 저전력 고효율 아키텍처가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예측했다.


매각 진행 과정: 엔비디아와의 역사적 거래


ARM 인수 후 약 4년이 지난 2020년, 손정의 회장은 예상치 못한 결정을 내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 침체와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의 막대한 손실로 인해 현금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비전펀드는 위워크, 우버 등의 투자에서 수십조 원의 손실을 기록하며 소프트뱅크의 재무 상황을 악화시켰다.


2020년 9월 13일, 엔비디아는 소프트뱅크로부터 ARM을 400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현금 120억 달러와 엔비디아 주식 215억 달러, 그리고 ARM의 성과에 따른 추가 지급금 최대 50억 달러로 구성된 거래였다. 또한 소프트뱅크는 엔비디아의 지분 10%를 보유하게 되어, 총 거래 규모는 400억 달러를 상회했다.


이 거래는 반도체 업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으로 기록될 예정이었다. 엔비디아는 GPU 분야의 절대강자로, AI와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ARM의 CPU 설계 기술과 엔비디아의 GPU 기술이 결합되면, 차세대 컴퓨팅 플랫폼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손정의 회장은 이 거래를 통해 ARM 투자로부터 약 25% 수익을 실현할 계획이었다. 320억 달러에 인수한 ARM을 400억 달러에 매각함으로써 80억 달러의 차익을 얻고, 동시에 엔비디아 지분을 통해 추가적인 성장 기회를 확보하는 전략이었다. 특히 AI 반도체 시장의 폭발적 성장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엔비디아 지분은 장기적으로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거래 발표 당시 양측은 18개월 내에 모든 규제 승인을 완료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곧 여러 국가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하게 되었다. ARM의 기술이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한 기업이 이를 독점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다.


매각 실패: 글로벌 규제의 벽


엔비디아의 ARM 인수는 발표 직후부터 전 세계적인 반대에 직면했다.


가장 큰 반대 세력은 ARM의 주요 고객사들이었다. 삼성전자, 퀄컴, 애플, 구글 등 ARM 기술을 사용하는 주요 기업들은 경쟁사인 엔비디아가 ARM을 소유하게 되면 기술 접근성과 중립성이 훼손될 것을 우려했다.


특히 퀄컴은 가장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퀄컴은 모바일 프로세서 시장에서 엔비디아와 직접 경쟁하고 있었고, ARM의 중립적 지위가 보장되지 않으면 자사의 사업에 치명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퀄컴은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에 이 거래의 승인을 반대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각국 규제당국의 반응도 매우 냉랭했다. 미국 FTC는 2021년 12월 이 거래가 반경쟁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FTC는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하면 AI 칩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남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특히 자율주행, 데이터센터, 게임 등 핵심 시장에서 경쟁을 저해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영국 정부도 강력한 반대 입장을 보였다. ARM은 영국의 대표적인 기술 기업이자 국가적 자산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영국 정부는 이 거래가 영국의 기술 주권을 위협할 수 있다며 국가안보 차원에서 검토에 나섰다. 특히 브렉시트 이후 기술 자립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ARM의 해외 매각은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사안이었다.


유럽연합도 이 거래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EU 집행위원회는 디지털 주권과 공정 경쟁 측면에서 이 거래를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또한 자국의 반도체 산업 보호 차원에서 이 거래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2022년 2월, 결국 엔비디아와 소프트뱅크는 ARM 인수 거래를 공식적으로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18개월에 걸친 승인 과정에서 전 세계적인 반대에 부딪혀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거래 취소에 따른 위약금 12억 5천만 달러를 소프트뱅크에 지급했다.


미국에서의 재상장: 나스닥 데뷔의 성공


엔비디아 매각이 무산된 후, 손정의 회장은 새로운 전략을 모색해야 했다. 소프트뱅크의 부채 부담은 여전히 높았고, 현금 확보는 시급한 과제였다.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ARM의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상장 시장을 놓고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영국 정부는 ARM이 런던 증권거래소에 재상장하기를 강력히 희망했다. 영국 총리까지 나서서 ARM의 런던 상장을 위해 손정의 회장을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손정의 회장은 2022년 6월 주주총회에서 "ARM의 주요 고객들이 실리콘밸리에 있다"며 나스닥 상장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2023년 4월, ARM은 마침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나스닥 상장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는 2023년 최대 규모의 IPO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상장 준비 과정에서 ARM의 기업 가치는 600억 달러에서 700억 달러 사이로 평가되었다.


2023년 9월 14일, ARM은 마침내 나스닥에 상장되었다. 티커 심벌은 'ARM'이었다. 공모가는 주당 51달러로 책정되었고, 이는 ARM의 기업 가치를 약 545억 달러로 평가하는 수준이었다. 상장 첫날 ARM 주가는 25% 급등하며 주당 63.59달러에 마감했다.


이번 상장에는 전 세계 주요 기술 기업들이 참여했다. 애플, 삼성전자, 엔비디아, 인텔, 구글 등 ARM의 주요 고객사들이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하여 상장의 안정성을 높였다. 이는 ARM의 기술적 중요성과 미래 성장 가능성에 대한 업계의 신뢰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소프트뱅크는 이번 상장을 통해 ARM 지분의 약 9.4%를 매각하며 48억 7천만 달러를 조달했다. 여전히 ARM의 90%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향후 주가 상승에 따른 추가적인 이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손정의 회장의 재기와 소프트뱅크의 부활


ARM의 성공적인 재상장은 손정의 회장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상장 후 ARM 주가는 AI 반도체 붐에 힘입어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2024년 2월까지 ARM 주가는 상장 당시 대비 약 2배 이상 상승하며 손정의 회장에게 막대한 평가 이익을 안겨주었다.


소프트뱅크의 재무 상황도 크게 개선되었다. ARM 주가 상승으로 인한 평가 이익은 수십조 원에 달했고, 이는 비전펀드의 손실을 상당 부분 상쇄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2024년 4분기 소프트뱅크는 몇 년 만에 가장 좋은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ARM의 성공은 AI 시대의 도래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ChatGPT로 촉발된 생성형 AI 붐은 AI 반도체에 대한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ARM의 저전력 고효율 아키텍처는 모바일 AI, 에지 AI, 그리고 데이터센터 AI 모든 영역에서 핵심 기술로 부상했다. 특히 애플의 M 시리즈 칩과 퀄컴의 스냅드래곤 칩이 모두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하면서, ARM의 기술적 우위는 더욱 확고해졌다.


손정의 회장의 투자 통찰력도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2016년 ARM 인수 당시 많은 전문가들이 과도한 프리미엄을 지불했다고 비판했지만, 8년 후 ARM의 가치는 당시 인수가의 2배를 넘어섰다. 특히 AI와 IoT가 현실이 되면서, 손정의 회장의 미래 예측이 정확했음이 입증되었다.


ARM의 기술적 진화도 주목할 만하다. 소프트뱅크 인수 후 ARM은 연구개발 투자를 대폭 늘렸고, 차세대 CPU 아키텍처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특히 AI 워크로드에 최적화된 새로운 아키텍처들이 연이어 출시되면서, ARM의 기술적 경쟁력은 더욱 강화되었다.


이러한 성공은 손정의 회장의 투자 철학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그는 단기적 손익보다는 장기적 트렌드에 베팅하는 것을 선호했고, ARM 투자는 이러한 철학의 대표적 성공 사례가 되었다. 특히 "정보 혁명"에 대한 그의 신념이 AI 시대와 정확히 부합하면서, ARM은 그의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성공적인 투자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ARM의 주가는 계속해서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90% 이상의 지분은 손정의 회장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주고 있다. 이는 그의 다른 투자들, 특히 AI 관련 스타트업들에 대한 추가 투자 여력을 제공하여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결론적으로, 손정의 회장의 ARM 투자는 단순한 기업 인수를 넘어서 AI 시대를 관통하는 전략적 투자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320억 달러라는 거액의 투자에서 시작하여 매각 실패라는 위기를 겪었지만, 결국 성공적인 재상장을 통해 더 큰 가치를 창출해 낸 것이다. 이는 손정의 회장의 투자 철학과 미래 통찰력을 입증하는 대표적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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