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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ka Apr 06. 2020

가볍고도 무거운 팬데믹의 무게

알랭 드 보통은 뉴스의 시대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갈게 오늘도 수고해~”

“응, 오빠도 수고하고 조심히 다녀와요~”


재택근무가 시작됐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수가 심상치않게 늘어나자 회사가 취한 조치였다.


재택근무가 좋아, 너~무 좋아

긴 출퇴근 거리로 스트레스를 받던 집순이인 나에게 이보다 더 좋은 뉴스는 없었다. 그러나 한 주 한 주가 지나다보니 고비가 찾아왔다. 뭐랄까, 어쩌지도 저쩌지도 못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랄까? 함께 커피를 마시던 동료들의 부재가 가장 크게 다가왔다. 하루종일 마주치는 사람이 남편 혹은 장보러 가는 길에 만나는 대여섯명의 동네 주민이 전부이다 보니 그럴만도 하다.


그러나 집순이가 어디 가겠는가. 그 정도 고비 쯤은 충분히 이겨내고도 남았다. 이제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에 완벽하게 적응을 마쳤다.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산책 겸 남편을 데려다주고 들어와 커피 한 잔을 내려 일을 시작한다. 일이 끝나면 퇴근을 위해 쓰던 시간을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데 쓴다. 이전보다 다양한 요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큰 행복이다. 점심시간을 자유로이 쓸 수 있는 것도 굉장한 일이다. 식사를 생략하거나 간단하게 떼우고 책을 보거나 실내용 자전거를 탈 수도 있다. 간혹 식재료를 사기 위해 집 근처 작은 마트에 다녀오기도 한다. 한 번은 동네 유명한 빵집에 들러 항상 품절되던 빵을 사오기도 했다. 그 외에도 출퇴근을 위한 정비를 소홀히 해도 된다거나, 틈틈히 집안일을 하는 것도 행복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 남편도 제일 좋다고 하는 변화는 바로 내게 에너지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집안일을 할 에너지, 새로운 요리에 도전할 에너지, 운동과 악기를 연주할 에너지, 그리고 다시금 글을 쓸 수 있는 에너지. 나는 내가 가장 많이 체력을 소모하는 부분이 업무일거라 짐작했다. 그런데 출퇴근의 여정 그 자체가 가장 큰 소모원이었나보다. 이전에는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있었고 주말엔 다른 걸 할 여력이 없어 침대에 누운채 자다 깨다 휴대폰하다를 반복하며 뒹구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요즘은 일 외의 움직임이 많아졌고, 남편 말로는 퇴근하는 그를 맞이하는 내 표정부터 다르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확산 중이라는데...

확진자마다 번호가 붙고 동선이 공개되고, 누가 여기를 갔네 저기를 갔네, 몇 번 확진자가 자가격리를 잘했네 못했네 하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것이 마치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질 정도로 환자 수가 늘어났다. 그나마 한국은 국제적으로도 모범 케이스로 꼽히는 만큼 증가율이 높진 않지만 유럽과 북미 등지에서 사망자 수가 크게 늘어나 세계적으로 비상사태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연일 보도되는 세계의 COVID19 현황을 듣노라면 멍해지는 순간이 온다. 마음 속 깊숙이 치고 들어오는 알수없는 찔림이다. 전 세계에 사망자 수가 몇만명이 넘는다는데, 염치도 없이 이렇게 행복감을 느껴도 되는건가. 난 부정할 수 없이 이기적이고 예민한데다가 개인주의적인 '요즘것들'인가.


스스로의 무정함에 혀를 내두르다가 알랭 드 보통이 ‘뉴스의 시대’에서 해외뉴스에 대해 지적했던 것을 떠올려본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퍼지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우간다 정치뉴스는 그 결이 다르지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점은 그 내용의 경중이 어떻든지간에 해외뉴스는 종종 무관심 속에 방치된다는 것이다.


기자들이 담당 국가에서 부지런히 모아 냉담한 세상에 퍼뜨리기 위해 애쓴 그 뉴스들에 실은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는다는 걸 알리고자 애를 썼다. 그날만 해도 우간다 총리 집무실에서 1200만 달러에 달하는 원조 자금에 대한 뻔뻔한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는데 말이다.
...
우간다 정치 뉴스라고만 보면 이 사건은 분명 상당한 중요성을 띤 문제다. 하지만 BBC 홈페이지에서 이 기사는 유부남 축구선수가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TV 출연 요리사의 아내 품에 안긴 사진이 유출됐다는 기사, 그리고 몬테카를로 해안에 정박해 있던 미국 인터넷 업계 억만장자의 요트에서 어느 프랑스 여배우가 묘한 상황 아래 부상을 입었다는 기사와 경쟁하는 불운을 겪었다. 예상대로 우간다 기사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 뉴스의 시대, 알랭 드 보통


이 장의 말미에 알랭 드 보통은 해외뉴스가 다른 문화에 대한 평가를 피하려는 시도때문에, 말하자면 이국적인 것이라면 무엇이든 피하고 문화에 대한 기계적 중립을 지키려는 '우아하고 세련된' 어투로 인해 해외뉴스는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그 나라의 이국적 풍광과 그 곳에 가는 여정을 세세히 그려내는 것을 대안책의 하나로 제시했다.


읽을 당시에는 이게 웬 황당하고 신박한 이야기인가 싶었다. 뉴스가 무슨 소설도, 다큐도 아닌데 어느 나라의 정치뉴스 한 편 전달하자고 배경 묘사를 하라니! 그러나 이제는 그의 생각에 어느정도 동의한다. 아무리 먼 나라의 소식일지라도 같은 인간이 당하는 고통을 그저 '사망자 숫자' 따위로 인식하는 것보단 감상적인 도입부를 감내해 조금 더 뉴스에 이입하는 것이 몇 배는 나을테니 말이다.


해외가 아니라 국내의 상황이라면 달랐을까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고 물리적 거리도 수천 키로미터가 넘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이 상황을 공감하고 나누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당장 내가 발붙이고 있는 나라만해도 같은 사태로 인해 이백여명에 달하는 사망자와 만여명에 달하는 확진자가 있다. 이 가깝고도 비극적인 현실에 홀로 행복해하다니 '나 사이코패스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같은 책의 다른 장, '재난뉴스-사고'의 내용을 떠올렸다.


알랭 드 보통은 사고를 다룬 뉴스가 독자로 하여금 흥미를 일으키는 동시에 인간의 나약함과 죽음에 대해 상고하게 하며 삶의 의미를 다시 찾도록 돕는다고 했다. 더 나아가, 사고뉴스에 대해 독자들은 감정적 균형을 맞춰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뉴스에 대해 이런 식의 고찰과 감상이 가능하다는 것이 아직도 놀랍다.)


하지만 그들이 겪은 구체적인 경험에 너무 깊이 몰입한 나머지 낯선 이에게 닥친 재앙을 우리 스스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변명거리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뉴스가 늘 우리 앞에 갖다놓고자 애쓰는 슬픔과 고통을 명확히 인식하는 한편, 거기에 고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다시 말해, 뉴스가 어떤 주장을 펴든 간에, 그리고 뉴스 속 이야기가 얼마나 급작스럽고 놀랍고 감동적이든 간에, 뉴스가 제기하는 문제가 언제나 우리 자신의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을 십분 인정하는 것이 곧 우리가 사이코패스 같은 본성을 지녔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 뉴스의 시대, 알랭 드 보통


그렇다. 무관심으로 책임을 회피하지도, 나의 문제인 것처럼 과도하게 빠져들지도 않는 그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 필요했다.


양심이 나를 찔러 올 때

출퇴근시간을 아끼며 행복에 겨워 식사 준비를 하고, 집에서 운동을 하고, 점심시간에 여유로이 장을 보러 나갈 때 이 땅 어딘가엔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본인이나 가족이 전염되어 신체적 고통을 겪는 것도 억울한데 강제로 격리된 사람들. 의료업이나 공무수행으로 밤낮 주말 없이 긴장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 경제적 타격으로 인해 무급휴가를 강요받거나 갑작스레 근로 계약이 해지된 사람들. 잘 이끌어오던 사업의 실적부진으로 금전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그 중의 한 사람이 내가 될 수도 있었다. 양심은 내게 사회적 동물의 자격이 없어도 아주 없다고 꾸짖었다.


그동안 순진무구하게 이 팬데믹을 참 가볍게도 받아들였다. 지독하게도 이기적이었다. 홀로 누린 그 티끌같은 행복은 나눌수록 커져야하는데 나눠도 커지지 않고 나눌 수 조차 없었다. 나와 내 가족만 바라보는 행복이 뭔 놈의 소용이란 말인가. 이 고통이 훗날 나와 가족을 덮쳐온다면 주변의 도움을 받으며 떳떳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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