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산신령이 나올 것 같다

섬진로 11

by 이춘노

금요일. 출근길 안개가 참 짙었다. 강과 산이 주변에 있는 지역에서는 유독 안개가 짙은 편이다. 해가 뜨고 있는 아침에 짙은 안개는 어둠보다 앞을 분간하기 어렵다. 그래서 밤길 운전보다도 이런 안개에는 자동차 라이트는 시야가 짧아서 조심해야 한다. 산에서 근무한 경력이 많은 나도 이런 날에는 운전이 좀 버겁다. 그렇게 섬진로를 달려서 출근하고 커피를 마시다가 안개를 바라보는 색다른 단어가 들렸다.

“산신령이 나올 거 같은 분위기 ~ ”

듣고 있자니 떠올리지 못한 이야기라서 아저씨 감성으로 동화 하나가 떠올랐다. 내가 열심히 쓰던 업무노트가 섬진강에 풍덩 빠졌는데, 갑자기 ‘평~’하는 소리와 함께 산신령이 나타나서는

“이 금 노트가 너의 노트냐?” 하고 물었다.

솔직한 나는

“아닙니다. 저의 노트가 아닙니다.”

그리고 다시 은 노트를 들고 나와서 묻자. 또 난 솔직히 말했다.

“기특한지고, 너에게 이 업무노트 모두를 주겠노라.” 하며 업무가 두 개 늘었다는 동화(?).

혼자 말하고 아저씨 감성으로 웃다가 주변의 그런 개그 금지 분위기에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일했다.

어느 순간일까? 내가 바라보던 사물은 그대로인데, 그 시선과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때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함박눈이 내리면 기분 좋아서 친구들과 뛰어놀던 시절. 키우던 멍멍이를 대책 없이 풀어주고, 같이 눈밭을 뛰던 순수한 소년이 눈을 쓰레기라고 생각한 건. 명절에는 맛난 것을 먹고 친척 어른한테 용돈 받을 생각에 기다렸던 마음이, 차라리 없었으면 편하겠다 느꼈던 계기가 말이다.

나도 어릴 적에는 참 순수하게 산신령을 생각했던 아이였는데, 주말이 기대돼야 하는 금요일 출근길에 이토록 짙은 안개에서 오직 불편함만을 느꼈다. 버스를 타고 창가에 보이는 산 중턱에 낮게 깔린 안개와 강가의 물소리를 느끼며 출근했다면, 나도 좀 다른 느낌이었을까?


솔직히 나에게 출근길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하루 12시간은 생활하는 공간인 직장에서 야근해서라도 일을 마무리해야 하는 곳이며, 나에게는 일과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를 주는 공간이었다. 어쩌면 차가운 직장 생활을 알아가면서 나의 감수성은 무뎌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는 것이 동화처럼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계기는 아마도 한 달 벌이 생활하는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겠지.


그런데도 나는 새로 맞이한 출근길에 의미를 부여했다. 새로운 인간관계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려는 것도 일종의 대리만족이겠지만, 과거를 생각하며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결국 내가 죽어도 남는 것은 몇 푼 안 되는 돈과 킬로 수가 넘치는 작은 자동차 하나와 책, 다이어리. 그리고 나를 추억하는 사람들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그렇게 잠깐의 이야기 후에 나의 금요일은 나답지 않게 참으로 밟게 일했고, 거칠게 말했고, 열심히 무언가를 고민했다. 그리고 나의 산신령이 나올 것 같은 섬진로의 일상은 조용히 지나갔다. 감사하다 오늘도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가 되어서 말이다. 아마도 나의 시간이 섬진강에 빠져서 산신령이 주신 평화로운 불금은 아닐지? 약간은 늦은 밤, 씨익 웃으며 퇴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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