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은 참 사람을 기다리게 한다

섬진로 12

by 이춘노

모처럼 어머니와 대학병원에 왔다. 예약 시간을 몇 개월 전에 잡아두고 진행하는 대학 병원 진료에서 처음이 참 어려운 것 같다. 그때는 무작정 아프기만 했으니까. 올라가고 기다리기만 했다. 돌이켜보면 2019년과 2020년에는 정말 병원과 인연이 많았다. 2019년에는 어머니 간암 진단을 받아서 수술했고, 2020년에는 급격하게 몸이 안 좋으신 아버지 때문에 거의 한 달을 쫍은 간이침대에서 직접 병간호를 해야 했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병원은 참 사람을 기다리게 했다. 사람은 질병이라는 감정보다 막연한 기다림에 더 힘들어하는 것은 아닌지? 솔직히 병원에서 있던 시간을 합하면 꽤나 조용하게 괴로운 시간이었다.

나라도 건강하면 참 좋겠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이곳저곳이 병들고 아파서 휴직까지 했던 몸이다. 그런 사람이지만, 부모의 병원은 또 함께 동행해야 했다. 이런 시간들이 꽤나 많았기에 나의 휴식은 보통 이런 시간으로 보냈다. 하나뿐인 자식으로 죄송한 마음이 들었던 순간이 내가 차를 타고 가장 처음으로 멀리 갔던 것이 어머니의 병원이었다. 결과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긴 침묵이 참 버거웠지만, 그래도 기다리는 시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마음 하나만 좋았던 기억이 씁쓸하게 남았다.

보통의 대학병원은 교수의 스케줄에 시간을 잡고, 그 전주에 각종 검사를 몰아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은 두 번은 올라가야 했다. 솔직히 검사를 여러 개 진행하는 시간이 더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오히려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나는 더 고통스러웠다. 인생을 건 쪼는 맛이라고 하면, 얼마나 긴장되겠는가? 더불어서 가족의 건강이 걸렸다. 순번이 다가오고, 들어갔던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대충은 상황을 짐작했다. 수술을 하는지? 상태가 어떤지? 보통은 당사자는 오히려 덤덤하다. 가족들 얼굴이 더 슬프고 애써 태연한 척하지만, 근심이 가득하다. 불과 몇 년 전에 내 모습이 저랬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수술을 하지 않으시겠다고 했다. 외삼촌도 간암으로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무섭게 수술을 받을 자신이 없었고, 내 걱정도 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혼자 남을 아버지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어머니도 그걸 아실 것이다. 그러니 어머니는 살아 주셔야 했다. 아직은 나와 아버지 곁에 있어 주셔야 했다. 비록 살면서 좋은 모습은 그다지 못 보실지라도 아들을 위해서라도 수술을 받아 주시라고 난 말씀드렸던 기억이 났다.


참 이기적인 아들이다. 가진 돈은 없지만, 백수 시절에 중환자실에서 아버지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을 했던 나도 그랬지만, 무슨 이유라도 생각은 또한 죽음은 뒤로 미루고 보자는 알팍한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역시나 대충 살 운명은 아니었는지? 오랜 병간호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이곳은 마음 약한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서 죽음을 뒤로 미루는 곳임을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토록 기다리는 시간이 많음에도 아무 말 못 하고 앉아 있는 것이다.

다행히 결과는 나쁘지 않다. 아니 이번에는 재발이 안되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설령 6개월에 하던 검사를 3개월로 당겨서 CT 검사에서 MRI로 좀 바꾸긴 했지만, 의사의 괜한 의심이라는 생각으로 일단 3개월은 벌었다.

이제 어머니가 끝났으니, 아버지 차례인가? 기다리는 것이 일상인 곳이라고 해도 그나마 집에 갈 수 있으니 다행이다. 난 그리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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