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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Dec 05. 2023

고기는 절친과 먹으면 더 맛있다

천안 <백미한우> 소고기를 먹다

  연말 행사 준비를 하다가 내가 전임자로 막내 직원 업무를 도와줬다. 역시나 과거 내 업무였기에 편하게 기존 작성한 문서와 파일로 후다닥 처리했다. 그런데 막상 내가 해야 하는 행사는 자료 준비부터 고민이 많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익숙하지 않은 업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료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처리했다. 역시나 업무가 익숙하다는 것은 그동안 내가 쌓아둔 자료도 그만큼 많았다는 것이겠지. 


  과연 그것은 업무에서만 그럴까?


  가끔 인생에 하루가 전에 어느 날을 'Ctrl + C'를 해서 그냥  'Ctrl + V'를 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생각했다. 데자뷰인가? 이날도 그랬다. 인생에서 소고기를 얼마나 먹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제일 기억에 나는 것은 내 친구들과 먹었던 한우이다. 모임 해서 먹을 것이 한우라면 성공한 것 같지만, 1년에 두세 번 만나는 귀중한 시간에 함께하는 음식이기에 아끼지 않기 때문이겠지. 마블링 적당한 한우를 덥석 골라서 배가 터지게 먹는다. 

  지난번 모임과 같은 천안 <백미한우>에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물론 정육식당이기에 밑에서 고른 고기는 잠시 생각하다가 무조건 색이 식탐을 부는 몇 팩을 골랐다. 술도 친구가 면세점에서 골라온 양주를 가지고 왔다. 친구는 편의점에서 얼음도 하나 챙겨 왔던데, 우린 저 술을 앉은자리에서 다 먹을 것이다. 


  마흔을 넘긴 우리 세 명의 친구는 고등학교 친구이다. 그리고 군대도 의경을 나왔고, 의경부대도 비슷하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에 마신 100일 술 이후에 20년이 넘는 동안 술친구와 더불어 인생의 지지를 해준 절친이다. 지금은 각각의 지역에서 열심히 살고 있지만, 가끔 모이는 천안에서 우린 고기와 술을 원 없이 먹자고 이야기했다. 


  한 명은 쌍둥이 아빠이기도 하고, 자기 이름이 들어간 게임을 만들었고, 나는 글을 쓰는 공무원이 되었다. 나쁘지 않은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몇십 년은 서로의 인생을 이야기하며 술을 마실 것이다. 매번 같은 루틴으로 돌아가는 이 만남이 난 익숙하지만 질리지 않는다. 아마 소고기가 질릴 순 있어도 이 자리에 앉은 사람만큼은 복사를 한 하루가 되더라도 알찬 하루라는 기분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간혹 사람들은 연말 회식에 목숨을 건다. 꼭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만나고 싶어서 시간을 어럽게 내고, 주말도 양보하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설령 소고기를 준다고 해도 가기 싫은 회식 자리는 있다. 백번 양보해서 직장에서 송년회는 빠지기 어렵겠지만, 사적인 모임 몇 개는 여러 핑계로 패스하고 있지 않던가? 나도 사실 그렇다. 

  단 둘이라도 만나기 위해서 약속을 잡기 어렵다. 게다가 세명이고, 각자 사는 곳이 다른 상황이라면 어쩌면 1년이 지나도 만나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다. 또 우리가 이렇게 좋은 술과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도 그간 빠지지 않고 모았던 회비가 아니었을까? 서로를 만나기 위해서 돈과 시간과 마음을 합하니 이런 전과 같은 만남도 이어지는 것이겠지. 

  그렇기에 항상 같은 우리의 모임이 더 좋다. 절친이기에 비싼 고기가 더 맛있고, 비싼 양주도 더 목 넘김이 깔끔하다. 그리고 인생에서 이런 시간을 함께 하는 친구들이 있음을 감사하게 된다. 


  다음에 모임에는 군산을 가기로 했다. 셋 모두 추억이 있던 곳에서 봄 꽃이 날리는 길을 드리이브 하고, 숙소를 잡고 한 잔 하기로 했다. 물론 세 명만 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가정이 있는 사람은 가족을 연인이 있는 사람은 연인을 데리고 은파유원지에서 꽃놀이를 하자고 했다. 익숙한 것도 좋지만, 새로운 것도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려나? 


  술 마신 다음날 주말에 나가 일을 하면서 새로운 일을 다시금 내 일로 자료를 만들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나의 새로운 하루가 또 언젠가는 복사되는 날이 있겠지? 그런 날을 기대하면서 나는 한우와 술에 취해서 또 기분 좋은 하루를 마감했다. 

천안 <백미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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