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춘노 Nov 21. 2023

가끔은 눈이 설탕으로 보일 때

수제로 먹어보는 핫도그에 설탕을 뿌려 보다

  "눈 온다는데요?"


  동료가 말하는 이야기에 일기 예보를 봤다. 역시나 눈표시가 있고, 제법 많은 눈이 내린다는 기상 특보가 예정되었다. 그건 누군가는 비상근무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다행히 나는 아니다. 동료의 말은 비상근무가 실시된다는 알림 같은 소리다. 

  겨울이 찾아오는 시기 11월은 행사가 거의 끝나가는 한 해의 마무리기도 하지만, 산불 근무와 야근도 종종 있어서 주변이 컴컴해지는 시간에 퇴근하는 일이 많다. 아마 정시 퇴근해도 깜깜한데, 늦은 시간은 더 어두운 느낌이 들었다. 


  이것저것 시스템이 안 되는 날에도 일은 쌓인다. 아니 내린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지금의 날씨에 내리는 눈처럼 지상에 내리면 물이 되어서 쌓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얼어 버리는 상태가 꼭 나와 같다. 그럼에도 왜 배는 고픈지? 


  그렇게 생각하며 일을 하고 있는데, 한쪽에서 부산하게 움직인다. 냉동실에서 뭔가 꺼내고, 이야기하고 전자레인지를 돌렸다. 뭔가 노릇노릇한 냄새가 나더니 쟁반에 가져온 핫도그. 조리해서 먹는 핫도그를 설탕을 살살 뿌려서 막내 직원이 도시락에 뿌려 먹기 위해 산 케첩도 모양을 내고 있었다. 그렇게 하나 들고 한 입 먹어 본 맛이 그야말로 꿀맛이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마트가 하나다. 눈 오는 날에는 이동하기 불편하고, 농협 마트 하나에 문은 5시 반에 닫는다. 이것마저 냉동실에 없었다면, 아마 눈 내리는 밤에 나는 저녁을 건너뛰고 일을 했을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간식 아닌 저녁 같은 핫도그를 먹으면서 창 밖을 바라본다. 쌓이지 않지만, 어둠 속에서도 눈이 내림을 가로등 사이로 비치는 그림자로 느낄 수 있었다. 오래 일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지만, 일이 내 발목을 잡는다. 


  난 핫도그를 초등학교 무렵에 학교 앞에서 파는 것을 종종 먹었다. 한 500원 하던 것 같다. 설탕 그릇에 돌돌 돌려서 아주머니가 케첩을 가득 그려주면 조심스럽게 먹던 추억이 있다. 아마 그 기억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어묵국물 다음으로 좋하하는 메뉴이다. 확실히 나는 초등학생 입맛임에는 틀림없다. 


  사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몰랐던 맛이다. 그저 맛있기만 했고, 대충 저녁을 먹기 전에 간식 정도였다. 설탕의 단맛이 좋았고, 케첩이 많이 있으면 더 행복하다 느끼던 시절에는 눈 내리는 순간도 기뻤다. 하지만 지금은 하늘의 눈이 한없이 원망스럽다. 그리고 건강을 생각해서 설탕을 조금 털어야 하나? 설탕과 케첩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지금. 그 맛이 그때와 같을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오늘은 하늘에 눈이 설탕으로 보여서, 나도 모르게 설탕이 잔뜩 붙은 것을 골랐다. 그리고 바란다. 올해 겨울에 눈은 설탕처럼 달달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이전 04화 매운탕엔 신라면 사리가 진리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