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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Nov 14. 2023

매운탕엔 신라면 사리가 진리다

노량진 수산시장 회를 먹고 매운탕을 먹다

  나에게는 노량진이 제2의 고향이다. 어린 시절에는 남원에서 자랐지만, 이후에 삶은 거의 모든 게 노량진에서 결정되었다. 반환점을 돌고 온 자리가 다시금 출발점이라는 것 빼고는 의외로 싱거운 인생의 전환이었으나, 아직도 그 추억을 잊지 못해서 친구와 약속을 잡으면 노량진에서 만난다.


  의외로 당시에는 비싼 회는 먹지 못 했다. 거의 국수나 짬뽕이나 수제비 같은 저렴하면서 양 많은 메뉴만 챙겨 먹었지만, 주머니가 그래도 두둑해진 직장인은 1년에 서너 번 술안주로 회를 골랐다. 그리고 남자들만의 특징인 선택적 간편함을 위해서 제일 유명한 수산시장 간판 매장으로 갔다.  그렇기에 거의 모든 나의 회 사진은 노량진 수산시장 <형제상회>와 최근에는 <이레상회> 모둠회이다. 선택의 이유는 간단하다. 거의 기업형 횟집이라서 맛이나 신선도는 담보하기 때문.


  그런데, 한 가지 항상 고민이 생기는 점은 그 이후이다. 이 회를 들고, 어딜 갈까? 흔히 말하는 초장집이다. 대부분 나와 친구는 회를 구매하면서 추천한 집으로 가는 편이다. 구 노량진 시장에서는 골목 구석진 초장집을 찾는 매력이 있었는데, 지금의 노량진 수산시장은 쭉 줄지어 있기에 고르는  일도 아니다. 아마도 주문하는데 기운이 빠져서 대충 선택하는 것이 속마음이다.


  솔직히 수산시장에서 메인은 '회'이다. 간혹 다른 메뉴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후식이라고 생각하는 메뉴에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아마도 술이 한 병 이상은 들어간 취기에 맛을 느끼는 것이 둔해지는 것도 있겠으나, 매운탕은 어디까지나 마지막 후식 기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양보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매운탕에 뭘 넣는가이다. 그럴 때는 당연하게 라면사리. 그리고 내가 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면, 꼭 신라면(간혹 진라면도 있다) 사리를 찾는다는 점이다. 역시나 일반 사리보다는 가격이 비싸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는다. 이미 고급진 회를 먹기 위해서 지불한 돈이 있는데, 깔끔한 마무리를 위해서 그 정도 투자를 못 할까?


  내가 신라면 사리를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일반 라면 사리와의 식감 차이도 있지만, 수프의 효용성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매운탕은 호불호가 없는 메뉴지만, 식당마다 국물의 맛의 차이는 존재한다. 특히나 생으로 먹는 회를 한참 즐기다가 마지막 입가심을 위한 떠먹는 국물이라면 역시나 칼칼한 맛이 있어야 하는데, 같은 식당이라도 국물의  얼큰함의 정도 차이는 발생한다. 그럴 때 조미료 겸 넣은 신라면 수프는 신의 한 수이다. 아는 맛인데, 결정적으로 맛있다. 항상 먹는 라면이지만, 특별할 때만 먹는 매운탕 라면 건더기는 역시나 소주를 부르는 치트키다.

  그러다 간혹 라면 말고 다른 것을 넣고 싶다면 수제비도 추천한다. 간혹 식당마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앞선 식당에서는 아예 수제비를 넣어서 주는 곳도 있었다. 그럴 때는 애초에 주문을 할 때 수제비를 넣어 달라고 하는 경우이다. 아마도 이 시점에는 하나의 메뉴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뭐라고 붙이면 좋을까? 얼큰 매운탕 수제비(?)


  수제비라는 특성상 진한 육수가 베어난 국물에 맛이 더 좋다. 밀가루 냄새가 나서 싫어하는 사람들도 얼큰한 칼국수나 수제비는 먹는 경우도 그런 것 같다. 냄새를 냄새로 잡는 것이 웃기지만, 생선 비린내를 잡기 위해서 이것저것 넣은 재료가 그렇기에 수제비와 맞는 걸지도 모르겠다.

  최근 갔던 <충남식당>에서는 신기하게 수제비 반죽을 직접 떠서 넣는 방식도 있었다. 보글보글 올라오는 매운탕 국물에 어설픈 수제비 반죽을 뚝뚝 떨어트리는 재미를 즐긴다면 이 방식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맛도 어느 정도는 담보된다는 점에서 신라면이 아닌 다른 선택이라면 맛있는 선택 아닐지.

직접 떠서 만들어 먹었던 수제비
노량진 <형제상회> 모둠회
노량진 <이레상회> 모둠회

  간혹 왜 비싼 회를 먹는지 묻는 지인이 있어서 내가 회를 왜 좋아하는지. 좀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내 주변에도 날 것에 대한 호불호는 분명 있다. 그냥 삼겹살이나 소고기를 먹으면 되지, 위험하게 생선회를 먹는 것에 이해를 하지 못하는 사람도 제법 있다.

  그러한 이유에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왜냐면 나는 먹고, 먹지 않는 사람의 반론을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랄까? 그러다가 수제비를 싫어하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는 찬찬히 생각해 보니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신선하다는 뭐 그런저런 이유보다 확실한 것.


  쉽게 먹지 못하기 때문 아닐지? 나도 만나는 사람이 좋은 것을 먹었으면 한다. 또 어렵게 만난 지인에게 대접을 하고 싶다. 그렇기에 먹는 건 아닐까? 그 마무리가 매운탕에 담긴 라면이라서 너도 나도 행복하지 않을지. 겨울 친구와 함께할 회 한 접시에 소주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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