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춘노 Oct 31. 2023

찾았다! 섬진강 다슬기 수제비

순창 <돌담집> 다슬기수제비 먹방

  "못생겼어."


  전에 사귀던 여자친구가 자주 했던 말이었다. 물론 애정 있는 말투에 내가 생각해도 잘 생긴 편은 아니기에 웃어넘겼지만, 유독 수제비를 좋아하는 나에게 먹는 와중에 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단순하게 말가루 반죽을 손으로 뜯어서 국물에 넣고 익혀낸 요리일 뿐이다. 맛은 칼국수와 비슷하다. 다만 대충 뜯어 놓은 반죽의 모양만큼은 나처럼 잘 생기진 않았다. 그래도 정이 갔다. 대충 뜯어 놓은 수제비를 춘아재는 좋아한다. 그것도 다양한 수제비를 거의 매주 즐기기에 어느 지역에 가도 우선은 수제비 맛집을 고르고 골라서 가는 편이다. 이른바 수제비 칼럼을 쓰더라도 어디서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수제비'


  사람의 손길이 들어가는 만큼 맛도 다양하다. 오히려 대형 음식점에 수제비보다는 각 지역의 조그마한 수제비 집이 맛이 좋은 것도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주변에 수제비 맛집은 꼼꼼하게 기록하는 편인데, 그런 나에게 한 곳의 식당 이름을 들었다. 

순창 <돌담집> 다슬기 전문점이다

  전라북도 순창의 맛집 <돌담집>. 

  이곳의 명성은 오래 알고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갈 엄두가 좀처럼 나지 않았다. 일단 거리도 그렇지만, 줄을 서서 먹어야 하는 부담감도 있었다. 일단 재료가 소진되면 먹을 수 없기도 하고, 혼자 가서 먹기에는 매장이 좀 좁다. 아늑한 매장을 서울 같은 혼밥쟁이들이 가기에는 잘되는 식당에 민폐 같아서 방문에 조심스러운 이유이다. 그러나 누군가와 가기에는 너무 생각할 것이 많기에 일단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줄을 기다릴 틈도 없는 오픈 시작과 함께 10시에 첫 손님으로 입장했다. 사장님은 아마 놀라셨을 것이다. 아침도 아닌 점심도 아닌 이 시간에 혼자 온 손님이라니. 그럼에도 친절하게 반찬을 깔아 주셨는데, 일단 정겹지만, 아담한 매장에서 오는 안락함과 깔끔함, 게다가 푸짐한 반찬이 메뉴가 나오기 전부터 마음에 들었다.


  보통은 김치나 깍두기나 둘 중 하나가 나오거나 양을 채우기 위해서 내어주는 작은 공깃밥이 있는데, 여긴 그것 대신에 가지 말린 무침이나 사각 한 호박 반찬, 혼자 온 사람에게도 풍성하게 썰어주신 고추가 한 접시씩 나왔다. 솔직히 가격은 어느 유명 맛집 식사를 하더라도 비슷하거나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이다. 그리고 푸짐한 양에서 공깃밥이 필요 없는 이유를 바로 알았다.


  일단 춘아재는 카메라를 꺼내고 사진을 찍었다. 


 사실 이것을 먹기 위해서 아침부터 순창으로 달려왔다.

기본 반찬도 넉넉하다
씹는 맛을 또 매운맛을 즐길 고추

  그렇게 고추를 수제비에 탁 털어 넣고, 한 숟가락 뜨려는데,


  "그거 맵지 않겠어요?"


  아침부터 온 첫 손님에게 청양고추의 매운 위험을 알려 주셨는데, 한발 늦었다. 남자 사장님은 국물을 제대로 느끼려면 조금씩 넣어서 간을 맞추라 하면서 혹시나 매우면 국물 더 주신다며, 옆자리에서 본의 아닌 인터뷰를 시작했다.

청양고추다. 조심해서 일단 넣으시길

  사실 수제비는 해방 이전까진 귀한 음식이었다. 대신 메밀가루가 대체제로 쓰였다가 미국에서 밀가루가 무상 원조로 들어오면서 서민음식으로 대중화되었다. 게다가 들어간 주메뉴의 특징에 따라서 지역마다 특색 있게 유행했는데, 우리가 잘 아는 감자 수제비와 김치 수제비가 보편적이다. 어찌 보면 어느 세대에게는 가난의 추억을 떠올려서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이지만, 그것은 반백 년의 세월이 흘러서 맛을 중시하는 유행을 더해서 오히려 추억 속 수제비는 찾기 어려워졌다.


  다만 섬진강을 두른 이곳에서는 유독 다슬기 수제비가 유명하다. 사장님이 강추하시는 자연산 다슬기를 수급하기 쉽고, 매운탕 등 밀가루와 어울리는 메뉴들이 있는 이곳에서는 유독 맛집이 많다. 그렇기에 돌담집처럼 단일 메뉴 이른바 다슬기를 주력으로 하는 음식점도 유명할 수 있는 것이다.

  맑은 국물 속에 비친 다슬기 양을 본다면, 강가에서 본인이 다슬기를 잡는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슬기 잡이를 숟가락으로 할 수 있다는 인식이 들 때, 이곳에 왜 왔는지를 알게 된다. 게다가 쫄깃한 식감이 반죽과 다슬기를 번갈아가면서 느낄 수 있어서 두루 만족을 느낀다.


  간혹 리뷰 중에서 반죽의 두께가 얇은 것이 목 넘김에 좋다는 것도 장점인 맛집도 있지만, <돌담집>은 적당한 두께의 쫄깃한 식감이 매력적인 곳이다. 매장의 첫 손님으로 사장님과 대화를 해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본인 고집에 마구 파는 곳이 아니라 다른 맛집의 장점도 배우면서 손님들의 요구사항을 조금씩 반영하는 맛의 평가도 스스로 진행되는 집이었다.


  간혹 안타까운 것이 유명한 식당이 초심을 잃고 양이 줄거나 손님에게 불친절한 곳이 있지만, 사장님은 맛에 대한 발전가능성이 있으면서 초심의 고집은 있는 대화 속에서 나는 국물까지 싹 비우고 자리를 일어났다.

  무심코 식당문을 나오면서 후한 인심에 돌담집이라는 상호명을 생각하다가 맞은 편의 주택의 돌담을 쓰윽 바라봤다. 하나하나 뜯어 놓은 것에는 솔직히 못 생긴 반죽이지만, 그것을 모아 놓고 다음고 하다 보니 맛 한 그릇이 되어 있었다. 

  아마도 저 돌도 하나씩 볼 때는 그랬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정성을 다해서 쌓다 보니 정감 가는 돌담길이 되었다. 다시금 아기자기한 매장을 보고는 돌담처럼 맛이 영원하길 기원하며 다음에는 다슬기 반 반죽 반으로 맛나다는 다슬기 전을 한 번 먹어봐야겠다면서 다른 나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전 01화 국수 먹기 위해 기다려야 진심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