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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Nov 07. 2023

더 붉은 또는 푸른 유린기 산을 올라

곡성 맛집 <라이첸> 유린기를 먹어보다

  "유린기 먹자."

 

  "유린기?"


  이번에 먹자한 음식 이름인데, 들어본 듯하면서도 '무슨 재료?'라는 의문형 질문이 생기는 생소한 중화요리였다. 보통 먹는 것이 탕수육이고, 들어보고 먹어본 것이 깐풍기 정도인 나에게 신기한 메뉴라서 더 관심이 갔다.


  유린기는 간장소스에 신선한 야채를 놓고 그 위에 튀긴 닭고기를 올려놓는다. 물론 바삭한 식감도 좋지만, 스며들듯이 적셔진 튀김에 붉게 또 푸른 고추를 먹으면 건강해질 것 같은 느낌이 생기는 것은 기분 탓일까? 하지만 어디까지나 혼자 먹기에는 부담스럽기에 일단 일행의 틈에서 자기만의 메뉴를 하나 더 선택한다. 공통의 것도 내 것이지만, 내 겉만의 음식이 필요하달까?

곡성 <라이첸> 유린기

  자장면은 역시나 하얀 면 위에 뿌려진 검정 소스가 매력적이다. 튀김에는 자극적이지 않는 자장면이 생각났다. 검정색 면을 슥슥비벼서 유린기 한 점에 함께 먹어 본다. 사실 탕수육과는 다르게 자극적이지 않기에 짬뽕 국물은 생각나지 않았으나, 요리 위에 뿌려진 홍고추가 자꾸 짬뽕을 연상시켰다. 그래서 옆자리에 짬뽕밥을 쳐다보고, 자장면 한 젓가락을 먹었다. 아마도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다르게 시각에 붉은색을 보는 것이 특별하다는데, 그래서 그럴까? 다음에는 해물짬뽕을 먹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어쩐지 먹고 싶던 자장면

  다시 온 주말.


  이제는 가을이다. 가을가을하다는 색감 가득한 거리를 홀로 지났다. 바람도 불고 하늘은 맑다.  아는 지인도 산에 간다 자랑했다. 또 누군가는 프사에 등산 배경이 기득 했지만,  나는 주말에 이른 아침부터 곡성을 찾았다. 남들은 등산을 했지만, 난 음식산을 오르려고 말이다.


  <라이첸>은 곡성 기차마을 앞에 있는 중국집이라서 주변에는 또 카페나 볼거리도 많았다. 일단은 11시 오픈 시간에 맞게 근처 주변들 돌아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사실 기차마을은 초기 개장 시절부터 왔던 곳이다. 그러다 논밭이 주차장과 식당, 기차마을 부지로 바뀌면서 여행객의 단골 관광지가 된 곳이기에 아는 사람은 격세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어 시들어가는 나무의 낙엽처럼 잔잔하게 추억에 물들었다.


  그렇게 자전거 여행객의 첫 입장을 보고, 중국집에 들어가서 해물짬뽕을 주문했다. 역시나 얇게 썰어 넣은 홍고추가 아니라 그 보다 더 뽀얀 고춧가루가 담뿍 들어간  짬뽕을 만났다. 자세히 보니 홍합도 꽃게도 짬뽕 국물에 붉은 빛났다.


  전에 먹은 유린기가 산에 비유하자면, 적절하게 섞인 가을의 지리산였다. 반면 짬뽕은 마치 단풍잎 가득한 내장산 같았다. 그렇게  마시고, 씹기를 반복하니 역시나 산 정상을 오른 후의 땀이 났다. 그 순간 칼칼하기보다는 시원하게 매운맛에 짬뽕 하나를 깨끗이 비웠다.

  그리고 하산은 근처 카페에서 튀긴 식빵과 헤이즐럿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면서 매운맛을 달랬다.


  밖에 풍경은 이미 가을이다. 달달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가을 산에 오른 기분으로 음식을 닉했다.

  격정적인 여름의 온도가 차분하게 사그라드는 가을 공기도 겨울에 밀려서 붉은빛도 조만간 사라질 것이다. 아마도 앙상한 가지만 남은 공간에 허전함만이 남겠지만, 그나마 계절을 함께 느낄 음식을 만나 다행이었다.

  만약 이 맛도 모르고 겨울을 맞이했다면, 슬펐을 것이다. 몸도 마음도 아직은 붉은 기운이 필요했을 나였기에. 가을과 유린기와 짬뽕은 참 어울린 음식 아니었을까?

곡성 기차마을 옆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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