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 210622 20:00 후기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 천재 과학자가 있다. 그의 아버지 역시 뛰어난 과학자였고 그를 이어받은 아들, 프로페서V는 어린 시절부터 독서와 연구에 매진하여 어린 나이에 교수가 되고 세상에게 인정받는다. 하지만 그런 천재 V도 어쩔 수 없는게 있었으니, 옆집 소녀 ‘메텔’에 대한 사랑이며 연구에만 몰두하여 집안을 돌보지 않는 V의 아버지와 그를 꼭 빼닮은 V로 인해 매일 눈물짓는 그의 어머니이다.
V는 어머니를 안심시키고자, 그리고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고자 매력을 갈고닦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매력적이라 기록된 남자인 나비성의 영주 드라큘라 백작을 만나 그 비법을 전수받아오기로 하고 타임머신을 개발한다. 우연히 그 연구는 성공하고 백작을 만난 V는 피의 대가로 영원한 삶과 매력적인 외모를 얻게 된다. 하지만 뱀파이어가 된 그는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피를 탐하게 되고, 이는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적용되어 그를 죽이는 결과로까지 이끈다.
몇 년 전 시즌을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신나는 넘버 속 유머코드로 인해서인지 가볍게 느껴졌던 뮤지컬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봐서인지, 새로운 시즌을 보아서인지, 아니면 혹은 보는 나의 관점이 달라져서인지 조금 다르게 느껴졌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극이었다.
나는 픽션을 접할 때 영원불멸의 존재보다 필멸의 인간에게 더 매력을 느끼는 타입이다. 그 중에서도 그 영원이 절대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인간 캐릭터를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인간은 필멸의 존재이며 그렇게 태어난 존재가 영원(이라고 불리는 어떤 관념)의 시간을 얻는다고 해도 그것은 필멸의 시간이 계속하여 이어지는 영겁이라고 불리는 관념에 더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되풀이되는 필멸의 삶일 뿐이지 그것은 절대 영원이라고 생각하는 그 관념에 닿지 못할 것이리라 본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는 끝내 자신이 소멸함을 알고 있기에 예술과 문학, 사랑이 탄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라는 존재는 멸하지만 영원이라는 시간을 손에 쥐고 싶기에 안간힘을 쓰고, 그게 관계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V가 자꾸 신경쓰였는지 모르겠다. V는 메텔의 사랑을 얻기 위해, 사랑하는 어머니의 눈물을 멈추기 위해 피를 바치고 뱀파이어가 되는 것을 택한다. 이는 어찌보면 어리석은 선택이지만 사랑이라는 영원을 가지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한 필멸자의 인생과도 닮아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그 선택을 반복하는 운명, 그리고 그 선택으로 인해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운명마저도 인간의 한계성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적으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 넘버가 ‘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걸까’ 인데, V가 수십년만에 첫사랑과 처음으로 마음이 통하고 부르는 넘버여서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미 인간 그 이외의 삶을 선택하여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만끽할 수 없는 (실제로 보름달이 떠 버리기에…) V의 운명을 알기에 더욱 슬펐다. 사실 인간은 사랑을 하면서 끝이 있고 그 끝을 내 손으로 만들 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이 과거의 나의 선택의 결과일 수도 있고, 사랑을 바라기 위해 한 선택이 오히려 사랑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V와 메텔의 사랑도 그런 것일지 모르겠다. 사랑이라기보다는 어떤 관계이고 그 관계에 이름을 사랑이라 붙이고 싶었을 뿐인데 그것이 V를 파멸로 이끈 것이 너무나 안타까운 것이다.
개인적으로 V가 그래서 타임머신을 사용하여 메텔을 살리고 자신은 영생의 시간에 갇히는 삶을 살아가는 결말이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내가 생각한 V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같은 사랑에 빠져서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존재의 표상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백작과 함께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기로 한 것이 조금 어색하게 다가왔달까. 결말에서는 메텔이 아직 살아있는 시간이었지만 V의 앞으로의 시간은 인간이 생각한 영원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길고 긴 시간을 그 사랑을 그리워하면서 스스로를 태울 뿐일텐데 그에 대한 어떤 각오나 고뇌가 좀 더 비치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쨌든 이 극은 그렇게 끝이 났고, V는 그렇게 살아나갈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백작의 서사가 조금 많다는 생각도 들었는데...다음에 볼 때 백작과 영원불멸의 삶에 대해 좀 더 생각하며 본다면 또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보면서 아무래도 V의 서사에 좀 더 몰입하긴 했지만 백작의 매력이 매력이니만큼... 백작은 영원의 삶을 사는 존재로 외롭고 건조한 삶을 살아왔을텐데, 그의 시간이 궁금해지기는 했다.
나는 V가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V는 그런 사람이니까. 같은 선택을 하고, 후회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 사실 이건 인간에게 주어진 어느정도의 숙명이라고도 생각한다. 선택하고, 후회하지만, 사랑을 멈출 수 없는. 영원의 시간에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영원을 꿈꾸는. 어떤 의미에서는 V의 아버지의 인생도 V와 닮아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아내를 사랑하지만 연구를 멈출 수 없고, 그렇게 질주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그 사랑을 괴롭게 한다는 것. 그것이 세대를 지나서도 되풀이되는 것을 보면 이게 어쩔 수 없는 굴레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넘버도 좋고 조명도 좋고 연기도 노래도 정말 좋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게 하는 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