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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May 01. 2024

봄밤

어젯밤 처음으로 개구리들의 떼창 소리를 들었다. 올해 들어 첫 개구리 소리였다.

이곳에서 처음 개구리 소리를 들었을 때 그 소리의 크기 때문에 놀랐고 규모를 짐작할 수 없어 두 번 놀랐다. 세상에 있는 모든 개구리들이 우리 집 주변에 모여들어 떼창을 하는 것 같았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개구리들이 모이면 저렇게 큰 소리가 낼 수 있을까 궁금했다.

내가 사는 집 앞은 넓은 들이 펼쳐져 있다. 적게는 천평, 많게는 2천 평과 삼천 평으로 나뉜 논들이 쫘악 펼쳐진 들은 한눈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넓다. 하루를 비추던 태양이 서쪽하늘에 숨어들고 동쪽에서 밤의 전령인 달이 솟아오르면 때를 만난 듯 일제히 개구리들은 한 목소리로 떼창을 한다. 밤하늘에 떠 있는 달도 들썩이며 어깨춤을 추게 하는 개구리들의 떼창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계절 배꽃집에 머문 손님들은 난생처음 듣게 되는 개구리들소리에,  처음 우리 가족들이 그랬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나에게 묻는다. "사장님, 저 소리 개구리 소리 맞아요?"

분명 개굴, 개굴 소리가 들리는데도 불구하고 옆 사람에게 확인하게 되는 것은 그런 경험을 처음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소리 없이 웃는다. 굳이 개구리임을 확인시켜 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만면에 웃음을 달고 나도 손님에게 묻는다. "저 소리를 뭐라 부를 수 있을까요? 개구리들이 웃는다, 아니면 운다?" 이제껏 어떤 사람도 개구리가 '웃는다'라거나 '말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개굴개굴 하는 소리는 개구리들이 우는 걸까? 아니면 말하는 걸까? 혹은 웃는 소리일까?


개구리중에 기생개구리는 아름다운 소리 때문에  키우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이름 '기생'도 그 아름다운 소리 때문에 부르게 된 이름이라고 했다. 기생개구리는 일반적인 개구리 소리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이들의 소리는 새소리와 더 흡사하다. 새소리로 생각하면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겠으나 개구리울음주머니에서 나오는 소리로는 확실히 특별하다. 오키나와에 가면 이 개구리를 흔하게 만날 수 있다고 하니, 오키나와에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개구리들이 소리를 내는 때는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흙속에 묻혀 있던 씨앗과 뿌리들이 세상밖으로 나와 기지개를 켜고, 또 새들이 짝을 짓고 새 둥지를 만들 때 개구리들도 짝을 찾기 위해 목청을 높이는 것이라고 한다. 개구리들이 소리를 내는 것이 짝을 찾기 위한 것이라면 이것은 분명 세레나데이다. 연인을 향한 구애의 노래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개구리들은 우는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분명 노래를 부르는 것이리라. 그런데 왜 개구리들의 소리를 '운다'라고 전래된 것일까?


개구리의 노래로 시작된 이 봄은 새로운 시대를 예고한다. 곧 여치와 메뚜기 같은 풀벌레들이 찌르르 노래하며 풀밭을 뛰어다닐 것이고 고양이들이 그것들을 쫓아 덩달아 잔디밭을 뛰어다니며 때아닌 술래잡기로 법석을 떨게 될 것이다. 그때쯤이면 찾아오는 한 사람이 있다. 평일 밤, 퇴근을 하고 오는 사람이다. 그는 2시간 넘게 운전을 해서 배꽃집에 온다. 그가 와서 하는 일은 별것 없다. 두어 캔의 맥주를 바닥에 놓고 앉아 깊어가는 어둠을 응시하며 맥주를 마신다. 그러다가 가끔은 저어기 들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산책을 나갔다가 들 가득 들려오는 개구리들의 떼창 소리에 화답하듯 부르는 노래다. 그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 맥주 두 캔을 마시고도 몸과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는 사람이다. 가끔 말동무라도 해 줄까 싶어 앉아 있는 데크로 가면 들어가서 쉬란다. 그와 조금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가도 나는 순순히 그의 권유에 따른다. 맞추어 솟아나는 자연만물을 보며 살다 보니 그들처럼 귀도 순하다.


나는 그가 몇 시에 잠이 들고 또 몇 시에 나가는지 알지 못했다. 그가 출근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6시에 나간다는 말을 해주어서 알게 되었지만 알고 난 뒤에도 잘 가라, 안녕히 계시라 하는 인사를 나누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는 안다. 일렁이던 그의 마음이 순해졌다는 것을.


순한 개구리들이 떼창을 한다.

마음이 순해지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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