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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Apr 17. 2024

행복은 해석이다.

"행복은 해석이다."

최근에 만난 사람이 했던 말이다. 이런 멋진 말을 해준 D를 만난 곳은 공부모임이다. 우리는 고전을 읽고 나눈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대부분 은퇴자들이다. 나이 육십을 넘고, 칠십을 넘은 사람들도 있다. 인생을 육. 칠십을 산 사람들도 공부를 한다.

어렸을 때는 ‘노인들은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공부하지 않아도  부침 없이  살 것 같은  노년의 시간을 선망했던 적도 있다. 그 시간에 다다른 지금 그것은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행복 찾기'가 아니라도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을 해석하고 또 욕심을 앞세워 처신하기 위해서라도 도구는 필요하다. 경험을 쌓고 책을 읽어 배우게  되는 것들은 삶을 해석하는 유용한 도구가 된다. 한때 남부럽지 않은 명함을 가지고 살았던 그들이  다시금 공부를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배꽃집에서 3박 4일 머물며 여행을 하던 분이 있었다.  퇴직을 했다는 것으로 보아 환갑 전후쯤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60대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퇴직 후 3년째 국내외로 여행을 다닌다는 그는 여행 경험이 많아서였던지 자유롭고 여유로워 보였다.


그가 이곳에 온 이유도 남달랐다.  보통의 여행자들은 유적지나 풍광이 좋은 장소를 찾는다. 축제가 개최되는 시기라면 축제를 보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이 여행지를 선택하고 여행을 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그가 여행을 하며 다닐 곳은 '커피 맛집'이란다.


“제가 커피를 사랑해요. 최근에 보니까 이곳에 커피 전문점이 많이 생겼더라고요. 커피 순례를 해 보고 싶어서 왔어요.”


나도 커피라면 낮밤을 가리지 않고 마실만큼 좋아하지만 여행의 목적을 '커피'로 둔 적은 없었다. 여행에서 소문난 커피집이 있으면 한잔 맛보는 정도에 그친다. 음식맛집을 묻거나 찾는 사람은 봤어도 커피를 여행 목적으로 둔 사람은 처음 보았다.


그의 여행 가방에서도 지극한 커피사랑을 볼 수 있었다. 가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던 것은 커피콩과 드립 도구였다. 아침에 일어나 그는 커피도구들을 꺼내 정갈하게 앉아 커피를 내려서 마셨다.  '저 사람은 커피에 진심이구나!'  향기와 함께 시작하는 그의 아침은 멋스러웠다.


문화인류학자 김정운은 사람들은 '특별한 느낌과 의미를 가진 것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반복할 때 삶은 즐거워진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리추얼(의식)'이란다. 리추얼이란 행복하기 위한 반복 행위인 것이다.

그녀의 커피사랑은 말하자면 그녀의 행복을 위한 리추얼인 셈이다. 커피를 내리고 마시는 그의 모습이 아름답고 향기로웠던 것은 자신의 것을 찾고 누리는 자의 여유에서 풍기는 향기였다.




하루키의 에세이 <채소의 기분>은 '특별한 리추얼'로  모든 노력을 쏟아붓는 노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동네사람들은 그를 미쳤다며 비웃고 조롱한다. 동네 사람들의 조롱을 알고 있던 이웃집 소년이 노인에게 물었을 때 노인은 이렇게 대답한다.


노인 버트 몬로(앤서니 홉키스 분)는 이웃집 소년에게 "꿈을 좇지 않는 인생이란 채소나 다름없다"라는 말을 한다. 그러자 소년은 "그런데 채소라면 어떤 채소 말이에요?"라고 되묻고, 당황한 노인은 "글쎄, 양배추 같은 거려나...?"라고 얼버무린다.     


영화의 제목은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이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인디언은 '인디언 모터사이클'이라는 1901년 미국에서 출시된 모터사이클 브랜드이다. 영화는 버트 몬로와 낡아빠진 모터사이클 '인디언'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루키는 노인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노인과 소년이 나눈 대화 중에서 '채소', 즉 "양배추 같은 거려나...?"라고 얼버무리고 말았던, 그 '양배추'로 에세이를 완성한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고 난 뒤 영화를 봤다.

시골 마을에 사는 노인 버트의 일상은 고물 인디언과 씨름하는 나날이다. 버트의 꿈은 고물이 되어버린 모터사이클 '인디언'을 시속 300킬로미터의 속도를 가진,  세상에서 가장 빠른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것이다.

그러나  버트의 꿈은 너무 무모해 보였다.  늙은 그와 닮은 낡은 '인디언'은 백번을 광내고 바꾸어도 시속 300킬로는 고사하고 30킬로라도 달릴 수 있으려나...?  


버트는 고물상을 뒤져서  비슷한 부속을 찾아내어 깎고 맞추기를 반복한다. 게다가 그는 의사로부터 '협심증' 판정을 받고, '더 이상 모터사이클을 타지 마라'는 경고를 듣게 된다.   

이럴 때 사람들의 선택은 쉬운 쪽을 향하게 된다. 협심증이라는 의사의 진단은 포기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다. 명확한 명분도 있으니 스스로를 설득하기도 좋다. 실패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노인 버트 몬로는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조금 심각한 얼굴을 했을 뿐이다.

노인은 여전한 일상을 산다. 에이다(다이안 래드)를 만나고  인디언을 수리하며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커피 기행을 떠나온 손님이나 버트의 꿈은 얼핏 사소해 보인다. 꼭 해야 하는 일, 성취할 일은 아니다. 사실 우리의 일상에서 반복되는 리추얼은 타인의 시선에서는 사소하거나 무모한 것들일 수 있다.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껏 그들이 해 왔던 것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이라는 것을. 그것을 지속할 때 행복하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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