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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Apr 04. 2024

우리 어머니도 사장님처럼 살고 싶어 하세요

“저희 어머니도 사장님처럼 이런 시골에 살면서 게스트하우스 같은 거를 운영해 보고 싶어 하세요. 사장님은 어떻게 게스트하우스를 하시게 되셨어요?”   

  

친구와 함께 늦은 시각에 도착한 청년이 물었다.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은 청년뿐은 아니었다. 배꽃집에 온 게스트 중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들 대부분은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들이었고 또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도 즐겨하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여행자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잘 운영되고 있는 게스트하우스는 호스트에 대한 평판이 좋다. 여행자들이 선호하는 호스트는 여행자들과 잘 어울리며 소통이 잘 되는 인간미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호스트들은 여행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인 경우가 많았다.

     

밤 9시가 넘어 도착한 두 사람은 친구 사이였고 두 사람 모두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어엿한 사장님들이었다. 30대의 나이에 서울에서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절로 존경하는 눈으로 보게 된다. 계절이나 경기 변동을 잘 타는 자영업의 고충을 조금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늦게 온 이유도 가게 문을 닫고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준비해 온 음식과 술로 늦은 저녁을 하던 그들 나에게  술 한잔 함께 하자고 해서 동석하게 되었다.   

  

“어머니께서 시골에 살고 싶어 하세요?”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중년들은 시골생활을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골을 좋아하던 사람들 중에는 여행을 좋아하는 젊은 사람들인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부모님을 통해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싶어 하는 경우들도 있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성공을 자식을 통해서 얻고 싶어 하는 부모들처럼 말이다.   

  

“네. 어머니가 시골에서 살고 싶다고 하세요.”

“연세는 어떻게 되시는데요?”

“올해 칠십 조금 넘었어요.”

“아.. 그렇군요.”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었다.

한 때 전원생활과 관련되어 온라인에서 유명했던 이야기다. 자신의 경험을 맛깔난 글 솜씨로 재미있게 쓴 글은 많은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과 귀촌생활에 실패하고 되돌아간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이야기의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도시에 살다 강원도로 귀촌한 사람이었다. 울긋불긋 물드는 아름다운 나무에 둘러싸인 호젓한 전원주택에서 맑은 공기와 조용한 생활에 매일 감탄을 쏟아내며 축복받은 인생이라 자축했다. 산에서 내려온 고라니가 자신의 농작물을 뜯어먹는 것을 볼 때도 문제 되지 않았다. 자연과 어우러진 삶을 선택한자의 여유로운 마음으로 보아 넘길 수 있었다.

11월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이 내려 온 세상이 겨울 왕국이 되었을 때 그는 기뻐 감사했다. 아름다운 세상에서 아이들과 어울러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드는 것이 축복으로 생각했다. 마당의 눈을 쓰는 일도 귀촌 생활자의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눈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쌓여가는 눈을 감당할 수가 없었고 마당에도 나갈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춥기는 또 어찌나 춥던지... 겨울은 왜 그렇게 길던지... 3월이 되어도 4월이 되어도 눈이 내렸다. 축복 같은 눈은 원수로 바뀌었고 마당을 어슬렁거리는 고라니는 ‘엽사들은 다 뭐 하고 있나, 저거 안 잡고’ 불평을 쏟아내다가 눈이 녹아 길이 풀리자 서둘러 도시로 돌아왔다는 내용이었다.     


밝히지 않아 실화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당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막연하게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은 많다. 내 주변에도 시골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난 사람도 있고 또 적응 시간을 견디고 정착한  사람도 있다.  

시골생활에서는 잔디와 화단 관리하는 일과 텃밭 가꾸기 같이 직접 노동하며 관리할 공간이 넓다. 동네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도 도시보다는 밀도가 더 높다. 도시에서는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다.

또 나이 든 사람들 중에서는 시골의 낙후된 의료시설 때문에 도시로 나가는 경우도 있고, 이웃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고립된 생활에서 오는 우울감으로 도시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와 함께 또 하나 간과하는 것은 시간의 흐름이다. 시골의 시간은 도시보다 느슨하게 흐른다. 노동을 하는 시간도 다르다. 사람과의 소통도, 관계 맺음도 느리게 흐른다. 어쩌면 사람들이 시골의 삶을 꿈꾸는 것도 도시와는 다른 삶의 방식과 속도를 꿈꾸기 때문 아닐지. 그런데 정작 시골로 이주하고 난 뒤

그들이 놓쳐버리는 것이 있다. 그것은 '시간의 쉼표'다. 왜 그들이  삶의 공간을 바꾸었는지를 잊고 사는 것 같다.


잠시 다녀가는 곳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야 하는 곳을 선택하는 문제에서는 '시간의 쉼표'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요즘 유행하는 ‘한 달 살이’, ‘일 년 살이’로 시골을 경험하는 방식은 꽤 유익하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문화차이는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도시생활과 다른 삶의 패턴을 경험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선택지를 하나 더 갖게 된다는 점에서도 유익하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과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것은 별개의 두 가지 문제다. 그런데 청년은 이것을 하나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30대의 청년이라면 가능한 할 수도 있겠으나 70대의 그의 어머니가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선뜻 수긍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어머니의 꿈을 챙기는 청년의 효심이 대견해서 잘 될 것이다, 토닥토닥 힘을 북돋아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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