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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May 08. 2024

타인의 온기

그래도 괜찮아

시간 맞춰 손님들이 하나둘씩 입실을 시작하면 고적했던 배꽃집은 순식간에 생기를 되찾는다.

주말을 예약한 사람들은 다양하다. 혼자 온 사람, 친구와 함께 온 사람, 젊은 남자, 나이 든 남자, 2.30대, 4.50대 여자. 간혹 엄마와 딸이 같이 오는 모녀커플도 있고, 부자커플도 있다. 동호회원들이 무리를 지어 우르르 함께 오는 날에는 배꽃집 마당 작은 숲에 살고 있던 새들은 잠시 그들의 터전을 내어주고 사라진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같이 잠을 잔다고...?'

'나는 코 고는데 괜찮을까?'

'저는 낯을 많이 가려요.'


 저마다의 이유로 예약을 하기까지 망설였다는 손님들이 꽤 되었다.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처음 다인실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을 때 긴장되고 위축되었다. 내 첫 게스트하우스는 국내가 아니라 해외였다. 국내에서 한 번이라도 경험을 해봤더라면 별거 아니라는 것을 알았겠지만, 낯선 외국 땅에서 난생처음 여러 사람들이 함께 묵는 도미토리를 예약하려고 했을 때 얼마나 긴장되던지. 한참을 망설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게스트하우스를 찾게 된 것은 외로움 때문이었다. 혼자 구경하고 혼자 밥 먹고 또 혼자 잠자는 시간이 여러 날 계속되고 반복되니까 외롭더라. 그래서 여러 명이 묵는 숙소를 찾아갔었다.

왜 그런 경우 있지 않나? 시장에 가면 살 물건도 없으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잘 물건을 파는 사람, 사는 사람들을 구경하다 보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며 어떤 기운이 차오를 때가 있다. 내가 편안한 더블 침대를 마다하고 이 층침대가 줄 서 있는 운동장만큼 넓은 다인실을 갔던 이유도 바로 그거였다. 말도 안 통하고 아는 사람사람 하나 없는 곳이었지만 사람의 온기가 절실했다.     


요즘은 일인가구가 많다. 그중에서 청년 세대의 일인가구는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혼자 사는 자유로움도 있지만 빈 공간에서 느끼는 외로움도 있다. 그럴 때 청년들은 내가 여행지에서 그랬듯이 그들도 도미토리를 찾는 것 같다.

배꽃집에는 게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시간이 있다. 바비큐 파티 시간이다. 숙박비와 별도로 바비큐 비용을 지불하면 호스트가 고기와 밑반찬을 준비한다. 혼자 하는 바비큐는 우산 없이 비 맞는 기분도 들고 번거롭기도 하다. 그래서 누군가 준비해 주는 바비큐가 더 반갑다. 어디 고기뿐인가, 같이 음식과 술잔을 나누며 어울릴 수 있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사람들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빨리 친해진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공통점을 발견하기도 하며 그것이 뜻밖의 행운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게스트 A와 C는 10년 이상 나이차가 났다. 두 사람은 각각 혼자 왔다. 바비큐 시간에 가깝게 앉게 된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 살고 있는 지역이 멀지 않다는 것과 하고 있는 업종도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두 가지 공통점으로 두 사람은 급속히 친해져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헤어지기 전 그들은 연락처를 교환하게 되었고, 몇 주 후 휴직 중인 A는 C의 소개로 새 직장을 얻게 되었다.


가을이 시작되는 다른 주말이었다. H는 심리학을 전공했고 현재 심리상담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다른 주말과 달리 마당에서 하던 바비큐를 일찍 끝내고 저녁 9시쯤 되었을 때 모든 게스트들은 실내로 자리를 옮겼다. 평소라면 한껏 흥이 올라서 목청 높여 떼창을 부를 시각이었을 것이다. 십여 명의 사람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았고 밝은 전등불을 끄고 촛불을 켰다. 둘러앉은 모든 사람들이 손을 잡고 기도라도 시작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날의 진행자는 H였다. H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고 참석한 사람들이 돌아가며 이야기를 했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했다. 그러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 때문에 눈시울이 붉어진 사람도 있었다. 게스트 R이 신기한 경험이었다며 나에게 전해주었다.

그 자리를 함께 했다면 나는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R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헝클어진 나의 기억 창고를 뒤적였다.


우리는 '나'를 잘 드러내지 못한다. 말해 보았자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을 찾기도 어렵고 공감해 주는 사람은 더더욱 만나기 어렵다. 그래서 다들 자신의 이야기는 묻어두고 자신과 상관없는 엉뚱한 이야기들만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게스트가 적은 평일 밤, 가끔은 H의 시간처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 누구의 주도 없이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그렇게 흐르는 날이다. 그런 분위기에도 주저하며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할 때 내가 하는 말이다.

“내일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나가면 우리 다시 만나지 않을 거예요. 편하게 이야기해도 괜찮아요.”

격려하자고 한 말에 “저 여기 다시 올 건데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꼭 있다. 고마운 말이지만 '에고, 눈치 좀 챙겨 오시지'라는 생각을 하며 눈을 흘기게 된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왔던 사람들이 다시 만나는 확률은 아주 낮았다. 이곳에서 다시 만나는 사람들은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미리 약속을 잡고 다시 오는 사람들이거나 동호회원들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가끔은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도 괜찮다. 나에 대한 정보나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들에게 친구나 가족에게서 받지 못했던 공감과 격려를 받게 될 때도 있다. 가끔은 타인의 온기가 더 따뜻한 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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