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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Jun 11. 2024

아들을 더 알고 싶어서 왔어요

언어의 방식은 의외로 다양하다.

여름의 끝자락, 이르게 찾아온 가을이 여름의 문턱에 걸쳐있던 주말이었다.  중년 남성이 혼자 오셨다. 교직이나 관공서에서 높은 직급으로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거나, 퇴직을 했다면 일이 년 되었을 것 같은 연배였다. 아무리 봐도 게스트하우스와는 어울리지 않는 분이었다. 여행 중이라면 호텔을 찾아갈 것 같은 사람이  게스트하우스는 왜 오셨을까, 궁금증이 일어나는 사람이었다.     


오해는 마시라. 게스트하우스는 젊은 사람들만의 전용공간은 아니다. 물론 배꽃 집에 오는 대개의 중년들은 친구나 지인들과 어울려 오기 때문에 전체대실을 하는 경우가 많다. 청년들이 주로 모이는 주말에 예약하는 중년들은 많지는 않지만 있다. 중년들도 혼자 배꽃집 주말 파티에 참석해서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가는 사람들도 꽤 된다.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시간을  보내는 중년들이 가진 특징은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함부로 반말을 하거나 어른 대접을 받으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 사람들. 대부분은 여성들이었다. 중년 남성이 혼자서 주말에 찾아오는 것은 흔한 케이스는 아니다.     


최근 요 몇 년 새에 발간된 책에서 사라진 것이 있다. 작가 프로필에서 출생 연도, 출신지. 최종학력 같은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개인을 알아가는데 나이, 연차, 지역이 무색한 시대가 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프로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30대만 되어도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내성적이라서, 또는 처음이라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게스트하우스는 최고의 공간이 되지 못한다. 적적하겠지만 1인실에 머물며 넷플릭스를 보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선택이 될 것이다.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본인 의지가 없다면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시장통도 그에게는 섬일 뿐이다. 나이를 내세워서 얻을 수 있는 가치 있는 것은 없어 보인다.          


무더위가 시원한 서풍에 밀려날 시각, 마당에서 바비큐가 시작되었다. 혼자 오신 중년 손님도 자리를 잡고 젊은 사람들 속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나는 게스트하우스가 처음입니다어제 스무한 살 된 아들하고 싸웠어요내가 요즘 젊은 사람들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그래서 젊은 사람들을 더 알고 싶어서 생전 처음 게스트하우스에 왔어요여러분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들을 더 이해하고 싶은 마음으로 왔습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고백이었다.  고기를 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담담하고 솔직한 이야기였지만,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타인의 고백을 듣게 된 사람들 사이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는 존재만으로도 그 자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의 고민이 너무 진지하다. 

중년 남성의 심정도 이해가 된다. 그가 게스트하우스에 온 목적은 분명하다. 아들을 더 이해하고 싶다는 것. 그 자리의 청년들이 그의 카운슬러가 되는 셈이다. 솔직해져야 했을 것이다.

‘이 분위기 어쩔?’ 하는 고요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을 때, 자리에서  한 청년이 일어나 중년에게 다가갔다. 청년은 중년의 술잔을 채워주었다. 청년의 행동을 시작으로 다른 게스트들도 술병을 들어 옆 사람, 앞사람의 잔을 채우기 시작했다. 일순간 활기찬 분위기로 반전되었다.     

 

그러나 언어는 뿐인가?     


한때 나는 말을 믿었다. 말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다고, 말을 잘하면 소통은 저절로 잘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내 감정이나 행동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말’이 모든 꼬인 매듭을 풀어내 주지는 못했다. 

작가 이기주는 <언어의 온도>에서 말에도 차가움과 따뜻함의 온도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말은 표현하는 방식에서, 또 주고받는 태도에 따라서 확연히 다른 온도차를 갖는다. 그래서 똑같은 말이라도 상황에 따라 오해를 낳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배우고 익혀온 말이지만, 그래서 갈수록 말하는 것이 어렵다. 

     

언어는 관계성에 필요한 도구다. 최소 두 사람 사이에서 행사되는 것이 언어다. 

그렇다면 소통의 도구로써 언어는 말 뿐인가? 

‘말 잘하는 사람이 관계성도 좋다’는 말은 단순히 ‘말’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중년 남성의 고백에 모두가 어색했던 순간을 반전시켰던 것은 술병을 든 사람의 ‘행동’이었다. 그때 그의 행동은 중성 남성에게는 열 마디 말보다 더 큰 공감과 위로가 되는 표현이었을 테고, 또 그 자리에 있던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분위기를 바꾸어 주는 스위치의 역할을 하는 언어였다. 그의 행동에 따라 다른 사람들도 술병을 들었고 그리고 분위기가 전환되었으니까.    


개그맨들은 다양한 언어를 사용한다. 그들은 간단한 제스처, 음성변조, 얼굴 표정, 과장된 행동으로 웃음을 유발한다. 말이 아닌 다른 언어 사용에 능숙한 사람들이다. 

개그맨들처럼 주변인들 중에서도 상황 전환을 잘하는 재주 있는 사람들이 있다. 불편한 순간에 그들의 재치는 빛을 발한다. 많은 말보다도 짧은 순간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나는 진짜 말 잘하는 사람, 관계성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한다. 관계가 고민이라면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다양한 언어를 찾아보는 것을 어떨지. 

      

중년 남성은 하룻밤을 보내고 난 이름 아침에 고요한 장소에서 홀로 편지를 쓰고 있었다. 아들에게 쓰는 편지였다. 그의 바람대로 아들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편지를 쓰는 그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어쩌면 가족들처럼  일상을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언어는 ‘말’이 아닐 수도 있다. 등을 두드려주는 것, 손을 잡는 것, 눈을 마주치는 것, 따뜻한 미소, 칭찬의 말 같은 것들을 자주 하는 것이 백 마디 말보다 더 나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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