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살롱 #4일 차
코로나 전이었으니 최소 5년은 된 것 같다. 놀러 갔던 친구집에서 여러 벌의 청바지와 스웨터를 얻어 왔다.
가져온 옷 중에서 얇은 청바지와 겨울 스웨터 두 개가 마음에 들어서 지금껏 잘 입고 있다.
특히 통이 넓은 청바지는 핏이 내 몸에 착 붙었다. 다리도 더 자란 것 같았고 살도 빠진 것처럼 보였다. 봄, 여름, 가을 기온이 떨어져 쌀쌀하기 전까진 가벼운 외출 때마다 교복처럼 즐겨 입었다.
작년에는 그 청바지를 몇 번 입지 못했다. 친구의 시간과 내 시간이 직조된 청바지는 본래의 푸른색은 희석되고 바래어서 초라해졌다. 버리자니 핏이 마음에 들고 계속 입자니 초라해 보인다.
일부러 구멍을 내고 헐게 만들어서 파는 청바지도 있지만, 그런 것들은 청춘들에게 해당되는 것 같다. 나이 듦도 초라한데, 옷까지 낡은 것을 입어야 할까 싶은 마음에 낡은 청바지를 만지작거리며 오락가락하는 이 마음도 서글프다.
그래서, 버려야 할까, 계속 입어야 할까?
문득, 의류 수거함에 청바지를 넣으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다. 막연한 생각이었지만,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리는 것보다는 수거함에 들어간 옷은 어떤 형태로든 재활용될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멀쩡한 옷을 버리면서도 죄책감은 없었다. 수거함에 넣은 옷은 쓰레기는 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낡은 청바지로 알게 재활용 의류에는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숨겨진 진실이 있었다. 진실은 참혹했고 현실은 부끄러웠다. 무심히 버렸던 내 옷들이 먼 남의 나라에서 쓰레기산을 만들어 내고 있는 참혹한 그 풍경에서 아주 오래된 기억 하나를 불러냈다. 그곳은 쓰레기산 '난지도'였다.
1980년 중반, 나는 몇 명의 사람들과 난지도에 갔다. 그곳이 쓰레기 매립지라는 것을 알고 갔지만 막상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처참했다. 온통 쓰레기였다. 쓰레기로 만든 산이 몇 개나 되었을까? 헤아릴 수 없는 쓰레기산 사이로 길이 나있었고, 그곳에 집이 있었다.
쓰레기 산 바로 아래 길게 엮은 일자 판잣집에서 많을 때는 7백여 명이 사람들이 살았던 때도 있었다. 태어난 아이들은 쓰레기산을 타고 오르며 자랐다. 바람에 날아다니는 비닐이 하늘을 가로질러 어지럽게 날아다녔고, 뿌연 먼지와 쓰레기 악취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도망치듯 서둘러 빠져 나왔던 그곳에는 쓰레기를 주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난지도 지명은 난(蘭)에서 유래되었다. 난초가 많이 자라던 난지도는 신혼여행지로 알려질 만큼 풍경이 아름다운 섬이었다.
1978년 난지도는 쓰레기 매립지로 지정되면서 매립지가 폐쇄된 1993년까지, 15년 동안 서울에서 배출된 각종 건설, 산업, 생활 쓰레기가 투기, 매립되었다.
난지도 매립지는 현재 하늘공원과 노을공원 있다. 재투성이 신데렐라가 누더기를 벗고 아름다운 드레스로 갈아 있고 왕자를 만나서 신분이 상승되었듯이, 이제 쓰레기산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시민들을 맞아들이고 있다.
2022년, 우리나라 의류 폐기물은 약 11만 톤으로, 인구대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의류쓰레기를 배출하는 나라가 되었다. 수출된 옷 중 상당량은 쓰레기장을 향한다. 버려진 옷들이 난지도의 쓰레기산을 만들어 냈다. 풍요로운 21세기 대한민국이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쓰레기산을 수출하고 있다.
40여 년 전 보았던 쓰레기산 난지도를 너무 쉽게, 빨리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낡고 색 바랜 내 청바지, 자랑스럽게 오래 입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