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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곳

25.4.25-26

by 보리남순

기차여행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내 옆자리에는 누가 앉게 될까? 기대와 설렘으로 기다려 보았으나, 끝내 아무도 앉지 않았다. '혼자라면 더 좋지 뭐.' 기대하던 선물을 받지 못한 아이처럼 샐쭉해져서 창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풍경을 바라보았다. 지평선이 보이지 않는 넓은 평야의 풍경들이 나와는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내달렸다. 풍경을 쫒느라 눈알이 빙빙 돌았다.

우리나라는 산이 참 많은데, 스페인에서는 산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끝없는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초록으로 물들지 못한 펼쳐진 곳에서 포도밭을 찾아냈다. 기차를 내달려 포도밭이 달음질쳐서 지나갔다. 지나치고, 또 지나치고. 아휴, 포도밭이 참 넓기도 하다. 포도밭이 많아서 라만차의 돈키호테가 이 나라에서 탄생하였을까?


6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레온역에 도착했다. 인구이동이 많은 대도시답게 역사는 넓었고 깨끗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볼 수 없던 배낭과 운동화를 신은 사람들이 많았다. 엉뚱한 곳에서 내린 것은 분명 아닌 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알베르게에서 묵게 될 것이다. '알베르게'라는 단어는 어쩐지 로맨틱하다. 알베르토라는 이름을 가진 이탈리아 남자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순례자 숙소인 알베르게는 공립과 사립으로 나뉜다. 공립 알베르게는 사전 예약을 받지 않는다. 산티아고 관련 자료를 열면 색색의 배낭이 길게 늘어져 있는 사진을 보게 되는데, 이는 공립 알베르게에 머무르려는 순례자를 대신한 배낭 줄이다. 내가 카미노를 걸었던 4월은 순례객들이 몰리는 시기는 아니어서 배낭으로 줄 서볼 기회가 없었다. 나도 그런 사진 하나 쯤 갖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낯선 곳을 갈 때는 지도가 필요하다. 요즘은 종이 지도 대신에 모두 구글지도를 손에 들고 다니며 길을 찾는다. 레온역에서 구글지도를 켜고 걷다가 저 멀리 언덕에 서 있는 성처럼 보이는 건물이 보았다. 희고 빛나는, 예사롭지 않은 그곳은 레온의 명물인 레온대성당이 분명해 보였다. 직선거리로 가도 될 것 같은데 구글 지도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벌써 여러 바퀴째 맴돌게 했다. 앱을 끄고 내 직감을 믿기로 했다. 내가 찾아갈 공립알베르게는 레온 성당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지름길을 찾아야 해"


지도를 끄고 성처럼 보이는 그곳을 좌표로 찍고 직진했다. 지도를 따라가는 것은 옳은 방법이기는 해도 빠른 길은 아니다. 지름길은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다. 빠르게 가야 할 때는 그 지역에 살고 있는 나이 많은 사람에게 묻는 것이 가장 확실하게 지름길을 찾는 방법이다.



레온 대성당 못 미쳐서 오른쪽 좁은 골목으로 꺾어 들어 구불구불하게 꺾인 골목을 여러 개 지나 마침내 '산타마리아 카르바할 (Santa Maria de Carbajal)'에 당도했다. 지역의 사람들이 도와주었다.


'산타마리아 카르바할(Santa Maria de Carbajal)'은 순례자 전용 공립 알베르게이다. 이곳은 베네딕트 수도사들이 운영하는 곳으로, 다인실이며 숙박비용은 도네이션을 한다. 순례길 중에 묵었던 공립 알베르게 중에서는 '최소 10유로는 내주세요',라는 메모가 쓰여 있는 곳도 있었지만, 이곳 산타마리아 카르바할에는 철제로 된 작은 도네이션 박스만 준비되어 있었다.


하루에 최소 2개의 스텝프를 찍으라고 했지만, 아무곳도 몰랐던 나는 첫날부터 가는 곳마다 도장을 찍었다. 같은 날 찍은 도장이 여러개다. 순례자 여권을 크렌델시아라고 부른다.

크렌데샬, 순례자 여권(credencial)이다. 이곳에서 첫 순례자 여권을 만들었고, 첫 도장을 찍었다. 이 순례자 여권이 앞으로 보름 남짓의 기간 동안 나를 순례자로 증명해 줄 것이다. 나는 수첩을 소중하게 접어 가방 깊숙이 넣었다.


"나... 잘할 수 있겠지?"


오기 전에 모든 것이 궁금했던 알베르게에서 첫 밤을 보내게 되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여러 번 봤던 장소라도 실재 눈으로 직접 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곳만이 가진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분위기와 향기, 만난 사람들, 햇살, 정원의 작은 풍경과 실내에 놓인 작은 소품들로 감각되는 것들 말이다. 산타마리아 카르바할에는 조용함, 기품, 세월, 소박함과 함께 마음을 건드리는 어떤 것들이 있었다.


순례 중, 첫날 이곳에서 가장 많은 한국인들을 만났다. 그들 대부분은 나이 지긋한 은퇴자들로 보였다. 그중 한 분께서는 직접 동키서비스 앱을 내 휴대폰에 깔아 주었고, 본인 번호도 저장해 주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연락하라고 하셨다. 동키앱을 사용할 일도, 또 연락을 해야 할 급박한 일도 생기지는 않았지만, 처음 만난 나에게 선뜻 베풀어준 그의 온기로 나는 길을 걷기 전에 이미 천사를 만난 것처럼 마음이 따뜻했다. 낯섦에서 오는 불안과 요동치는 맥박을 안정시켜 주었던 봄날 햇살 같은 따스함이었다.


산타마리아 카르바할 알베르게 주변 풍경


7시,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와 축복식에 따라나섰다. 눈 닿은 풍경마다 그림이다. 화가의 그림을 모아놓은 도판에서 본 것 같은 파스텔색 건물들과 담배꽁초 하나 보이지 않는 깨끗한 거리를 구경하며 사람들의 뒤를 쫓아 걸었다. 숙소를 찾아 들어올 때는 비어 있던 빠에는 어느새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거리 밖으로 튀어나오는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소리에 이끌렸다. 빨간 앞치마를 입은 종업원이 한 손으로 맥주잔이 담긴 트레이를 높이 받쳐 들고 서빙을 했다. 시원한 맥주 한잔이 간절했지만,


"나는 기도하러 간다."


미사 장소는 알베르게에서 약 10여분 떨어져 있었다. 규모가 크기 않은 아담한 성전과 둥근 모양의 리셉션 홀이 현관을 중심으로 분리되어 있다. 그날은 부활을 3일 앞둔 성삼일 중 첫날이었다. 가톨릭의 미사 예절은 세계 어디나 비슷해서, 가톨릭 신자라면 언어와 무관하게 미사 예절을 참여하고 기도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순례자들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줄에 앉았고, 앞 줄에는 은퇴수녀님들과 수녀님들이 앉았다.

내가 앉았던 두 번째 줄 긴 의자에 우리나라 여성 한 명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여러 장으로 된 인쇄물을 손가락으로 짚어주며 내가 미사를 따라가도록 도움을 주었다.

미사는 정갈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앞 줄에 앉은 수녀님들의 아름다운 성가를 넋을 빼고 들었다. 그들의 신을 만나게 될 날이 멀지 않은 은퇴수녀님들과, 곧 그들의 자리에 앉게 될 수녀님들이 받치는 아름다운 찬미가... 그들 마음에 있는 신은 어떤 형상을 하고 있을까...?



성찬례를 마친 후, 순례자들을 위한 축복식을 위해 성전 옆에 있는 둥근 리셉션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러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을 위해 이곳에서는 각국의 언어로 된 순례자 기도문이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는 둥글게 둘러서서 각자 자기 나라 말로 순례자 기도를 받친 후 신부님의 축복을 받았다.


"식사 함께 하실래요?"

성당을 나오기 전 내 옆에 앉았던 그녀에게 물었다. 용기보다는 같은 말을 쓰는 사람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말간 그녀의 눈이 나에게 용기를 주었던 것일 수도 있다.

"네. 그런데 잠시만 기다려 주실 수 있으세요? 제가 저분들과 나눌 말이 좀 있어서요." 환한 미소로 그녀가 대답했다.


우리는 근사한 식당을 찾아서 들어갔고, 평범한 음식을 하나씩 골랐다. 그리곤 처음 만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10년이었어요. 그곳에 머문 시간이. 아니다 싶어 나와, 엄마에게 갔어요. 산티아고 순례를 걷고 돌아오겠다고 말했을 때 엄마가 이렇게 말했어요."

"전화하지 말고, 가끔 사진만 한 장씩 보내."


그의 아픔이 나의 아픔에 닿았으나 위로의 말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행길에서 처음 만난 우리는 서로 아픈 마음을 열어 보였다.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믿음으로 우리는 다른 날보다 조금 더 용감해졌다.


"BUEN CAMINO"


그녀는 프랑스 생장피드포르에서 출발했다. 20일을 걸어 레온에 도착을 했고, 그리고 며칠 전부터 발바닥 통증으로 고생 중이었다. 족저근막염이라고 했다. 그날 나는 족저근막염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고,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멀지 않은 시간 그 족저근막염이라는 것이 나에게도 찾아올 것이며, 그것으로 인해 내 남은 여행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들어가게 될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녀는 레온에서 하루 이틀 더 쉬어야 할 거라고 했다. 우리는 처음이자 마지막 만찬이 될 스파게티를 나누어 먹고는, 서로의 까미노를 응원하며 등을 두드렸다.

"부엔 까미노!" 우리는 순례자처럼 작별했다.


순례자들의 아침은 해가 뜨기 전부터 시작됐다. 8시가 되었을 때는 모든 순례객들이 떠났고, 알베르게는 다시 고요해졌다. 나는 오래전부터 순례길을 걸어온 사람처럼 느긋했다. 초반 사흘은 워밍업이다. 일정은 언제든 수정 가능하다. 느긋하게 서두르지 않고 순례길의 모든 것들을 즐기고 싶었다.

배낭은 동키 서비스에 맡겼다. 작은 가방 하나 메고 가벼운 몸으로 레온 대성당으로 갔다. 가까이에서 본 대성당은 무척 아름다웠다. 성당 문을 개방하는 시간까지는 한참이 남아 있었다. 문이 열리는 시간까지 기다릴까, 출발할까 고심하고 있을 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아직 출발 안 하셨네요?"

다시는 보지 못할 거라는 그녀였다. 나는 조금 망설였으나 그녀는 반갑게 나에게 다가왔다. 이유가 있었다. 핸드폰 유심이 다 되어서 새로 유심을 구입해야 했는데, 핸드폰을 쓰지 못하니 상점 위치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내 휴대폰을 빌려 그녀는 상점 위치를 찾아내었고, 나는 레온대성당을 더 볼까 갈등하던 마음은 아주 쉽게 버리고 그녀와 함께 유심 가게로 행했다. 그것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가게 문이 열릴 때까지 커피 한잔 할까요?"

그렇게 우리는 조금 더 만남을 이어갔다. 주변을 맴돌다 감으로 찾아들어갔던 레스토랑은 첫눈에 봐도 꽤 괜찮은 커피를 맛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에스프레소를, 그녀는 크림이 들어간 커피를 주문했다.

"에스프레소는 너무 쓰지 않아요?"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작은 잔을 들어 에스프레소를 아주 조금 마시고 입술을 핥았다. 진한 커피가 그라데이션으로 나누어지며 각각의 맛과 드러냈고, 향이 입안에 가득 찼다.

내 커피를 그녀 앞으로 밀어주었다.

"커피를 아주 조금만 마시고 입술을 핥아보세요. 여기 커피 너무 좋아요."

내 커피를 마신 그녀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너무 써요."

S와 마셨던 커피와 추로스. 그 집이 어떤 집이었는지는 늘 뒤늦게 평가된다. 지나고 보니 그 집은 최고였다.



아직은 커피맛이 쓰다는 S 헤어졌다. S는 유심을 파는 상점으로 향했고, 나는 노란색 조가비가 그려진 순례길을 따라 걸었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길 위에서는 만남이 가볍고 자유로워야 한다고 되뇌었다.

'브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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