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25. 금
유럽의 첫인상은 꽤 성공적이었다. 온라인으로 예약했던 숙소도 깔끔했고, 위치도 조용하고 좋았다. 그중 최고는 스텝 구스타프오였다. 관광명소, 음식맛집, 숙소의 컨디션 같은 조건들도 좋은 여행이 되기 위한 조건이 되지만 그것들 보다 우선하는 것이 내게는 사람이다. 좋은 사람을 만난 여행을 나는 좋은 여행으로 기억한다. 숙소의 스텝이 뭐 그리 대단한 친절을 베풀었을까 싶지만, 사실 긴 비행시간의 피곤함과 첫 유럽 여행에 대한 부담감이 꽤 있었다. 그런 나에게 구스타프오는 내가 유럽에서 처음 만난 말하자면, 유럽의 첫인상이었던 셈이다. 체크인 때 A4 한 장 분량을 작성해야 했던 질문들, 여권에 나와있지 않은 한국 주소와 우편번호, 전화번호를 기록할 때 진땀이 났다. 잘 생긴 젊은 스텝의 친절한 설명과 미소만으로도 낯선 여행지에서 갖게 된 긴장감이 많이 풀어졌다.
유럽의 다른 도시들은 아직 구경한 바 없지만은 바르셀로나는 소란스럽지 않아서 좋았다. 사람들은 다정했고, 친절했다. 깨끗하고 단정한 바르셀로나가 마음에 쏙 들었다. 바르셀로나에 며칠 더 머물며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위해 레온으로 가야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풀어놨던 물건들을 정리해 두 개의 배낭에 나눠 짐을 쌌다. 어제저녁 주변 식료품 가게에서 구입한 빵은 작은 배낭에 넣었다. 스페인의 기차에서도 우리나라처럼 간식수레가 있을까 궁금하다. 간식수레가 없을 것을 대비해 준비한 빵이었다.
아침 7시 20분. 체크 아웃을 하고 숙소를 나왔다.
숙소 앞 사거리에는 출근복장을 한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갔다. 단정하게 차려입고 바삐 걷던 사람들 중 몇몇은 나에게 눈길을 주었다. 등에는 배낭을 메고 얼굴을 반쯤 가린 모자를 쓰고 있었으니 눈에 띄었을 것이다. 아니, 그도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부러움을 담은 시선이었을까?
4월 25일 바르셀로나도 계절로는 봄이다. 기온으로는 우리나라 봄과 비슷했지만 이곳의 봄은 황사도 삼한사온의 변덕스러움도 없이 우리나라 가을날처럼 맑고 청명하고 상쾌해서 걷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그러나 아침기온은 꽤 쌀쌀해서 출근하는 남자들은 양복 위에 얇은 점퍼를 입었고, 여자들은 제법 두툼해 보이는 니트스웨터를 입고 있다. 나도 두꺼운 점퍼를 입었다. 점퍼를 입지 않았더라면 쌀쌀한 기온에 콧물을 흘릴 뻔하였다.
걷던 중, 반대편에 있는 건물들 사이에서 어제저녁 물건을 구입했던 식료품점을 발견했다. 자그마한 키에 초로에 접어든 가게 주인이 분주하게 물건을 들고 가게를 들락거렸다. 아침 장사 준비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제저녁 무렵 숙소로 돌아오던 길에 들어갔던 가게였다. 무뚝뚝해 보이는 아저씨에게 "빵이 있냐"라고 물었다. 오늘은 빵이 다 떨어졌다며, 내일 아침에 빵이 온다고 대답했다. 아침 일찍 떠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삼립빵에서 나오는 호떡빵처럼 포장된 빵 한 봉지를 샀다. 함께 먹을 과일이나 잼 같은 것들이 있을까 싶어 어색하게 선반을 기웃거리고 있자니, 주인도 낯가림이 있던 사람이었던지 시간이 조금 흐르자 나에게 말을 붙였다.
"어디서 왔니, 뭘 찾니?" 아저씨 얼굴에서 작게 미소가 피어있었다.
우리의 언어가 조금 더 능숙했더라면 꽤 수다를 떨었을 것 같기도 하다. 그 시간 가게에는 손님이 없었고, 내가 그랬듯이 그도 이국의 나에게 호기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얄팍한 언어로 몇 마디 말을 나눈 말에서 투박하지만 환대받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가게 주인은 비닐봉지에 내 물건을 담아주면서 "Good luck your journey."라고 나를 축복해 주었다. 잠시 길을 건너가서 가게 주인에게 작별 인사를 할까 망설이다가 그러지 않았다. 행동을 하기에는 1%의 용기가 부족했다.
숙소에서 산츠역까지는 17분이었다. 비가 조금 내리려는지 구름이 낮게 내려앉아 있다. 해가 뜨지 않는 아침길을 걸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스마트폰의 구글앱은 걸어서도 17분, 버스를 타고도 17분을 보여주었다. 아니,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이람? 사람의 두 발과 자동차의 속도가 같다니, 이게 가능해? 사람의 두 발보다는 기계에 더 의지해 살아가는 세상이고 보면 세계 어디에서나 자동차 길이 사람길보다 더 넓고 또 빠르지 않은가 말이다. 내 경험이 전복되는 이상한 상황이었지만, 지리학에는 잼병인 데다 심한 길치인지라 설혹 친절한 누군가의 설명이 있다고 한들 알아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타야 할 기차는 9시 15분, 등에 멘 배낭이 조금 무겁기는 했지만 걸어보자 결심하자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바르셀로나의 마지막날 아니던가. 언제 또 이곳에 와보겠나,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배낭 때문에 망설였던 17분이 오히려 짧게 느껴졌다.
바르셀로나의 아침이 조용하게 기지개를 켜고 있다. 차도에는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정차되어 있을 뿐, 운행되는 차는 보이지 않았다. 바르셀로나의 아침이 조용했던 이유였다.
이르다고는 해도 출근시간이다. 그런데 운행되는 차가 하나도 없다. 이것도 무척 이상한 일었지만 도로도 뭔가 우리나라와는 달랐다. 넓은 차도가 있어야 중앙에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길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닌가! 차도는 양 옆으로 밀려나 있다. 게다가 중앙에 있는 인도가 차도보다 서너 배는 넓었고, 커다란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곳곳에 기다란 의자가 놓여 있다. 인도라기보다는 공원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세상에나! 차보다 사람이 더 큰길을 차지하고 있다니!
우리나라 도로는 어떤가? 널찍한 중앙도로는 차가 다니고, 그 양 옆으로 인도가 있다. 도시의 인도는 넓기도 하고 커다란 나무와 예쁜 꽃화분이 있어 쾌적하고 아름답지만, 우리나라의 많은 시골길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인도가 없는 곳에서 씽씽 달리는 차도를 빌려 위태위태하게 걷게 걸을 때면 누가 이 길을 계획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인도가 사라진 도시계획은 탁상행정이 만들어낸 몰지각성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는 사례다.
길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느릿하게 걷는 할머니, 러닝 하는 남자, 그리고 배를 깔고 누워 있는 개와 경계심을 보이지 않는 고양이, 먹이를 찾는 비둘기들... 이 길에서는 누구도 억울한 마음이 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말이다, 어쩌면 숙소에서 산츠역까지 도보와 버스의 소요 시간이 동일한 것과 인도가 넓은 이 도로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매직 같은 어떤 비밀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비약이 지나친 것일까...?
불빛이 따뜻하다. 빵집이었다. 불빛이 따뜻하게 느껴졌던 것은 쌀쌀한 날씨 때문만이었을까? 커피 한잔이 그리워서 빵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실내에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어 놀랐다.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커피만 마시는 사람, 작은 접시에 담긴 크로와상과 함께 커피를 마시는 사람... 잘 차려입은 것으로 보아 출근길인 사람들이다. 아침에 해장국집을 찾는 한국인들처럼 스페인 사람들은 출근길에 빵과 커피를 마시나 보다. 자리를 차지하고 앉기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쑥스러웠다. 게다가 이제 내 위는 빈 속에 커피를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빈속에 커피를 마시자면 한 손에 커피잔을, 다른 손에는 위장약을 쥐어야 한다. 바게트빵으로 만든 샌드위치 한 개를 사서 나왔다.
산츠역에 도착한 시각은 8시 16분. 17분 거리를 한 시간이 걸려 도착했다. 길을 헤매지는 않았다. 아침을 여는 사람들과 감동적인 길의 풍경과 개와 고양이 새들을 구경하며 짧은 만남을 가졌던 바르셀로나와 이별했다. 가슴이 꽉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산츠 역사는 아주 크고 넓었다. 게다가 우리나라 명절 서울역만큼이나 사람들이 많았다. 여기 산츠역은 우리나라 서울역과 같은 허브가 맞다. 산츠에서 기차를 타면 마드리드, 발렌시아, 세비야 같은 스페인의 여타 도시를 갈 수 있다. 레온행 기차도 여기서 출발한다.
나는 길을 묻는데 익숙하다.
산츠역까지 오는 동안에도, 또 레온행 기차를 탈 때도 여러 차례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물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부터 나는 여행을 다녔고, 그때는 사람이 지도가 되었다. 스마트폰의 앱으로 기차표를 사고 숙소 예약도 하고, 카드 사용도 하게 되어 편리하지만, 길을 찾을 때는 나는 여전히 사람이 가장 쉽고 또 안심도 된다. 넓은 기차역에서 내가 탈 기차의 대기줄을 알려준 이도 사람이었다. 전광판은 레온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한 줄이 1번이라고 가리키고 있었지만, 시시각각 바뀌는 현장의 상황은 달랐다. 1번 줄에 서 있던 나에게 2번 줄에 서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었던 사람은 옆 줄에 서 있던 아주머니였다. 그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기차를 놓쳤을까? 그건 모를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낯선 이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들을 통해서 나는 좋은 세상을 만나고 또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아직 세상에 대해서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심한 길치임에도 불구하고 낯선 곳을 여행해 볼 용기를 내 볼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일부터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게 된다. 8백 킬로 전구간을 걸을 자신도 없었고, 시간도 충분히 않았기 때문에 레온을 선택했다. 레온에서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는 약 310km로, 프랑스 길 전체 구간 중 대략 3/1 구간을 걷게 된다. 내일부터 5월 13일까지는 길 위의 순례자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어떤 길을 걷게 될까,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순례자 음식은 어떤 음식인지, 순례자들의 숙소인 알베르게는 어떻게 생겼을까, 가다가 길을 잃는 것은 아니겠지? 길을 걷는 순례자들이 많이 있을까? 한국인들도 있을까? 내가 걷게 될 순례길의 모든 것이 궁금했고 설레었다. 순례길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이 너무 커서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서라도 빨리 레온에 도착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