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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철 Nov 04. 2019

잉여인간 탈출, 다른 계획이 생겼다.

여행 전

안녕하세요, 저는 한희철입니다.


한씨표류기 : 오키나와 편은


- 작성 시점이 2018년 6월입니다.

- 스물아홉 살 백수가 어떻게 서른 살 백수가 되는지에 대한 글입니다.

- 낮은 수준의 여행정보와 높은 수준의 사생활이 함께 있습니다.





180607

잉여인간 탈출, 다른 계획이 생겼다.


가기로 마음먹었으니, 이제 계획을 세울 것이다. 새로운 목표가 생기니 눈 크게 떠지고,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눈 비비고 새로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 어쩌면 어제 이전에 해왔던 취업 준비라는 것에서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고, 반복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이 쌓여 내 눈을 멀게 하고 집중을 흐렸을지도 모르겠다.


토익 950점을 넘기고 싶었다. JLPT N2를 취득하고 싶었다. 한국사 1급을 따고 싶었다. 점수라기보다 상징이었다. 이 정도는 되어야 내가 원하는 곳에 가고, 스스로도 만족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처음 몇 번의 실패가 만든 반복되는 실망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왜 이루지 못했는가.',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지금의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에 집중하기보다, '끝났으나 이제 좀 쉬어볼까?' 하는 식으로 변했다. 그렇게 실패에 중독되었다.


숨 크게 들이쉬면서 생각했다. 애써 여행 결심 이전의 삶을 되뇌어 본다. 무엇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을까? 반복된 실패의 원인은 무엇일까? 상징이 되어버린 스펙을 얻지 못하는 내가 문제일까? 숨을 내쉬며 든 생각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내가 문제라는 것이었다.


직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자유, 정말 갖고 싶었던 것이기에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괴로움을 견뎠다. 작은 계획부터 강박적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계획 안에 나를 던져놓고 그저 흐름에 따라 배우고 익히고 하는 것이 최선 아닌가? 그러나 노력했음에도 이루지 못하고 실패했던 그 모든 순간이 괴로웠다. 저 멀리 닿을 듯 닿지 않는 별과 같았다.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는 것에 훈련이 덜 된 것이라 여긴 적도 있다. 누구나 배움은 어렵고,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 하였으나, 꾸준히 어려움을 받아들일 만한 인내심이 부족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어쩌면 나는 무언가를 배우고 담기에 지쳤을지 모른다. 이미 나는 직장생활을 했고, 쩔어 있었다. 쉴 틈은 사치였다. 그런 와중에 청춘은 포기하는 법을 배우는 시기라는 말이 와 닿았다.


강박적 목표 달성 시도, 계획을 세우는 것의 옳고 그름은 그 누구도 나무랄 수 없다. 그러나 언젠가부터는 내가 이 계획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실패에 중독된 내 멱살을 잡고 저 먼 광야로 내달리는 것 같았다. 하염없이 끌려가 여기가 어딘지도 모른 채 끌려 다니는 나는, 눈 앞을 가리는 먼지 때문에 바닥밖에 안 보였다.  


어제 티켓 발권을 시작으로 머리 가득했던 실패와 오독은 멀어졌다. 잠시 미뤄뒀다는 느낌이 들 법도 하지만 다가올 새로움 때문인지 불안하진 않다. 나는 그렇게 계획에 힘겨워했지만, 또 새롭게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것도 즐겁게.




180608

가장 괜찮은 여행책을 찾았다. 그런데 굳이 가야 할까?


원래 여행 가기 전에 조사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되려 여행을 다녀와서 '여기가 그렇게 유명한 곳이었어?' 하며 감탄하는 것이 좋다. 거기에 가기 전에는 안 유명했는데, 여기저기에 '내 새끼 좀 보세요~.'하고 알리고 얼마 되지 않아 유명해지면, 내 취향을 인정받는 것 같아 기쁘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르게 가고 싶다. 왠지 오키나와는 자주 갈 것 같아서, 오키나와에게 좋은 첫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도서관에 들러 오키나와 관련 책을 둘러봤다. 10권 정도였는데, 그중 가독성이 좋은 4권을 빌려 도서관 1층 테라스에 자리 잡았다. 볕이 있는 곳에서 책을 보고 싶었다. 다행이다. 주변에 아이들도 없고, 놀랍게도 새가 지저귄다. 책상 일체형 벤치에 누워 하늘 높이 손을 뻗어 책을 들고 읽었다.


책 속에 오키나와의 하늘은 한 없이 맑았다. 그리고 시야에 들어오는 시립도서관의 하늘도 참 맑다. 갑자기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을 집 앞 도서관에서도 볼 수 있는데, 굳이 오키나와까지 가야 할까? 티켓팅을 했음에도, 그곳에서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가득하다. 심지어 무언가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다만 이 여행을 계기로 지리멸렬한 삶의 온점 또는 반점 정도를 찍고 싶을 따름이었다. 마음먹기에 따라 어디서든 가능하다. 그런데 장소를 바꾸면 그게 더 쉽다.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여행가가 되기로 하였다.


책 여러 권 중 한 권을 들어 맛보고 있다. 오키나와는 크게 북부, 중부, 남부 외 공항이 있는 나하 지역으로 나뉘는 모양이다. 처음으로 집어온 책은 빵집, 카페 등을 안내하는 '새로운 오키나와 여행'이다. 사진이 많은 책이라 슥슥 보기 편하다. 빵집이 참 많았다. 문득 6-7년 전 서울 유명 빵집 투어를 다녔던 내가 생각난다.


고르고 고른 네 권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골랐다. 오키나와 관련 많은 책들이 분위기 있는 카페, 베이커리 등을 싣는다. 그러나 그 책은 달랐다. 전반적이고 꼼꼼하고 무엇보다 작가의 오키나와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This is OKINAWA.] 이 얼마나 단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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