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 그랬다. '목표를 세우고, 해내며, 끝내 성장한다.' 최초의 세움은 고등학교 시절이다.
그 보다 어릴 적에 특출 나지도, 잘 나가지도 않은 보통의 학생이었다. '자기 일의 최선을 다하자.'라는 가훈을 가진 집에서 자라, 학생의 본분인 공부를 잘하기 위해 노력했다. 구체적이고 보수적으로 반 5등 정도면 좋겠다. 부모님이 그 정도는 원한 것 같다. 그래서 부모님이 선택한 방법은 21세기에 20세기의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으로 유명한 학원에 등록시키는 것이었다. 원망의 어조가 아니다. 그때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부모님의 심정을 이해한다.
맞지 않기 위해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위협을 회피하기 위해 자신을 꾸겨 넣는 모습이 얼마나 애처로운가. 이 모든 행위가 나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함이라는 사실, 그 보상이 있기 때문에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옆에 앉아 있는 누군가를 이겨야 했다. 그게 세상의 기준이었고, 부모님의 기준이었다. 청소년 시절에 부모님은 나의 온세상이다.
최초의 자의적 세움의 시기, 고등학교 2학년 1학기에 삶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1학년 2학기 기말고사 이후 내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공부하며 보냈다. 맞으면서 배운 공부가 이제야 효과를 본 것일까? 아님 자유도 높은 환경이 나에게 이로웠던 것일까. 반 1등을 했다. 그때부터 졸업까지였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스스로 정하고 해내면,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스스로 교육시켰다. 자유 의지에 따른 성취를 통해 얻은 요상한 신념이었다. 성취가 있는 삶의 의미는 그 경중을 떠나 개인에게 있어 작지 않은 울림을 준다.
그 후 10년이 지난 지금, 이와 같은 성취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나의 성취를 외면한 채 세상의 기준에 나를 맞췄다. 이때부터 나다움을 포기하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에 대한 방법을 알면서도 그 방법을 채택하지 못했다. 그리고 신념을 버렸음에도 이루지 못했다. 그건 정말 멀리 있었다. 다시 더 큰 세상의 눈으로 나를 재단하였다. 성취는 손 끝에서 자꾸 미끄러졌고, 다시 잡을 수 없을 만큼 멀어졌다.
만좌모
180610
날짜 단위의 일정 짜기
첫째, 돈이 넉넉하면 안 그래도 되겠지만, 예산 저항선이 있기 때문에 날짜 단위로 일정을 짜고 돈을 써야겠다. 우선 렌터카 유무로 구분해야 한다. 오키나와는 제주도와 같이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렌터카가 편하다고 한다. 19일(화)부터 24일(일)까지 빌리고자 한다. 만약 초반 일정을 나하와 남부에서 보낸다면, 렌터카는 21일(목)부터 24일(일)이면 족하다. 중부와 북부를 3박 4일로 가능할지 모르겠다. 모조리 볼 필요는 없다.
마지막 날인 25일(월) 나하에서 시티투어 비슷하게 하는 것도 고려한다면, 나하-남부를 18일(월)부터 19일(화), 25일(월)로 한정하여, 중-북부를 20일(수)부터 24일(일)의 4박 5일로 해도 좋다. 번화가는 굳이 렌트하지 않아도 된다. 나하시는 유이레일 종일권으로 최서단 나하공항에서 최동단 수리성까지 커버가 된다. (작자 주 : 수리성이 최근 불탔다는 소식을 들었다. 안타깝다)
둘째, 찾다 보니 오키나와 북부 버스 투어가 있다. 날짜만 맞다면 가는 것이 좋겠다.
- 유이레일 : 1일권 800엔(24H), 2일권 1,400엔(48H)
- 북부버스 투어 : 45,000원(추라우미, 코우리비치, 만좌모, 오카시고텐, 아메리카빌리지)
오키나와 지하철 관련 글을 찾다 보니 이상한 도시괴담을 찾았다. 태평양 전쟁의 전초기지 격인 오키나와에는 불발탄이 많고 무기가 많다는 이유로 지하철을 놓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믿거나 말거나다. 그리고 1972년까지 미 군령이었다고 하는데, 이 부분이 내 오키나와 여행의 큰 부분을 차지할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