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희철 Jul 29. 2020

첫 대출의 강렬한 기억

명동 지점 C과장님, 잘 계시죠?

2년 전, 단했던 월세 생활을 접고 전세 생활자가 되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 원래 성격이 누구한테 빚지기 싫어하고 마음의 짐이라도 생기면 잠을 설친다. 마 남에게 빚지고 살지 말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이 사회화된 덕일 것이다. 로버트 기요사키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링크는 아래)의 부모님처럼, 우리 부모님도 그랬다. 내게 있어 마음의 빚도, 자본시장에서의 부채도 모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 내가 대출을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역시나 돈 때문이었다. 고정관념은 현실 앞에서 무너진다.





월세 50만 원, 작고 귀여운 월급에서 이렇게 큰 덩어리가 나가면 그야말로 텅장이 된다. 어느 지친 하루 끝에 서울역 지하철 광고를 보고, 다음 날 곧장 은행으로 향했다. 키오스크에서 이제껏 눌러보지 못한 버튼을 눌렀다. >>대출<<

띵똥 소리 울릴 것도 없이, 나의 대출 선생님인 C과장님을 만났다. 이 순간 이후 몇번의 만남 끝에 월 지출 비용이 대폭 감소했


소득, 신용등급, 등기부등본 등과 관련된 대출 관련 프로세스는 다른 곳에서도 많으니 넘어가기로 한다. 링크는 아래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사회초년생인 내가 느낀 것은 아래와 같다.


1. 생각보다 너무 쉽다.

절차로서 다소 까다로웠던 중소기업 취업청년 전월세 대출(이하 중기청 대출)이기에 구비서류가 많이 필요했지만, 흐름만 잘 따라가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명확한 보상(월세보다 저렴한 전세대출이자)이 있는 대출이어서 되려 이 정도의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2. 삶의 활력이 된다.(?)

어느 TV쇼에서 은행원이 한 말이 생각난다. '회사를 오래 다니고 싶다면, 대출을 받아라.' 무릎을 탁 치게 하고 가슴을 저리게 하는 말이다. 한 달 한 달 갚아 가는 맛이 있었다. 대출 때문에 퇴사를 보류한 적은 없다. 다만, 하나의 요소로서는 작용했다. 우습지만 트루다.


3. 깔아 두고 생각한다.

익숙해지니 부담이 덜 된다. 함께 받은 신용대출의 경우, 이자율이 높았고 원리금 동시 상환이었기 때문에 서둘러 갚아야 했다. 하지만 그보다 큰 볼륨의 중기청 대출은 이자율이 낮고, 원래 집주인에게 꽂히던 월세보다 크게 적었기에 부담이 없었다. 달고 사는 상황임에도 종종 존재를 잊기도 한다.


4. 남들도 다 이만

너무 시련 없이 살았나 싶기도 하지만, 수저 계급론 아래 나와 같은 수저인 분들은 대체로 나정도의 대출을 끼고 있었다. 커밍아웃을 한 순간 일종의 동지애도 생겼다. 조정석의 야나두 표정이 절로 나온다.




이제 내 인생에 다시 한번 큰 대출의 파도가 곧 밀려 올 예정이다. 신혼집 대출은 두 번째 대출이니 보다 수월할지도 모르겠다.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문득 두렵다. 마이너스 자산이 내 삶을 지배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 때문이다. 안 받아도 될 만큼 넉넉할 것 같진 않으니 잘 받는 방법을 고민해야겠다. 이 또한 선생님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로버트 기요사키 링크
중소기업취업청년전월세대출 링크
매거진의 이전글 친애하는 전 직장 동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