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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머지않아 올 진짜 봄을 기다리며

by 두기노

어제 도쿄에 폭설에 가까운 눈이 내렸다. 엄밀히는 비와 바람과 눈이 섞인 최악의 기상상태였다. 겨울 내내 눈을 볼 수 없던 도쿄에서 3월 들어 벌써 두 번째 눈이었다. 그저께는 ‘이제 봄인가’싶어 코트 없이 출근했다 전철역을 나오자마자 접한 퇴근길 추위에 어안이 벙벙해지고 살짝 짜증이 났다. 당초 예보에 따르면 도쿄는 이번 주말부터 벚꽃이 피기 시작해서 다음 주말 정도면 만개일 거라고 했는데, 어처구니없는 꽃샘추위에 벚꽃들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걱정될 따름이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하프마라톤 뛰고 와서 잘 안 걸리는 감기까지 걸리는 바람에, 나도 이제 나이를 먹고 있구나 실감하면서 괜히 3월에 시비라도 걸고 싶어졌다.


앙상한 가지, 회색빛 하늘, 차가운 바람, 썰렁한 공기. 봄과 겨울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달, 3월 하면 내게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사실 계절로서 별로 좋은 인상이 없다. 자연의 변화 차원에서 직접 보고 느끼는 것 외에도, 한국의 학제상 뭐든지 시작하는 달이었던 특성으로 인해 내가 기억하는 3월은 부정적인 감정이 압도적으로 지배했던 달이기도 하다. 내향성이 강한 나에게 입학식, 새로운 반 배정, 새 담임 선생님, 처음 만나는 학우들은 설렘과 기쁨보다는 긴장, 걱정, 불안 등을 더 많이 안겨왔다. 안 그래도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에 적응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있는데 ‘봄’의 가면을 쓴 춥고 가식적인 날씨가 듬성듬성 이어지다 보니 3월은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계절이 되어 버린 것이다. 3월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문득, 일본처럼 신학기 시작이나 신입사원 입사를 4월에 하게 된다면 따뜻한 날씨와 여기저기 피어 나는 봄꽃들로 인해 시작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그나마 조금 위안과 여유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평소의 3월에 더해, 미치광이 대통령의 망나니 같은 계엄선포 그로 인한 헌정질서 유린에 대한 심판이 계속 늦어지고 있는 올해 3월은 더욱 춥고 어두운 느낌이다. 그야말로 봄이 왔다는데 봄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다음 주부터 꽃구경 다녀야 하는데, 마음 편하게 놀러 다닐 수 있도록 늦어도 다음 주 금요일에는 헌재의 현명한 판결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3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헌재 재판관 전원일치로 ‘파면‘결정이 내려진다면 아마 내 인생 가장 극적인 3월로 기록될 것이다.


분통 터지는 정치상황까지 겹쳐져 더욱 춥고 힘든 3월이지만 그래도 다시 희망을 가져본다. 매도 한꺼번에 맞는 심정으로, 지금이 올해의 바닥이라는 심정으로 ‘진짜‘ 봄을 기다려 본다. 변덕 많은 날씨를 이겨내며 뿌리와 줄기를 튼튼하게 하여 곧 돋아날 꽃과 잎을 더 밝고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달이 바로 3월이라고 괜스레 추켜세워도 본다. 아니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곧 4월이 될 것이고 진짜 봄을 맞아 누구나 일상을 회복하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또 3월을 금방 잊을 것이다. 영문도 모르고 미움을 받아 많이 억울할 3월에 소소한 위로의 마음을 전하며 ‘나는 올해 3월을 절대 잊지 않을게’ 나지막이 약속해 본다.


사월, 오월, 구월, 시월. 내가 좋아하는 달(月)들이다. 하나씩 적어 놓고 보니 모두 숫자에 받침이 없네. 오묘한 우연의 일치이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 봄, 그리고 사월과 오월을 기다리고 있는 삼월의 지금, 시샘과 심술에 맞서 나도 투정을 부려보지만 우린 그렇게 다 같이 조금씩 더 성장해가고 있는 중이다.


https://youtu.be/ukxEKY_7MOc?si=torsLWPM3lR6h_b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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