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확실한 일상 속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서울과 비교하면, 도쿄는 면적으로는 세 배 이상 넓고 인구도 1.5배 많다. 이 대도시에서 나는 지난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려왔다.
나이 오십을 넘긴 아재에게 본의 아닌 홀아비 생활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만의 패턴과 루틴을 지키며 큰 탈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마음에 고요한 평온을 주던 수많은 일상 속 소소한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고마운 마음만큼이나, 벌써부터 스멀스멀 밀려오는 아쉬움과 그리움을 조금이라도 붙잡아두고 싶다. 그래서 지난 몇 년간의 사진첩을 천천히 넘기며, 작지만 소중했던 순간들을 하나씩 꺼내본다.
치열한 한 주를 견디고 맞이한 어느 주말 저녁. 간단히 요리를 해 술 한잔 곁들여 식사를 마친 뒤, 집 근처 상점가와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며 바라본 소박한 밤풍경. 비 내리던 그 밤, 쓸쓸함마저 묘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일을 더 기대하게 만들던 순간들.
공원에서 캠핑 의자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며, 책을 읽고 메모하다 꾸벅꾸벅 졸던 순간들. 오래 앉아 있었던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 한껏 기지개를 켜다 문득 올려다본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에 행복감이 밀려오던 순간들. 그리고는 ‘오늘 저녁엔 뭘 만들어 한잔할까?’ 생각하며,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던 순간들.
평일 새벽이나 주말 늦은 오후, 달리기 좋은 복장으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뒤 러닝앱을 켜며 오늘은 어떤 코스로 얼마나 달릴까 고민하던 순간들.
익숙한 루트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발견한 색다른 풍경에 감탄하며 사진으로 담던 순간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폭염 속에서도 나만의 루틴을 지켰다는 쾌감이 느껴지던 순간들.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이 밀려오던 벅찬 감동의 순간들. 기도하듯 명상하듯 달렸던, 그 모든 순간들.
사시사철 피어 있던 꽃들 덕에 외롭지 않았던 순간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꽃을 피운 매화에서 강한 생명력을 느꼈던 순간들. 동네 담벼락에 피어 있는 이름 모를 꽃들이 말을 거는 듯한 순간들. 한여름 폭염도 견뎌낸 배롱나무와 능소화에게서 위로를 받던 순간들. 겨울 내내 꿋꿋이 자리를 지킨 동백에서, 떨어진 모습이 더 아름다울 수 있음을 깨닫던 순간들.
가끔씩은 여행하듯 도쿄 구석구석, 근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순간들. 공원을 둘러보고, 상점가를 기웃거리고, 가게 정경이나 노렌 사진을 찍던 순간들. 어쩌다 만나는 중고서점에서 책을 구경하고, 도서관에서 좋아하는 잡지를 뒤적이며 시간을 보내던 순간들.
미리 준비해 간 타월로 낡고 오래된 동네 목욕탕에 몸을 담그던 순간들. 여행 같은 일상 속, 소소하지만 반짝이던 내 소중한 모든 순간들.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도, 고독하지만 결코 외롭지 않았던 내 일상 속 조용한 행복을 선사한 수많은 순간들.
지난날 부끄러웠던 순간들을 돌아보며, 조금 더 나은 ‘나’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성찰과 감사의 묵상을 가능하게 해 준 여러 순간들.
이 모든 순간들에 감사합니다.
안녕, 도쿄.. 지금의 작별은 또 다른 만남을 위한 일시적인 헤어짐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