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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기노 Dec 30. 2023

이선균 배우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합니다

인생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부터 그다지 품이 넓지 못한 성격이라, 살면서 꽤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지인이나 친구를 손절한 경험이 몇 번 있다. 극우적인 정치성향이 감지되면 즉시 손절하는 것만큼이나 내가 사람과의 관계에서 못 견디는 게 있다면 문화적 감수성이 제로인 경우이다. 몇 년 전, 신입사원 시절부터 알고 지내온 업계 지인 몇 명과 저녁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일 얘기, 회사 얘기에서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최근에 본 드라마 얘기로 넘어가고 있었다. 내 취향을 구구절절 남에게 설명할 필요를 못 느껴 그저 <나의 아저씨>가 내 인생드라마라고만 소개했다. 그때, 내 맞은편에 앉아있던 이가 ‘아~ 그 불륜 드라마?!’라고 알은체를 했고, 그 순간 그이의 무신경함을 넘은 무식함에 온갖 정나미가 다 떨어지고 말았다. 그 이후 내가 먼저 그에게 연락하는 일은 없었다.


청천벽력과 같은 비보를 접하고 이틀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선균 배우의 안타까운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김광석, 장국영, 이은주, 다케우치유코 등 내가 좋아했던 가수나 배우들은 죄다 아직 창창한 나이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남들은 어디서나 빛나는 큰 별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뻔뻔하고 무례한 세상을 헤쳐나가기에 사실 그들 모두 그리고 이선균 배우는 너무 여리고 모질지 못했던 게 아닐까? 결과적으로 ‘가족 생각을 했다면..‘ ’멘탈이 좀 더 강했다면..‘ 등의 아쉬움의 토로는 이선균 배우가 겪었을 마음의 고초를 이해하고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무기력하고 허무할 따름이다.


이선균 배우를 협박했다는 그녀들, 지극히 사적인 정보까지 돈벌이로 활용한 극우 유투버 채널, 인격을 말살해 가며 무리한 수사를 진행한 검/경찰, 그리고 혐의만으로 범죄자 취급하며 수사방식의 정당성 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한마디 문제제기도 못하는 쓰레기 언론들까지 모두가 공범이다. 이선균 배우의 사망은 그야말로 사회적 타살이다. 한낱 연예인의 극단적 선택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생각해 보면 이태원 참사 때부터 어쩌면 그 이전부터 이어져온 대한민국의 이 우울하고 어두운 죽음의 그림자를 끊어내야 한다.


‘마약투약 혐의 어쩌고’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지난 삶과 대한민국 명배우로서 그간의 영화 및 드라마에서 그가 보여온 활약을 부정할 수는 없다. 진실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도 때로는 유혹에 흔들리고 어쩌면 궤도를 이탈하는 일도 있을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었을 뿐이다. 왜 우리는 연예인의 삶에 대해서는 그렇게도 가혹하고 자신이 아닌 남에 대해 잘못된 점을 파헤치고 속닥거리기를 이리도 좋아하는 것일까? 그를 짓눌렸을 억울함과 자책감, 가족이나 주변 지인들에 대한 미안함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전매특허와 같은 중저음의 멋진 목소리가 어쩌면 연기의 폭을 줄일 수 있겠다고 별 근거 없이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누구나 인정하듯 사실 그는 어떤 역할이 주어져도 자연스럽게 극 중 캐릭터를 소화해 온 뛰어난 배우였다. 드라마 하나 보는 것조차 확실한 목적의식을 따지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인생 드라마‘라는 라벨을 붙여준 <나의 아저씨>는 아카데미 작품상에 빛나는 <기생충>만큼이나 이선균 배우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에 첫 2화까지를 잘 버텨야 한다고, 그러고 나면 정말 순식간에 드라마에 빠져들게 될 거라고 우스개 소리처럼 침을 튀겨가며 주변에 이 드라마를 추천하곤 했다. 나 같은 마니아들이 굳이 나서지 않아도 적어도 당분간은 <나의 아저씨>의 역주행이 있지 않을까 씁쓸한 전망을 해본다.   


<나의 아저씨>를  떠올릴 때면 아직도 가슴이 저리고 동시에 벅차오른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스한 시선, 형제들 간의 우애, 이웃들과의 소박한 情이 드라마 내내 흘러넘치며 지나치게 통속적이지 않은 관계 설정, 웃음코드를 적절히 넣되 신파를 철저히 배제한 연출, 여기에 몰입감을 더해주는 삽입곡들까지… 개인적으로 잠시 주춤하던 시절에 이 드라마를 보며 많은 위로와 치유를 받았기에 극에서의 남주였던 이선균 배우에게는 특히 큰 빚을 지게 된 것 같다. 안타까운 죽음 이후, 그가 드라마 속에서 부르던 ‘아득히 먼 곳’이라는 노래를 어제오늘 무한 반복해서 듣고 있다. 아득히 먼 그곳에서는 부디 평온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이선균 배우님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aYOHHELbRew?si=_tYJ1zMy_c_IXy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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