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술 한잔 올립니다.
아버지가 1년 이상의 암 투병 끝에 돌아가신 지 올해로 35년이 지났다. 자식들 교육을 위해 내가 초등학교 시절 울산에서 서울로 이사 온 이후, 아버지는 번듯한 직장보다는 뭔가 늘 안정적이지 못한 일에 종사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늘 나와 동생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하셨고, 아마도 가장으로서의 부담에 밤잠을 설치는 모습도 종종 보곤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담뱃갑 금박 속지로 딱지를 접어주셨는데, 이게 은근 딱지치기에서 힘을 발휘해서 내겐 자랑거리였다. 초등학교 입학 후에 새 학기가 시작되고 나면 지나간 달력 뒷면으로 순백의 교과서 커버를 만들어 주시곤 했는데, 문방구에서 팔던 책표지처럼 예쁘고 화려하진 않았지만 내구성 하나만은 최고였다.
큰맘 먹고 가족끼리 둘러앉아 삼겹살에 소주라도 한잔 하는 날엔, 잘 풀리지 않는 신세 한탄을 하시기보다 늘 자식들 작은 것 하나라도 잘한 일을 끄집어내서 칭찬을 해주셨다. 머리를 자주 쓰다듬어 주셨다.
돌아가시기 전에는 항암치료 등으로 인해 극도로 초췌한 모습이셨지만, 젊었을 때 군대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훤칠한 키에 근육질이 멋있는 분이셨다. 말수가 많지 않으셨지만, 언제나 책과 신문을 옆에 두고 읽곤 하셨다.
중학교 시절 당번활동으로 어둑어둑해져서 귀가하던 나를 버스정류장 옆 가로등 아래서 기다리시던 그 쓸쓸한 모습을 기억한다. 아마 처음으로 우리 아버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서울집에서는 늙으신 모친께서 한 상 가득 ‘간단하게’ 제사상을 차리고 있으실 터이다. 나는 소박하게 콩나물북엇국, 게맛살 전에다 청주 한잔 올린다. 생전에 약주 몇 잔 하고 취기가 오르면 기분 좋게 흥얼거리시던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를 함께 틀어놓았다.
아버지! 그곳에서 행복하게 잘 계시죠? 이제 자식걱정일랑 안 하셔도 되니까 그저 편하게 지켜보시기만 해 주세요.
새삼스럽지만 감사했고, 너무 보고 싶습니다.
그대를 보내고
생각나는 일 있어
모기장 안에서 운다
君を送りて思ふことあり蚊帳に泣く
마사오카 시키 (正岡子規)
https://youtu.be/Yn1xOqvpeWo?si=qqJy3SqeCQV_Tand